"한반도 대전환의 길, 언론은 사실만을 말해야 한다"

2007 남북정상회담 취재기자가 말하는 2018 남북정상회담

성기홍 연합뉴스 정치에디터

▲성기홍 연합뉴스 정치에디터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2018년 봄의 길목은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대전환의 분기점이다.


70년 남북을 지배한 냉전 체제가 해체되고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 전환될 것인지, 편견과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대결 체제를 연장해 갈 것인지 기로이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고, 경험에서 교훈을 얻는다.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의 경험이 있다.


2000년 정상회담은 총부리를 겨눴던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최초로 만나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공존한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대결 시대를 뒤로 하고 공존·공영 시대로 나아가겠다는 전환적 선언이었다. 그해 6월13일 오전 10시30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악수하는 장면은 2000년 회담의 의미를 상징했다. 서울 롯데호텔 프레스센터에 TV생중계를 지켜보던 외신기자 500여명을 포함한 취재기자 1200여명도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쳤다. 분단 후 남북 정상의 첫 상봉에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2007년 정상회담은 1953년부터 시작된 ‘정전 체제’를 종식시키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로 협력한다는 합의를 정상선언에 담았다. 상호 체제를 인정한다는 6·15 공동선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미래지향적 질서에 대한 합의였다. 남·북·미 3개국 정상이 만나 종전(終戰)을 선포하고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한다는 논의로까지 전개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7년 전 DJ와는 달리 육로로 방북했다. 그 해 10월2일 오전 9시 5분, 노 대통령이 군사적 적대의 상징이자 ‘금단의 선’인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는 장면은 2007년 회담의 의미를 상징하는 퍼포먼스였다.


그 후 10여년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인 ‘공존·공영’, ‘평화체제 전환’ 논의는 실종됐다.


전쟁의 참화를 겪고, 접촉을 단절한 채 ‘적화통일’ 또는 ‘멸공통일’을 외치며 수십년 증오한 쌍방의 신뢰는 그저 주어질 수 없었다. 신뢰는 만들어가는 것이다. 신뢰의 출발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As we wish to be)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As it is) 상대를 바라보는 것에서 비롯된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도덕적 접근이 아니라 현실적 접근이 필요했다.


한반도 운명이 걸린 대전환의 분기점을 맞아 사실에 기반을 둔 언론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지난 2007년 10월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2차회의를 마친 후 헤어지기 전 악수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연합뉴스

▲한반도 운명이 걸린 대전환의 분기점을 맞아 사실에 기반을 둔 언론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지난 2007년 10월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2차회의를 마친 후 헤어지기 전 악수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연합뉴스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을 반복하며 강산이 한 차례 변하는 시간의 단절을 겪은 뒤 다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1·2차 정상회담의 합의를 복원하고, 또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회담’이기 때문에 이번 회담은 한반도 비핵화, 평화 체제의 제도화라는 본질적 이슈 논의로 성큼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실용적 회담’일 거라는 기대도 크다. 장소가 평양이 아니라 판문점이기 때문이다. 의제 자체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비유하자면 국빈 방문(state visit)이 아니라 실무 방문(working visit) 형식으로 진행되는 정상회담이다. 의전 등 형식적 부분에서 거품이 쫙 빠지고, 내용으로 담판을 짓는 회담일 것으로 보인다. 1차 정상회담 때는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의 김대중 대통령 방문 여부를 놓고 양측이 신경전을 벌였고, 2차 정상회담 때는 김정일 위원장이 회담 도중 갑자기 노 대통령의 평양 체류 일정을 하루 더 연장하면 어떻겠냐는 돌출 제안을 해서 소동이 일기도 했다. 이번엔 그 같은 의전을 둘러싼 소모적 기싸움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또 이번엔 대통령 임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열리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그치는 회담이 아니라 수시로 만나는 ‘셔틀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의 정상화’이다.


남북 회담은 장내(場內) 회담 테이블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지만, 장외(場外) 관전자들의 여론도 성패를 가르는 변수이다. 신뢰의 기반이 약한 탓에 사소한 해프닝이 의구심 어린 시선으로 증폭되면 엉뚱한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언론이 중요하다. 파격적으로 연출된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무대에 상상력은 한껏 열어 놓되, 편견과 선입견은 배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추정에 무게를 둔 보도나 선정적 관점은 자칫 남북 회담의 판을 깰 수도 있다.


2007년 정상회담 때 방북 기자단은 공동취재 보도 준칙을 만들었다. 대전제로 ‘남북간 화해와 협력, 교류 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공정한 보도를 하기로 한다’는 것을 명문화했고, ‘사실(fact) 중심 취재 보도를 원칙으로’ 정했다. 기자의 개인적 견해(opinion)를 바탕을 둔 해석을 삼가자는 취지였다. 각 언론사별로 편집 방향은 다를 수 있지만, 현장의 취재에서는 청와대 기자단의 집단지성을 가동해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한반도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 있는 향후 두어 달의 짧지만 뜨거운 봄, 어느 때보다 열린 마음과 인내가 요구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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