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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도 귀국 않고 중국 곳곳 다니며 팩트 모았어요”

‘판다와 샤오미’ 낸 박은경 경향신문 베이징특파원

최승영 기자2018.03.07 15:49:36

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 박은경 기자와의 통화는 유쾌했다. 몇 번은 ‘으하하하’ 소리만 스피커에서 한참 울리며 말이 끊기기도 했다. 최근 박 기자가 낸 책 ‘판다와 샤오미’ 출간이 연락이유였다. “특파원 끝나고 정리해볼까 했지 중간에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회사에서 얘기가 있어서 좋다고 했는데 사장승인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출판 계약서도 썼는데 손해 끼칠까봐 부담돼요. 지금도 ‘손익분기점만 넘겼으면!’ 계속 생각한다니까요.(웃음)”


책은 지난 2년 간 실어 온 특파원 칼럼 ‘베이징 리포트’, ‘베이징의 속살’ 등을 묶은 것으로 박 기자 개인에겐 특파원 생활 중간정산격의 의미를 띤다. 그 시간이 마냥 즐거울 순 없었을 것이다. 기자가 기사를 쓴다면 베이징 특파원은 ‘중국에서’ 기사를 쓴다는 것 정도의 차이. 잠시의 환상이 걷히고 나면 이역만리 타국에서의 마감 노동자 일상이 닥친다. 홀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은 덤이다. 어찌됐든 오전 보고와 온라인 기사, 오후 지면 마감은 매일 이뤄져야 하는 몫이고, 박 기자 성격상 일을 설렁설렁 할 수 있는 타입도 못된다.


박은경 경향신문 기자(베이징 특파원)가 지난 5일 베이징 시내 외교공관이 밀집한 젠궈먼(建國門) 한 건물에서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 뒤로 CCTV 사옥을 비롯해 베이징 시가지가 보인다.(박은경 기자 제공)

▲박은경 경향신문 기자(베이징 특파원)가 지난 5일 베이징 시내 외교공관이 밀집한 젠궈먼(建國門) 한 건물에서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 뒤로 CCTV 사옥을 비롯해 베이징 시가지가 보인다.(박은경 기자 제공)


책을 보면 이런 흔적은 고스란히 티가 난다. 정치, 외교 분야보다 사회문제와 생활밀착형 이슈에 천착하면서 직접 보고, 듣고, 발로 뛰어 박은 팩트들이 넘쳐난다. 그가 일상에서 얼마나 더듬이를 뻗은 채 살아왔는지가 느껴진다. 발령 후 그는 한 번도 귀국하지 않았다. “쉬었다”고 하는데 듣고 보면 휴가 기간 중국 곳곳에서 취재한 얘기다. “류샤(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인권운동가인 류샤오보의 아내) 집 취재 갔을 때가 기억나요. ‘배달원으로 위장할까’ 별별 생각 끝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집 사진을 몰래 찍고요. 중국용 폰으로 찍어 한국 폰으로도 옮기고 하나는 생리대 주머니에 숨겼어요. 못 들어가게 할 건 알았는데 뭐가 두려워 이렇게 거꾸로 가나 싶더라고요.”


박 기자가 이렇게 뛰어다닌 또 다른 이유 하나는 경향신문 창간 70년 역사에서 그가 첫 번째 여성 특파원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는 “제가 못하면 여자가 못한다고 할까봐 부담이 있었다”고 했다. 현재 베이징 특파원 35명 중 여성 특파원은 4명으로 역대 최대이지만 여전히 소수다. “여기 올 때 여자 선배들이 밥도 사주고 좋은 말도 해주시고, 심지어 가서 자물쇠 바꾸라고 돈도 주셨어요. 후배들은 마스크도 사주고요…회사는 육아휴직도 그렇고 선구적인 분위기인데 결혼을 하면 어려워지는 거 같아요. 육아부담도 크고, 남편이 휴직하고 3년씩 따라가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전 싱글이라 올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우리보다 결혼을 일찍 하는 중국에선 제가 결혼을 안했다고 하면 분위기가 숙연해져요.(웃음)”


97학번인 박 기자는 상하이 여행을 가려고 2001년 중국어를 처음 배우고, 2002년 베이징대에 연수를 갔을 때 자신이 특파원을 하게 되리란 걸 알았을까. 중국과 국내 매체 기자를 거쳐 2007년 경향신문에 입사할 때는 예상했을까. 그는 책날개에 “입사 후 중국어를 잘한다고 소문났는데, 변변치 않은 실력이 들킬까봐 몰래 전화중국어 과외를 했다. 덕분에 베이징 특파원이 될 수 있었다고 믿는다”고 적었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돈 그에게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특파원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물었다. “우리나라 촛불시위를 CCTV로 중국에서 보고, 탄핵도 봤는데 여긴 시진핑 장기집권 한다고 헌법을 바꿔요. 부모님 시대를 사는 거 같고 기분이 묘해요…‘안 되는 상황인데 열심히 살았어’ 그런 얘길 들으면 최고 칭찬 아닐까요.”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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