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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 덕 좀 보십니까?

[글로벌 리포트 | 브라질]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특파원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특파원2018.02.07 14:56:57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 특파원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 특파원

 한국인들에게 가장 ‘핫’ 한 나라 몇 군데를 꼽으라고 하면 베트남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즘 베트남에 지인 하나 없으면 촌놈’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지난 1월 한 달에만 31만6000명의 한국인이 베트남을 찾았는데, 작년 같은 기간(17만2000명)에 비하면 무려 84% 늘어난 수치다. 겨울철 동남아 성수기를 맞아 좌석 공급이 늘면서 요즘 한국에서는 하루 50편 가까운 항공기가 베트남으로 뜬다.


 베트남에서도 한국은 많이 회자된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부린 ‘마술’ 영향이 제일 크다고 봐야겠다. 지난달 중국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대회에서 처음으로 베트남을 8강에 끌어올린 박 감독은 아시아 최초 4강, 최초 결승 진출 등의 ‘기적’을 연거푸 만들었다. 그것도 부임 3, 4개월 만에 ‘변방 축구’를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축구 클럽들은 잇따라 회원 모집에 나섰고, 어린이 축구클럽에는 가입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어린 선수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박 감독의 어록도 등장했다.  ‘최선을 다했는데 왜 고개를 숙이느냐’며 선수들을 다그친 그의 말에 대해 논하라고 한 고교 시험문제가 한 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선수들의 잠재력을 뽑아낸 박 감독의 지도력에 주목하는 현지 언론의 모습이다. ‘감독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냐’는 것이다.

 

 외국인인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 일으킨 이번 일은 많은 면에서 한국인들에게 2002년 월드컵을 떠올리게 한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뤄낸 한국의 4강 신화를 통해 한국인들은 히딩크 감독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그 감정은 또 네덜란드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 대목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베트남 사람들이 이제 한국과 한국인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최근 “박 감독 덕 좀 보겠다”, “베트남 가면 한국인들이 대우 받겠다”는 등의 문자 메시지를 한국서 받은 주재원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런 분위기가 아주 없다고는 못해도, ‘그래 덕 좀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쩐 다이 꽝 국가주석이 박 감독에게 훈장을 내리고, 응우옌 쑤언 푹 총리가 박 감독에게 5시간이나 바람맞고도 선수단을 극진히 챙기긴 했지만, 그 모습을 본 베트남 사람들이 주변 한국인에게 그와 같이 대해줄 리는 만무한 일이다. 특히 환영행사의 주인공은 박 감독이 아니라 베트남 선수들이었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관광객 중 한국인 신분을 밝히고 환대 받았다는 이야기도 많지만 평소에도 한국인이라고 하면 반갑게 맞아주고 짧은 한국어로 인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새삼스러운 풍경은 아니다.

 

 ‘박 감독의 덕’을 기대하는 한국인들에게 현지 언론의 반응은 무심하다 싶을 정도다. “‘한국인’ 박 감독” 정도의 표현이 전부이고, 박 감독이 일으킨 성과를 한국이나 한국인과 연결해 내보내는 기사나 칼럼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버지(박 감독)와 그의 아이들 또는 학생(선수)들’이 만든 과실로 한정함으로써 이번 성과가 다른 곳으로 분산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언론이 전국민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번 일로 한국 관광객이나 기업이 ‘덕’을 보겠다고 생각한다면 실망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베트남 언론이 한국과 한국인 관련 보도에 ‘인색’한 것은 또 있다. 한국인이 연루된 각종 사건사고나 비위 소식이다. 지난해 12월 말 호찌민시에서는 30대 한국 남성이 술집에서 만난 한 현지 여성을 시비 끝에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터질 일이 터졌다’는 반응도 나왔다. 관계 당국과 현지 진출 기업들은 반한 감정으로 번지지 않을지 노심초사 했지만, 베트남 언론의 ‘소극적’ 보도 행태 덕에 묻혔다.

 

 베트남 사람들은 오랜 전쟁을 겪으면서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게 체질화 돼 있다. 좋아도, 싫어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베트남 사람들로 구성된 현지 언론의 보도행태도 그와 비슷하다고 본다면 베트남 내 이런 분위기에 서운해 할 필요도, 고마워 할 필요도 없다. 개개인이 덕 볼 생각하지 않고, 물의 일으키지 않으며 조용히 돌아가는 것, 이게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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