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왜 하고 싶은 말만 하나

[저널리즘은 신뢰다] ④ '신뢰의 길'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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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3층 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저널리즘은 신뢰다’를 주제로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김춘식 한국외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성후 기자협회보 편집국장.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3층 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저널리즘은 신뢰다’를 주제로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김춘식 한국외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성후 기자협회보 편집국장.

저널리즘은 신뢰다. 믿을 수 없는 좋은 뉴스란 있을 수 없어서다. 믿어지지 않고선 뉴스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항상 언론의 자리는 그랬다. 신뢰를 전제하지 않고서 언론의 영역은 성립가능하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이 근간이 흔들리는 시대다. ‘저널리즘은 신뢰’라는 말은 어느덧 언론현실에 대한 우려를 담은, 처방의 언어가 됐다.


2018년 기자협회보 신년기획은 이 같은 현실에서 시작됐다. 언론은 독자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관행과 구태에 젖어 기본에서 점점 멀어지는 행위를 이어왔다. 그럼에도 신뢰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부 언론과 기자들이 있었다. 다만 시민들의 외면은 여전하고, 신뢰회복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기자협회보는 신년기획 ‘저널리즘은 신뢰다’를 마무리하며 지난 25일 좌담회를 마련했다. 언론 행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신뢰회복’을 위해 우리 언론 현실이 어떠한지, 그 해법은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이 참석해 다양한 제언을 전했다. 사회는 김성후 기자협회보 편집국장이 맡았다.
 
사회=신뢰 위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오랜 기간 저널리즘 분야 활동을 해오셨는데 각자 언론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지금 언론신뢰 하락은 주류 언론 신뢰 하락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언론은 정파적으로 자의적인 언론행위를 해왔다. 그런데 대안적 언론이 늘어났다. 맞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온 계몽하고 선동하는 행위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며 언론신뢰가 떨어지는 걸로 보인다.


1987년 민주화가 되고. 제6공화국 헌법이 만들어지고 언론이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게 되면서, 서울대 박승관·장경섭 교수가 주장하는 바인데, 언론들이 유사 국가기관화가 됐다. 당시에 법원, 검찰, 정부, 국회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국가기구들이 신뢰가 바닥이었다.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이 언론이라고 생각됐다. 언론이 민주화를 이뤄낸 기폭제가 됐으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이 돌아보니까 권력의 적수가 별로 없어진 거다. 자기들이 (사안에 대한) 재단을 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나 이번에 장관 하나 날렸어’ 자랑하고 임팩트로 생각할 때다. 특히 YS 때 그게 심했다. 언론에서 한 개 쓰기만 하면 장관이 날아갔으니까. 그 정도 힘을 발휘한 시기다.


권한이 확대되며 언론이 권력이라는 생각을 시민들이 하게 됐는데 주류 언론에 대한 그 신화, 신뢰가 인터넷이나 대안 매체를 통해서 무너지게 된 거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질문이 우문이다. ‘언론의 신뢰가 왜 떨어졌을까’라는 건 보도가 그 모양이니 신뢰할 수 없는 거다.


영화 ‘1987’ 그 시대가 보도지침이 있던 시절이다. 1980~1987년까지 보도가 진짜 엉망이지 않았나. 그래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드러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지금보다는 지사적 언론이 있었고 뭔가 해봐야 된다는 노력을 기울였던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언론에 대한 불신이 훨씬 깊고 신뢰도 더 떨어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정치권력에 길들여지고 상업적 경쟁이 강해지면서 광고주로부터 압력도 굉장히 많이 받고 있다. 광고주가 아니더라도 클릭수 때문에 상업적으로 허접한 기사 만들어내는 게 많아지지 않았나. 떨어진 이유는 너무나 많다. 떨어지지 않을 이유가 거의 없었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자기와 연관이 있고 관계가 있다는 인식을 해야지만 신뢰가 형성이 되는 거다. 언론이 나와 별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니 신뢰가 떨어지는 거 같다. 왜 나랑 관계가 없고 연결돼 있지 않다고 느끼나. 시민의 관심사와 기자·언론의 관심사가 너무 유리된 거 아닌가. 자기들 관심만을 다루니까 ‘나하고 별 관계가 없다’, ‘내가 신뢰하지 않는다’로 표현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80년대 언론하고 (지금을) 비교하면 사실을 말한다는 점에선 당시 뉴스들이 덜 말할 거다. 오히려 지금이 사실을 더 말할 텐데 그런데도 신뢰가 떨어졌다는 건 신뢰는 굉장히 상대적인 개념이고, 신뢰를 결정해주는 조건변인들이 많다는 거다.


당시 신문은 어떻게 생각하면 유일한 뉴스 매체였다. 방송은 뉴스매체라고 생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문에 기대하는 역할이란 게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보면 (신문, 방송은) 유일한 뉴스 매체가 아니고 대안적인 매체도 있고 접하는 게 차이가 없기도 하다.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당파적 입장에서 말하는 거다.


가장 흔들리게 된 건 언론의 규범적 역할이 뭔가에 대한 인식이 바뀐 거 아닌가 싶다. 비록 독재시대 때는 억압을 받지만 ‘언론은 어떻게 해야 된다’고 하는 규범적 책무를 인식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규범적 책무 인식 자체가 사라졌다. 지사적 언론 얘기도 나왔지만 지금은 직장인인 셈이지 않나. 언론의 공적책무에 대해선 무관하고, 이익을 올리는 데 관심을 갖게 되고, 이런 생각이 가장 큰 위기의 원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사회=최근 10년 내 언론 신뢰를 떨어뜨린 가장 큰 사건은 뭐라고 생각하나.


강형철=세월호 사건인 거 같다. 이 사건은 바다 한 가운데 일반 기자들이 갈 수 없는 데서 일어났고 1980~1990년대라면 이 사건은 100% 묻혔다. 정부가 발표하는 잠수부가 수십 명 투입 되고, 육·해·공군이 날아가고, 사람들은 ‘그렇구나’ 하고 그 사람들을 칭찬하고 안타까워하고 눈물 흘리며 대통령과 함께 울고 그랬을 거다.


그런데 대안언론이 가서 ‘그게 아니다’라는 걸 알려준 거다. 언론이 1987년 이후 유사 권력기관화 되며 힘을 한참 팽창시키다가 결국은 대안매체·언론들에 의해 무너지게 됐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세월호 사건이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세월호는 완전히 묻혔을 거다. 국정농단 사태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고 촛불정국도 없었을 거라고 본다.

 

김언경=저도 세월호 때 제일 (언론신뢰 하락을) 많이 느꼈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이틀 동안은 뭘 모니터할지 잘 모르겠더라. 하루 종일 특보를 보며 며칠 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현장에서 그런 구조를 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들이 올라오면서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본 건 다 가짜야 싶었다. 그 아이들이 구출되길 엄청나게 기도하면서 모든 전 국민이 바라보다가 이게 다 가짜였다는 게 드러난 게 다른 어떤 사건보다도 국민 전체에게 미치는 언론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일이었던 것 같다. 


김춘식=저도 세월호라는 데 의견이 같다. 개인적으론 2012년 대선 때 정문헌 의원이 폭로한노무현 대통령 NLL 폐기 발언하고 그다음 국정원 댓글 두 가지 사안에 대한 언론 보도 태도를 보고서 언론에 대해선 더 이상 기대해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언론을 보면 볼수록 진실이 뭔지 더 모르겠는 거다. 또 한가지는 언론 정파성이 참 교묘하게 표출되는 생각을 했다. 과거에는 단언적인, 해석적인 표현을 통해 정파성을 노출했다면 이제는 뉴스를 다루는 방식으로 정파성을 드러내는구나. 대표적인 게 따옴표를 통한 공방식 보도다. 자신들의 책무, 책임이나 진실에 다가서려고 하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정치적인 공방만을 보도하면서 그 문제를 제기한 쪽의 정치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끔 만드는 방식에 저는 상당히 놀랐다.


주류 언론만이 아니라 대안언론이라고 하는 인터넷 언론도 마찬가지니다. 인터넷 매체 자체를 대안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안언론은 보통 기존 주류언론에 대한 대안적 관점을 제공해준다는 차원에서 대안언론이다. 지금과 같이 포털 중심 뉴스유통 구조에서 인터넷언론은 대안 언론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인터넷 언론은 주류 언론의 뉴스 생산관행을 증폭시키고 그 부정적인 측면을 더 전염병처럼 퍼뜨리게 하는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터지기 전 포털 초기화면에 등장하는 정치뉴스 비율은 10%를 못 넘었다.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정치뉴스가 덮는 비율이 전체포털 초기화면 뉴스의 90%가 넘어간다. 이를 어떻게 볼 거냐. 결국 사안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고 하는 언론사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다른 언론사 생산물을 토대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클릭수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전형적인 상업적 목적 뉴스 생산 결과물이다. 문제는 이게 여론에 더 큰 영향력을 준다는 거다.



사회=언론에 대한 불신을 체감한 경험이 있다면?

김언경=언론 불신을 체감하는 가장 큰 일은 장충기 문자였던 거 같다. 더 황당한 건 워낙 이게 보도가 안돼서 페이스북에서 성향 비슷한 친구 사이에서만 공유가 되지 여전히 많은 분들이 모르는 뉴스라는 거다. 검색을 하면 나오는데 노출이 안 되는 거다. 네이버 뉴스메인 화면에서 하도 찾을 수가 없어 지적했더니 네이버에서 와서 ‘한 번 됐다. 두어 시간 동안 돌아가는 화면에서 구석에 노출됐다’고 변명하는데 참 너무 안타까웠다.


김춘식=언론의 의제설정이 왜곡되는 게 갈수록 심해지는 거 같다.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과 비트코인 문제, 최저임금 인상문제 몇 가지를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파편적으로 다루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정파성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뉴스를 처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남북단일팀 문제, 비트코인 문제는 2030세대의 공정성 문제랑 맞물린다. 최저임금 문제도 그런 측면이 있다. 과거 눈 여겨 보지 않았던 세대 간 문제이고 기성세대 입장에선 해석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그런 문제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적이 맞다 하더라도 언론의 역할이 지적하는 걸로 끝나는 건가. 언론이 생각하는 해결책은 뭔가. 저는 도대체 언론에서 해결책을 본적이 없다. 자기들은 감시견 역할을 했다고 주장할진 모르지만 그건 그저 짖을 뿐인 거다. 왜 짖는지가 있어야 되는 건데 그런 얘기가 너무 없다.


어차피 얘기 나온 거지만 남북 단일팀 문제는 2014년인가 2015년인가 문제가 됐다. 당시 새누리당이 여당일 때 평창특별법 얘기가 있었고, 여자 하키가 사실 출전할 수 없는 건데 2000만불을 들여 하기로 했다 이렇게 결론이 난 거지 않나. 어떻게 보면 과거에 공정성하고 다른 관점의 문제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는 무시하고 지금만 얘기하는 거다. 과거 맥락을 이해하고 지금을 보면 미래를 어떻게 해결할지 얘기가 되는 건데 지금만 보니까 그냥 부정적인 감정만 유발하는 욕만 하다 끝나는 거다. 너무 맹목적이고 정파적이다.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보도에선 미래를 찾을 수 없다.


강형철=신뢰라고 하는 건 믿음이다. 내가 지금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이유는 1년 뒤에도 이 사람이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 신문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특히 보수신문 사례를 보면 기가 막히다.


어떤 떈 제왕적 대통령이 안 된다고 하다가 어떨 때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권력이 문제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때 정부가 모법 취지에 맞지 않은 시행령을 만들어서 국회가 그걸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낸적이 있는데 그때 모 신문 1면 제목이 입법 독재였다. 정부가 법의 범위를 벗어난 시행령을 만들어 통치하는 건 행정부 독재다. 그걸 막겠다는 걸 입법독재라고 해서 나간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정권이 바뀌니까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가 된다. 개헌을 해야 한다고 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개헌을 하지 말아야 된다고 한다. 올림픽 단일팀이 중요하다고 하다가 아니라고 하고, 광우병소가 위험하다고 하다가 괜찮다고 한다. 항상 새로 시작한다. 어제 한 말하고 오늘 한 말이 다르면 당연히 신뢰가 떨어진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사회=언론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반응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이나 함의는 무엇일까.


김춘식=과거에는 언론이 제4부다, 입법·사법·행정 다음으로 하나의 독립된 제도로서 저널리즘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걸 위해 종사하는 사람은 그만한 역량을 가지고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사회가 인정을 했다. 저널리즘 실천의 결과물이 뉴스인데 전문가가 생산한 정보와 일반인이 제공한 정보와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가라는 문제의식이 일반인들에게 있는 거다.


그러다보니 전문가는 아니면서도 하나의 독립된 제도로 존재하면서 기득권을 행사하는 게 되는 거다. 지위와 권위라는 건 뉴스 콘텐츠에 대한 배타적 통제능력으로 되는 건데 지금 기자들은 그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 사람들 생각 아닌가. 결국은 윗사람들 말을 받아쳐서 전하는 건지 재해석해서 판단을 해 전하는 게 맞는 건지 정체성의 문제하고 결부된 거란 생각이 든다.


강형철=지금 시민들은 언론이 권력기관화 돼 있다고 본다. 기자들도 언젠가부터 본인을 서민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전두환 정권이라고 얘기하지 않나. 일설에는 ‘기자들이 배고프니까 저런다. 기자들한테 잘 해줘라’해서 소득세 면세해주고, 기자 아파트도 주고, 연수도 보내고 했다는 거다. 정치 엘리트 충원 코스가 돼 왔고, 원하는 대로 세상을 움직여 가는 중요한 파트너가 된 거다.  언론이란 곳이 일반 시민의 삶과는 너무 멀리 있는 존재들인 거다. 멀리 있는 존재들에게 신뢰 또는 가까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문제 같다.


김언경=시민들은 기자가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권에 걸맞은 실력을 갖고 정파성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거 같다. 내가 궁금한 걸 정확하게 알려줘 왜 궁금한 게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야라고 계속 비판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사회=공영방송 정상화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김언경=최승호 PD가 사장이 된 후 MBC보도에 대해 논란이 있지 않았나. MBC는 이제 정상화됐고, 변화하겠다. 그러고 잘하겠다고 약속했고 시민들이 새로 생긴 신생아처럼 기대를 쏟아 부었다. MBC가 KBS 등에 비해 유난히 잘못한 게 아닌데도 엄청난 비판을 받는데 그건 '지금까지 관성화 된 보도는 싫어, 새로운 걸 내놔라' 그런 요구라고 본다. 상투적으로 아는 내용을 대충 해서 보도랍시고 2분 짜리를 내놓지 말고 '내가 궁금한 건 이거야'라고 정확하게 알려줘 요구를 하더라. 그게 시민들의 생각 아닌가 싶다.


기자들은 좀 더 바빠져야겠지만 한편으론 시간을 좀 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기존에 1개씩을 썼다면 이제 2~3일에 하나 쓰되 제대로 된 걸 내놔라, 이렇게 여건이 바뀌지 않으면 지금 같은 보도만 계속 나오지 않을까 싶다. 스케치성이거나 양쪽 주장을 싣고 자기 생각은 없고 그런 샌드위치성 보도를 내면 굉장히 혼나야 되는 그런 상황이라고 본다.


진보적인 보도를 하고 싶어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고 근거를 마련해서 정확한 보도를 해야하는 거지 않나. 생각 자체 방향성도 옳아야 하지만 그걸 설득하는 방식이나 또는 전하는 방식도 옳아야 하는데 지금 나오는 보도들은 구호만 있고 근거는 없는 게 나오고 있다.


강형철=정상화 이후에 정상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기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런데 쉽지는 않을 거다. 여론조사를 보니까 국민 3분의 2이상이 전파를 멈추고 방송을 안 하겠다는 데 찬성했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고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들은 독립성을 외쳤다. 그런데 독립성을 주는 걸로 끝내는 거였나. 아니다. 주도권을 너희에게 주겠다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얘기한 언론에 대한 기대, 일반신문이나 방송들이 못하는 것들을 공영방송이니까 권력이나 자본에서 벗어난 공적 기구니까 잘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갖고 있는 거다.


굉장히 어렵다. 5~10년을 배제됐는데 그걸 복구하는 것도 어려운데, 과거처럼 하는 것도 어려운 판인데 지난 5~6년 새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그게 아니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기대를 하고 있는 거다. 현실적으로 들어가 보면 보도국 구조부터 바꿔야 된다. 출입처 제도를 없애고 새로운 형태의 뉴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당장은 특종 싸움을 해야 한다. 검찰, 국회에서 뉴스가 나온다. 사람을 또 이만큼 보내서 똑같이 출입처 제도를 따라야 한다. 어린애라면 봐줄 텐데 그렇게 봐주지도 않는다. 개혁의 의지가 위축될까봐 걱정이다. MBC나 KBS나 재건 작업에 성원과 지지와 방향성에 대한 얘길 많이 해줘야 할 것 같다.


김춘식=MBC는 여전히 과거 지상파 방송의 제작 아이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사건사고가 큰 게 메인으로 뜨는 경향이 여전히 있다. 물론 그날 발생사건이니까 중요하지만 JTBC로 돌려보니 민주주의 훼손과 관련된 청와대 특활비, MB문제 이런 걸 내세우더라. 공공기대에 부응하는 뉴스를 만들려면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 가치 판단 관행이 변해야 한다. JTBC가 앵커가 소개하고 취재기자가 보도하는 전형적인 뉴스방식을 안하고 있고, MBC도 바뀌면서 차용하고 있는데 아직은 좀 어색하긴 하다. 아무튼 시도는 좋은데 형식적 시도에 그쳐선 안 된다. 실제적으로 그런 포맷이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콘텐츠가 있어야 된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공영방송이 상업방송보다 훨씬 더 나은 품질의 뉴스를 생산할 거라는 믿음은 환상이다. 정치·경제적 독립이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뉴스에 대한 철학이다. JTBC가 그 사례다. 예를 들면 홍석현이라고 하는 최고 경영자가 손석희씨에게 준 게 인사권·편성권을 보장 시켜준 건데 원용시킨다면 공영방송에서 사장이 정치적으로 독립이 되든 안 되든 보도국 영역에서 자율성이 보장된다면 좋은 뉴스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령 그렇더라도 기존 뉴스 생산 관행을 되풀이해선 그 제도가 실효를 보기 힘들다. 공영방송은 보통 뉴스가 메인뉴스가 40분에 끝난다. 그런데 JTBC는100분을 한다. 40분 짜리에서 한 리포트당 평균 시간은 90초 정도밖에 안된다. 그런 뉴스 생산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행 포맷 자체가 상당히 좋은 뉴스를 만들 수도 있다. 지상파 공영방송 같은 경우 누가 봐도 훌륭한 인재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포맷 관행변화가 수반되면 JTBC는 상당히 힘들어질 수 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사회=JTBC는 언론 신뢰 하락 속에서 신뢰를 얻었는데?


김춘식=상업방송의 경우 뉴스를 줄이고 드라마를 늘리는 게 보편적인 편성방침이다. JTBC 같은 경우 뉴스를 늘리고 상업 드라마를 줄였는데 역발상이다. 그런 전략이 채널 브랜딩에 훨씬 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거다.


또 하나는 신규채널이라 인력 자체가 기존 관행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거다. 역으로 얘기하면 기존 지상파 방송이 정치적으로 독립됐다고 해서 좋은 뉴스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보는 이유다. KBS의 문화는 커뮤니케이션 스트럭처가 굉장히 수직적이다. 가서 제작회의를 보면 그걸 느낀다. 독립성이란 명분은 좋지만 그게 모든 걸 설명해주는 변인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문제가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익숙해진 문화와 어떻게 결별하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KBS와 MBC에서 정상화가 동시에 진행되면 JTBC도 경쟁구도가 되다보니까 한국 방송저널리즘 끌어올리는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이 뉴스 신뢰도를 확보한다면 그 영향력은 JTBC 사례와 비견될 수 없다. 왜냐하면 보통의 중소도시, 시골에 계신, 고연령대 같은 경우는 JTBC를 여전히 거의 안보기 때문이다.


강형철=JTBC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인원도 적었고, 기자들도 새로 뽑은 사람들이었다. 네트워크가 없고 맨땅에 헤딩하는 거여서 기성뉴스와 같을 수가 없었다. 손석희씨도 예전에 기자활동을 했지만 원래 아나운서 출신이고 기자 주류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JTBC는 기자집단, 방송기자 비주류에서 만들어내서 이렇게 성공한 거다.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할 수 있었다. 엘리트 네트워크의  뉴스보다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시민들이 관심 있는 게 무엇이고 생각이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거다. 실제 집중성을 갖고 있고 잘 만든 거다.


JTBC는 이렇게 뉴스를 할 수 있다는 거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사안이지만 이 자체가 대안으로 형성된 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미안하지만 JTBC뉴스는 손석희 뉴스인 거다. 손석희 씨가 빠지면 JTBC뉴스는 가능할까. 저는 바로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뉴스거리가 없는 날은 ‘오늘 뉴스 없습니다’ 하는 게 맞지만 뉴스는 해야 된다. 그럴 때 손석희라는 비장의 카드가 있다. 이 사람은 무엇을 해도 시청률은 나온다. 그걸 때워준다. JTBC뉴스를 보면 앵커멘트가다른 뉴스에 비해 훨씬 길다. 많은 걸 때워주고 인터뷰도 하고, 뉴스쇼가 된다. 다른 인물이 왔을 때 그게 가능할까.


뉴스 신뢰도는 채널 신뢰도를 끌고간다. 예능까지 끌어간다. 예전 미국 방송사가 이런 식으로 했다. MBC 같은 경우 채널 이미지를 쇄신하고 과거의 모습을 재건하는 핵심에는 뉴스 회복이 필요하다. 뉴스가 회복돼야 오락까지 살 수 있다.


다만 JTBC가 가는 방식은 전형적인 미국적 앵커 시스템에 의한 공정성 뉴스다. 영국으로 가면 100%달라진다. 앵커는 뉴스리더, 뉴스 프레젠터가 되고 가급적 자기 얘길 하지 않는다. 기사의 엄밀성을 확보해 논증하는 방식으로 싸운다. BBC뉴스가 대표적이다. KBS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보수도 아울러야 하고 JTBC방식은 어려울 거 같다.


김언경=처음엔 다들 라디오 듣는 거 같다고 그랬다. 앵커가 혼자 끌어가는 거였다. 앵커가 주절주절 얘기하고 기자는 받쳐주지 못해주는 느낌의 보도가 많았는데, 신뢰라는 건 해석과 철학의 문제 같다. 특히 세월호 보도에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서 ‘조금 보도 수준은 떨어지더라도 얘들은 속이지 않고 최선을 다 해 지금 하는 수준에선 최고로 고민해서 오늘 저녁에 준거야’ 그런 거다. 저 정도 기자수로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전국 커버도 안되는데라는 불신을 가졌는데 기본 철학이나 이런 걸 잘 보여주면서 감정적으로 신뢰를 갖게 한 거 아닌가 싶다. 


사회=수익모델 붕괴 등 언론 전반의 위기혁신 방안은?


김언경=딱 정답이라 생각되는 건 없다. 매체환경이 변했고, 언론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대로여서 퇴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다만 인터넷 언론들의 시도를 기성 언론들이 해보고 그렇게 잘되는 걸 보면 재미있는 게 꼭 비정치적일 필요는 없는 거 같다. 재미있고, 유쾌하면서도 정보를 주는 그런 내용을 바라고 있다고 본다. 깊이있으면서도 잘 가공된 뉴스를 내놔야 살아남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진부함과 권위주의적인 보도 태도를 바꿔야 하는거 아닌가 싶다.


김춘식=저는 오히려 권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위와 권위로 인정받는 프로페셔널리즘이 아니라면 살아남기 힘들 거라고 본다. 조선일보 유가부수가 100만인데, 저는 부수를 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된다고 본다. 지난해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를 보면 신문 구독률이 9.9%다. 드디어 한 자리로 내려왔다. 종이신문은 곧 없어진다는 얘길해도 과장이 아니다. 온라인 저널리즘으로 가야하는데 지금 같은 유통 구조라면 조선일보도 죽는다. 어떤 언론사도 다 죽는다는 얘기다.


결국 찾아오는 사람을 가지고 살아남아야 하는데 9.9% 구독층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여전히 전문가들이 선호하는 매체는 종이신문이다. 다른 매체에서 받을 수 없는 게 있다고 보는 거다. 전문가에게 먹히는 해석틀이라는 건 우리 사회에 유통될 기회를 많이 갖게 된다는 의미다. 즉 이제는 투스텝 플로우로 가야된다는 거다. 20~70대까지. 진보보수를 막론해서 보편적인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멤버십으로 가는 것도 방법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이 아니라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으로 가고 발행부수도 30만부면 30만부 이렇게 옵티멀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최근 국제뉴스미디어협회나 세계신문협회에서도 나온 결론은 하나다. 결론은 멤버십이다. 구독료밖에 없다. 그러려면 지금과 같은 조직구성을 없애야 할 수도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이슈를 다 다루는데 이 구조가 굉장히 비효율적일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고급여론을 주도하는 게 방법일 수 있다.


강형철=종이신문은 기사 자체가 아닌 편집이 들어간다. 이게 중요하고 이게 1면이고 기사 중요성에 대한 정보가 헤드라인 크기, 면 이런 걸 통해 들어간다. 그게 재미다. 종이신문을 사는 건 의제설정에 대한 기능을 사겠다는 게 포함된다. 멤버십 방향으로 가는 건 맞을 텐데 쉽지 않을 거다. 다운사이징도 해야되고, 부수를 줄이면 비용도 1만원으로는 안 될 거다. 엄청난 결단이 필요할 거다. 


사회=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언경=최근에 기사형 광고, 광고형 기사가 너무 많아졌다. 저는 이런 식으로 신문 만드는 게 제 살 깎아먹기라고 본다. 지금 이렇게 하면 할수록 독자들은 신문을 인터넷 지라시만도 못하게 밖에 안 본다. 뒷면 때문에 본면의 보도 기조 자체를 다 장악해버리고, 전체가 지라시처럼 돼 버리는 상황이다. 기자의 자기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문이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아까도 망했다고 했지만 이제 끝났다, 신문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든다.


강형철=최순실 국정농단 당시 한국의 주류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합심하고 노력했던 건 1987년 이후 최대 공이었다. 다만 지금은 기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굳이 하자면 어떤 모델을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김용진씨가 KBS를 나와 뉴스타파에 가서 방송탐사저널리즘은 이렇게 하는 거라는 모델을 만들었다. 이런 게 굉장한 임팩트를 준다. 다른 매체도 따라가게 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다. 여전히 비어있는 저널리즘 영역들이 있다. 한번에 전체를 바꾸진 못하더라도 모델을 제시해 다른 언론이 따라오도록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춘식=언론사와 기자를 분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전문성 함양 말고는 길이 없다. 다만 실무에서 몇 가지는 당부했으면 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방식의 글쓰기가 필요하다. 온라인상에서 하이퍼링크를 달아주는 걸로도 충분하다. 자사 뿐 아니라 타사 뉴스라도 다뤄줄 필요가 있다. 또 매체 간 상호비평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비판 전에 존중은 있어야 한다. 주류 매체에서 이런 관행만 공유돼도 주류 매체 영향력은 더 커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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