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의 정치개입 외치는 브라질 극우의 망상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의 중심가인 파울리스타 대로는 공휴일과 일요일 낮 시간에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 길이 2.8㎞의 왕복 8차선 도로는 조깅 코스와 자전거 길로 바뀌고 문화예술 공연 무대가 된다. 정치 구호가 넘쳐나는 집회와 시위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 틈에서 군복을 입은 낯선 모습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이 나눠주는 전단은 군부의 정치개입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수년째 계속되는 정국혼란을 끝내고 고질적인 부패를 막으려면 군부가 나서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2014년 초부터 4년째 계속되는 권력형 부패수사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최근 상황이 이들을 분노하게 만든 듯 하다.


현역 장성이 군부의 정치개입을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장성은 국가를 수호하고 민주주의와 사회안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이 정치적 혼란 해결을 위해 나설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난 2003년부터 2016년 중반까지 계속된 좌파 정권은 물론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이 이끄는 현 우파 정권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국방장관이 그를 직위 해제하는 선에서 파문이 수습되는 분위기지만, 현역 장성이 군부의 정치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사실은 앞으로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브라질은 군의 정치개입과 관련해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1964년 3월31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1985년까지 21년간 군사독재정권이 이어졌다. 군사독재 기간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체포·구금되고 사망·실종됐으며 외국으로 추방당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에 시민사회는 군부의 정치개입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한다.


2018년 대선을 앞두고 극우 기독교사회당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연방하원의원이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하는 사실은 뜻밖이다. 여론조사에서 좌파 노동자당의 룰라 전 대통령이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보우소나루 의원이 2위를 고수하며 뒤를 쫓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고 룰라 전 대통령과 보우소나루 의원이 결선투표에서 맞대결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브라질의 트럼프’를 자처하는 보우소나루 의원은 소셜네트워크(SNS)를 적극 활용하며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는 대통령이 되면 거리에 국기를 게양하고 각급 학교에서 국가를 부르도록 하겠다며 애국심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각료의 절반을 군인 출신으로 채우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지지율이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를 이룬 이후 브라질 대선 판도는 사실상 좌파 노동자당과 우파 브라질사회민주당이 양분했다. 1994년과 1998년 대선에서는 브라질사회민주당 후보, 2002년과 2006년 대선에선 노동자당 후보가 승리했다. 2010년과 2014년 대선 역시 노동자당 후보의 승리였다.


정치 전문가들은 2018년 대선도 결국에는 두 정당의 대결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부패 스캔들로 초래된 정치 불신과 리더십 공백으로 혼란이 계속되고 있으나 극우의 목소리에 대선 판세 전체가 휩쓸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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