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했던 5년,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그들은 돌아왔다

MBC 해직 언론인의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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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해직 언론인 6인이 지난 11일 서울 상암 MBC사옥 앞에서 열린 복직행사에서 환하게 웃으며 포토라인에 선 모습. 이들의 복직은 5년 만이다.  이진우 기자

▲MBC 해직 언론인 6인이 지난 11일 서울 상암 MBC사옥 앞에서 열린 복직행사에서 환하게 웃으며 포토라인에 선 모습. 이들의 복직은 5년 만이다. 이진우 기자

레드카펫 밟고 금의환향 “고생하셨다” “감사하다”…뭉클하고 벅찬 첫 출근길

조사 받고 재판 불려다니고, 스스로 다잡으려 학업도, 암 투병 이용마 기자 보살펴

사장으로 앵커로 PD수첩으로…해직 꼬리표 떼고 중책 맡아 “MBC 재건에 역할 다 하겠다”


2108일(이용마), 2079일(정영하·강지웅), 2022일(박성호), 2001일(최승호·박성제). 지난 2012년 해고된 MBC 해직 언론인 6인이 복직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들은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 당시 해고돼 지난 11일에야 금의환향했다. 출근길엔 레드카펫이 깔렸고 동료 600여명은 꽃가루를 뿌리며 “고생하셨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악수를 건넸고 복직을 축하했다. 포토라인에 서서 다시 MBC 사원증을 목에 거는 얼굴에, 출입구를 통과하는 표정에 설렘과 기쁨이 드러났다. 암 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는 “오늘이 올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5년 만에 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 마음은 어떨까. 그 시간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파업은 길었고, 파업 이후 시간은 더 길었다. 모두가 함께 하지만 어떤 몫은 해직 언론인 개개인이 짊어져야 할 수밖에 없었다.


파업 당시 노조위원장이던 정영하 정책기획부장에게 지난 5년은 온전히 노조와 함께 한 시간이었다. 정 부장은 2012년 4월 해고되고 이듬해 2월까지 노조위원장 잔여임기를 맡았다. 2013년, 2014년은 온전히 사측과의 소송전으로 보냈다. 노조 사무처장이던 강지웅 PD와 함께 ‘법정투쟁’으로 2년을 꼬박 지냈다. 부당해고, 업무방해 등과 관련된 경찰·검찰 조사와 재판에 불려다닌 시간.


“1심에서 노조가 승소하고 회사 변호인으로 대형로펌이 들어왔어요. 전관예우가 제일 세다는 부장판사 출신들이 팀단위로 변호하는데 우리는 민주노총 법률원 신인수 변호사 하나였습니다. 지웅이형, 저 이렇게 들러붙었죠. 회사 쪽에서 ‘노조 선정적이고 폭력적이었다’고 하는 증인을 내세우는데 우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조합원이 나오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게 뻔하잖아요. 증인 서달라고 못하겠더라고요.”(정영하)



2심을 준비하며 정 부장은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동료들은 잘 돼도 노조위원장이던 자신은 좀 다른 결과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들었다. 그때 제빵을 배웠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다가 제빵클래스를 다니고 그랬어요. 잘 얘기도 안했던 거 같아요. 쟨 복직생각 없나보다 말 들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노조 집행부로 처음 활동하기 전 음향팀장이던 그는 “MBC 와서 한 게 음향이랑 노조밖에 없네요”라고 말했다. 정 부장은 지난 5년에 대해 “같이 뒹굴었던 동료들을 바라보며 버틸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MBC기자협회장이던 박성호 기자에게 지난 시간은 막연함과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더 몸을 괴롭히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박 기자는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날 밤 박성제 선배와 통화를 하면서 ‘복직까지 5개년 계획을 세우자’고 했더니, 그렇게 오래 걸리겠느냐고 했었다”며 “진짜 세상이 바뀌고 5년 만에 돌아왔다”며 웃었다.


2012년 5월 해직된 박 기자는 그해 연말까지 협회장 임기를 지켰고 다음해부터 방송기자연합회보 편집위원장을 맡았다. 늘 바쁜 기자생활을 해왔던 그에게 잠시 여유가 찾아왔다. 언론분야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얘길 나누고 협회원들에게 전하는 건, 그 자체로 나쁘지 않았다. 다만 괜한 생각이 많아졌다. “지나간 과거, 막연한 미래를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시간 날 때 혼자 지하철 타고 문화유적지 가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었는데, 타이트하게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삶이 흐트러질 것 같았어요.” 스스로를 다잡으며 2014년부터 언론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 결실이 올해 박사학위 논문 <공영방송 뉴스의 불편부당성 연구>다.


이 기간 이용마 기자도 학업에 전념했다. 2007년 수료했던 정치학 박사과정을 2013년 다시 시작해 그해 8월 졸업했다. 이후 모교 한국정치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활약했다.


최승호 현 MBC 사장은 뉴스타파에서 앵커, PD로 현업을 이어갔다. 영화 <자백>, <공범자들>을 제작하며 대중에게 더욱 친숙한 언론인이 됐다. 박성제 기자는 수제 스피커업체를 운영하면서 지난해 말부터 뉴스타파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강지웅 PD는 평소 관심 있던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다. 2015년 말 MBC 노조 상근집행부가 타임오프제 종료로 협업에 복귀하게 되자 정 부장과 강 PD가 이를 맡게 된 것이다. 강 PD는 “170일 파업에 책임 있다는 부채의식이 있어서 조합이 부르면 언제든 가야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올해 2월까지 노조를 지킨 두 사람은 지난해 8월 복막암 판정을 받은 이용마 기자를 살뜰히 챙기고 있다. MBC 기자들 사이에선 이용마를 만나려면 ‘문고리’ 정영하·강지웅을 통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정 부장은 “이렇게 뭉클하고 벅찬 복직의 순간에 용마만 건강하게 서 있었다면 정말 기뻤을 것 텐데”라며 “복직하면서도 그게 제일 걸린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5년 만에 금의환향한 이들은 MBC 재건을 위해 이용마 기자의 몫까지 해야 할 일이 많다. 최승호 사장을 비롯해 정영하 정책기획부장, 박성제 취재센터장은 이름 앞에 ‘해직’을 떼어내고 중책을 맡아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박성호 기자는 뉴스데스크 앵커로 발탁됐고 강지웅 PD는 PD수첩으로 돌아간다.


강 PD는 “복직의 기쁨을 누리는 건 하루면 된다. 실추된 MBC 브랜드를 살리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예전엔 PD수첩에만 제보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때처럼 신뢰를 쌓아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박성호 기자는 “그동안 우리는 공영방송이라는 딱딱한 말을 얼마나 절감하고 실천해왔는지 자문해야 한다. 제2의 창사에 버금하는 의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서 “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취재센터장을 맡은 박성제 기자도 시민, 시청자를 강조했다. 박 기자는 “가르치려 들지 않는 뉴스,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시민과 호흡하는 뉴스가 중요하다”며 “해설이든 비판이든 시청자와 같은 눈높이에 있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후배들과 공영방송 뉴스를 밑바닥에서 다시 세우겠다”고 밝혔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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