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안 논의 시작했지만…

강효상·추혜선 방송법 잇따라 발의
정치권 공영방송 영향력 차단 담아
작년 발의한 박홍근 안과 병합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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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대한 정치권 논의가 재개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구 야권이 발의한 ‘언론장악 방지법’과 최근 야권에서 잇따라 나온 ‘공영방송 탈정치’ 법안의 병합심사가 전망된다. 이번 논의가 공영방송 사장 거취 등 현실과 맞물린 ‘급박한 통과’가 아니라 ‘거버넌스 전반의 개선’을 목표로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지난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과학기술원자력’과 ‘정보통신방송’ 등 2개로 나눈 법안심사소위 구성을 완료했다. 또 오는 28, 29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논의를 예정했다. 현재로선 병합심사 가능성이 높다.


복수의 과방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법안소위에 회부된 안은 지난해 7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162명이 발의한 ‘언론장악 방지법(박홍근안)’이다. 여기에 최근 강효상 자유한국당,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내놓은 법안이 함께 심사대상에 오를 소지가 크다.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당시 야3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당시 야3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다만 숙려기간이 끝나지 않은 두 법안이 회부되기 위해선 위원회 의결이 필요하다. 국회 과방위 야당 관계자는 “쟁점법안(공영방송 지배구조 관련 법안)에 대한 소위 심사 날짜는 확정이 됐다. 병합심사를 위해 24일쯤 상임위 의결을 할 걸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치권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논의는 작년 7월 ‘박홍근 안’ 발의 후 한동안 지속됐지만 당시 여당이던 자유한국당의 거부로 난관을 맞아왔다. 정권교체 후 자유한국당 등 야3당은 이 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현 논의에서 일종의 원안이 되는 ‘박홍근 안’은 ‘방송법’,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 네 개정안의 패키지로, 소위 ‘언론장악 방지법’으로 불린다. KBS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수를 13명으로 통일하고, 추천 주체를 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국회(여야 7대6)’로 바꿨다. 그 외 사장 임면 시 특별다수제(재적이사 3분의 2이상) 도입 및 사장추천위원회 구성, 노사동수편성위원회 설치와 벌칙을 명문화했다.


정권교체 전 발의된 이 법안은 공영방송의 정치권 예속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치권 추천 인사가 공영방송사 이사가 되고, 사장을 뽑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아서다. 여야 모두 수용한 인물만이 사장이 될 수 있는 만큼 ‘김재철 방지법’이며 동시에 ‘손석희 방지법’이란 얘기도 나왔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 아닌 여야 균형에 치중된 안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당시 자유한국당은 이 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권 교체로 여야가 뒤바뀌며 국면이 달라진다. 올해 11월 발의된 ‘강효상 안’과 ‘추혜선 안’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 ‘촛불혁명’과 ‘벚꽃대선’ 이후 나온 두 안은 모두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임에 간여할 가능성을 최소화한, ‘탈정치’를 키워드로 삼고 있다.


우선 ‘강효상 안’은 자유한국당이 현 정부여당의 방송장악을 주장하는 가운데 나왔다. 국회나 방통위가 아니라 지방정부, “명망 있는 사회 단체”가 추천하는 인사로 KBS 이사회를 구성토록 했으며 대한변협, 신문협회, 교총 등 단체가 적시됐다.


‘추혜선 안’은 KBS·EBS 이사회,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추천 권한을 아예 국민들에게 돌렸다. 지역, 성별, 연령 등을 고려해 선정된 일반 국민 200명이 이사추천국민위원회를 구성, 이사 후보자에 대한 공개 면접을 실시하고 다득표 순으로 이사를 추천토록 하는 식이다.


두 법안은 ‘탈정치’라는 새 패러다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한계 역시 안고 있다. ‘강효상 안’은 ‘입법을 통해 사회단체 대표성을 확보한 제도’라는 의미는 있지만 “사회 단체”의 기준이 불분명하고 자의적이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크게 본다면 정치권 영향을 최소화한 것이지만 추천단체로 명시한 대표단체들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다”며 “학계, 교육계, 여성 등 분야를 명시하고 이사 추천권을 갖는 단체들의 기준을 얘기하는 게 독일식 평의회 모델”이라고 했다.


‘추혜선 안’은 촛불혁명 후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담았다는 의의가 있지만 국민 200명 선정 기준의 모호함이 지적된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200명을 어떻게 뽑을지, 어떻게 사회적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올바른 선택을 돕는 방법과 절차는 어때야 하는지 구체성이 떨어진다”며 “잘못된 결과가 나왔을 때 책임 소지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현재로서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법안의 ‘내용’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MBC 신임 사장 선임, KBS 사장 거취 등 쟁점이 닿아 있고, 이견이 큰 세 법안이 단기 내 합의에 이를 가능성도 낮지만 아예 이와 별도로 공영방송 이사회의 지위 등 거버넌스 전반을 살펴야 될 때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00년 제정된 현 통합방송법은 무려 17년 간 유지돼왔다.


국회 과방위 관계자는 “현 공영방송 지배구조 논의는 사장·이사를 누가 뽑는지에 한정돼 있다. 사장 임명동의제, 편성위 결성 등 내부 견제 시스템 마련도 빠뜨리지 않고 가야 된다”면서 “이번 논의가 정치적 종속성을 벗어나는, 물꼬를 트는 의미가 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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