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파업은 국민에 대한 ‘속죄’
집단적 반성, KBS 정상화 출발점
공영방송 몰락 주역들 적반하장
혜택 누려온 내부자들 ‘몰염치’
“공영방송이 이렇게 몰락하도록, 후배들이 이렇게 참담해질 때까지 제대로 지켜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올해로 입사 29년차인 늙은 기자입니다. KBS를 보다 오래 다닌 기자이기에 국민 여러분께 더욱 부끄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후배 여러분께도 미안합니다.”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찾아 죽비를 맞을 때도 후배들은 눈물바다였다. “사고 현장에서 우리를 아프게 한 사람들은 사장이나 경영진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 기자, PD들이었다.” 유족들의 거센 질타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수백 명의 후배들, 공영방송을 장악한 권력과 내부자들에 맞서 지난 9년 온갖 어려움을 겪어야했던 그들이다. 해직되고, 좌천되고, 징계받고,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고….
맞다. 우리의 파업은 망가진 공영방송의 피해자, 국민과 시청자에 대한 ‘속죄’의 과정이다. 어느 후배의 지적처럼 파업을 지지하는 응원의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너네는 뭐했냐?’는 물음, 아직은 곱지 않은 시선을 먼저 이겨내야 한다. 집단적 반성이 KBS를 정상화하는 출발점이다.
그런데 정작 고개를 숙여야할 사람들은 정반대 모습이다. 공영방송 몰락의 주역인 사장과 이사진은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적반하장의 논리로 굳세게 버티고 있다. 국정원 돈을 받고, 업무추진비를 유용한 의혹이 구체화돼도 무작정 잡아떼고 본다. 지난 시절 그들과 함께하며 온갖 혜택을 누려온 또 다른 내부자들은 방송을 지킨다며 그들을 지켜주고 있다. 맞다. 우리의 파업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내부 세력, 몰염치, 비정상과의 싸움이다.
‘다시 KBS, 국민의 방송으로.’ 오늘도 파업구호를 외치며 지난날을 떠올린다. 2000년대 중반, KBS가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때다. ‘외환은행 매각의 비밀’, ‘김앤장을 말하다’ 등 정치경제 권력을 비판하는 탐사프로를 쏟아내고 신뢰도와 영향력은 치솟았다. 후배들아, 조금만 더 힘을 내자. 곧 열리게 될 ‘다시 KBS’, 어디를 가나 자랑스러운 KBS인의 시대, 그 주인공이 바로 너희란다.
※김종명 기자는 KBS 기자협회의 제작거부에 맞춰 8월 25일 순천방송국장직을 자진사퇴하고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회사는 본사 기자인 그를 광주총국 평직원으로 부당 발령해 현재 고발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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