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KBS 기자가 파업 중인 후배들에게

눈물의 반성, 연대와 학습…'다시 KBS'가 열린다

KBS 파업은 국민에 대한 ‘속죄’
집단적 반성, KBS 정상화 출발점

 

공영방송 몰락 주역들 적반하장
혜택 누려온 내부자들 ‘몰염치’


“공영방송이 이렇게 몰락하도록, 후배들이 이렇게 참담해질 때까지 제대로 지켜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올해로 입사 29년차인 늙은 기자입니다. KBS를 보다 오래 다닌 기자이기에 국민 여러분께 더욱 부끄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후배 여러분께도 미안합니다.”

 

김종명 기자(사진 오른쪽)가 지난 9월14일 광화문에서 파업 소식을 담은 KBS새노조 노보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김종명 기자(사진 오른쪽)가 지난 9월14일 광화문에서 파업 소식을 담은 KBS새노조 노보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지역방송국장직을 내려놓은 8월 말 나는 후배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본사와 전국의 기자들이 모여 KBS 정상화를 위한 제작거부 의지를 다지는 자리였다. 고개를 드는데 눈물을 닦는 몇몇 후배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어진 식사 자리. 처음 마주하는 그 후배들이 다가와 술잔을 건넨다. “미안하다는 말, 선배들께 정말 듣고 싶었어요. 오늘 선배가 말해줘 고맙습니다. 우리 많이 힘들었어요.” 모두 뜨거운 눈물을 쏟아 냈다.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찾아 죽비를 맞을 때도 후배들은 눈물바다였다. “사고 현장에서 우리를 아프게 한 사람들은 사장이나 경영진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 기자, PD들이었다.” 유족들의 거센 질타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수백 명의 후배들, 공영방송을 장악한 권력과 내부자들에 맞서 지난 9년 온갖 어려움을 겪어야했던 그들이다. 해직되고, 좌천되고, 징계받고,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고….

 

맞다. 우리의 파업은 망가진 공영방송의 피해자, 국민과 시청자에 대한 ‘속죄’의 과정이다. 어느 후배의 지적처럼 파업을 지지하는 응원의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너네는 뭐했냐?’는 물음, 아직은 곱지 않은 시선을 먼저 이겨내야 한다. 집단적 반성이 KBS를 정상화하는 출발점이다.

 

그런데 정작 고개를 숙여야할 사람들은 정반대 모습이다. 공영방송 몰락의 주역인 사장과 이사진은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적반하장의 논리로 굳세게 버티고 있다. 국정원 돈을 받고, 업무추진비를 유용한 의혹이 구체화돼도 무작정 잡아떼고 본다. 지난 시절 그들과 함께하며 온갖 혜택을 누려온 또 다른 내부자들은 방송을 지킨다며 그들을 지켜주고 있다. 맞다. 우리의 파업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내부 세력, 몰염치, 비정상과의 싸움이다.

 

KBS 20년차 이상 기자들이 인왕산에 올랐다.

▲KBS 20년차 이상 기자들이 인왕산에 올랐다.

파업이 길어지며 후배들의 모습이 달라진다. 매일 이어지는 집회현장에서 얼굴을 마주하다보니 직종과 연차를 떠나 모두 서로를 알게 된다. 우리 공영방송이 어떻게 망가졌고 망가진 저널리즘을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 지 곳곳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공감을 넓혀간다. ‘총과 킬’이 막내 기자들의 최대 현안임을 알게 되고, 뉴스와 시사프로에 대한 정치권 개입이 훨씬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알려준다. 맞다. 우리의 파업은 구성원들의 연대와 학습이다. 정상화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다시 KBS, 국민의 방송으로.’ 오늘도 파업구호를 외치며 지난날을 떠올린다. 2000년대 중반, KBS가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때다. ‘외환은행 매각의 비밀’, ‘김앤장을 말하다’ 등 정치경제 권력을 비판하는 탐사프로를 쏟아내고 신뢰도와 영향력은 치솟았다. 후배들아, 조금만 더 힘을 내자. 곧 열리게 될 ‘다시 KBS’, 어디를 가나 자랑스러운 KBS인의 시대, 그 주인공이 바로 너희란다.

 

※김종명 기자는 KBS 기자협회의 제작거부에 맞춰 8월 25일 순천방송국장직을 자진사퇴하고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회사는 본사 기자인 그를 광주총국 평직원으로 부당 발령해 현재 고발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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