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은 지루한 쇼를 싫어하고, 늘 새로운 자극을 쫓게 마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팬의 열망을 누구보다 잘 채워준다. 지난 대선에서 그에게 한 표를 던졌던 유권자의 80% 이상이 여전히 그를 지지하고 있다. 그가 역대 대통령 중에서 당선 1년 만에 35% 안팎의 사상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여론 조사가 결과가 속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집토끼만 잘 지키면 굳이 산토끼를 잡지 않아도 되는 게 블루 아메리카와 레드 아메리카로 갈린 미국 정치의 엄연한 현실이다.
트럼프의 정치는 집토끼가 싫증이 나는 일이 없도록 끝없이 리얼리티 쇼를 보여주는 것이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조나 골드버그는 “대선이 끝난지 1년이 지났지만, 트럼프가 여전히 대선 모드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대선 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 의혹인 ‘러시아 스캔들’에 따른 특검 수사에 맞불을 놓으려고 법무부에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은 실제로 클린턴 수사를 위한 특검 지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골드버그는 “트럼프가 오락과 정치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비판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트럼프 쇼’의 단골 조연이다. 백악관 일일 브리핑에서 새라 샌더스 대변인을 상대로 질문 공세를 펴는 기자들은 CNN 등 방송 생중계를 의식해 질문하게 마련이다. 자신이 속한 매체의 간부 및 동료, 독자 또는 시청자가 주요 ‘관객’이다. 기자들이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서로 질문 기회를 잡으려고 경쟁하고, 트럼프와 샌더스 대변인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하는데 정신이 팔렸다. 사실 공격적인 질문을 한다고 해서 알맹이 있는 답변이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샌더스 대변인은 그런 거친 질문 공세에 언제나 굳은 표정으로 들으나 마나 한 답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트럼프 쇼의 백악관 브리핑 파트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다.
백악관 브리핑만 보면 기자들이 트럼프 정부 당국자들과 싸움을 일삼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브리핑 룸의 중계 카메라가 사라지면 기자들과 당국자들이 연기를 끝낸 배우들처럼 일상으로 돌아간다. 서로 즐겁게 환담하고, 샌더스 대변인이나 백악관 당국자들은 브리핑에서 말하지 않았던 내용을 기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게다가 막후에서 트럼프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유력 언론사 기자를 상대로 고급 정보를 흘리는 언론 플레이가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트럼프 주연, 기자 조연 대국민 쇼를 보는 미국 국민의 눈매는 무섭다. 최근 퀴니피액이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8%가 미국 언론의 트럼프에 관한 보도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53%가 언론이 트럼프에 관한 부정적인 보도에 집착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 언론이 트럼프 쇼에 휘둘리다 보면 공정성과 신뢰를 잃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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