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스터디 열기 후끈…아이디어 얻고 콘텐츠도 제작

함께 모여 독서 공부 토론
기자 스스로 만든 재교육‧전문성 기회
언론사 스터디 운영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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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지난달 '데송합니다' 시리즈를 시작했다. '데이터 속 숨은 의미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로 데이터를 통해 사회문제를 포착하는 기획이다.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인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사연 9832건을 수집분석해 대학생들의 불안감을 들여다봤고, 서울 자치구별 공공도서관 현황을 살펴 접근성 취약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격주 토요일마다 지면에 실리는 이 기사는 한국일보 '데이터저널리즘 학습 동아리'가 담당한다. 데이터저널리즘에 관심 있는 기자들이 지난 3월부터 자발적으로 모여 매주 공부한 내용을 콘텐츠로 구현한 것이다.


박소영 한국일보 기자는 "기사품질을 높이려면 취재기법과 콘텐츠 제작방법을 다양화해야 하는데 그 대책 중 하나가 데이터저널리즘"이라며 "혼자보다 여럿이 공부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기사로 실습하며 실력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데이터저널리즘 스터디가 담당하는 '데송합니다' 기획 시리즈. 페북 대나무숲(좌), 서울 공공도서관 데이터를 분석했다.

▲한국일보 데이터저널리즘 스터디가 담당하는 '데송합니다' 기획 시리즈. 페북 대나무숲(좌), 서울 공공도서관 데이터를 분석했다.


함께 모여 독서 공부 토론
이들처럼 공통 관심사로 사내 스터디(학습모임)를 꾸려 공부하는 기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디지털 콘텐츠, 뉴미디어, 독서토론, 중국, 페미니즘 등 주제도 다양하다.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스터디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언론사도 많다.


취재하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기자들은 스터디에 참여해 지적욕구를 채우고 있다. 친목모임, 동호회와 달리 공부한 내용을 업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스터디의 이점이다. 기자들은 취재에 필요한 직‧간접적 정보를 얻거나 강사로 초청한 유명 인사와 돈독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사내 독서토론 모임에서 활동하는 강병한 경향신문 기자는 "독서와 공부는 취재의 토양이 되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소홀했다"며 "혼자서는 잘 안하게 되니까 함께 모여 책 읽고 공부하자는 취지로 2015년에 모임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독서모임은 보통 3주에 한 번 오후 7시께 열린다. 저자에게 직접 책의 내용을 듣고 토론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김영란 전 대법관, 문유석 부장판사,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역사학자 김시덕 등 20여명을 초청했다. 공식 회원은 없지만 단톡방에 속한 20여명이 자유롭게 모임에 참석한다.


강 기자는 “매회 7~10명 정도 참여하는데 책을 다 읽지 않아도 돼 부담이 없다”며 “토론이 끝나면 간단히 맥주 뒤풀이를 한다. 강연자들은 기자들에게 친밀한 취재원이 된다”고 덧붙였다.


기자 스스로 만든 재교육‧전문성 기회
스터디는 기자들에게 재교육 기회이기도 하다. 체계적인 재교육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국내 언론계에서 기자들 스스로 돌파구를 찾은 셈이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중국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세정 중앙일보 기자는 스터디와 재교육, 전문성이 선순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 기자는 “전문가는 많아졌는데 정작 전문적인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기자들의 전문성은 부족하다. 결국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며 “계속 공부할 가치가 있는 주제, 잘 짜인 커리큘럼, 회사의 재정적 지원이 밑바탕 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중연(중앙미디어네트워크 중국연구회) 회원 17명이 지난 3~5일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마주한 중국 푸젠성 샤먼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샤면 해변에 중국이 세운 '일국양제 통일중국' 대형 선전간판 앞에서 기념촬영했다(왼쪽). 중중연 제공.

▲중중연(중앙미디어네트워크 중국연구회) 회원 17명이 지난 3~5일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마주한 중국 푸젠성 샤먼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샤면 해변에 중국이 세운 '일국양제 통일중국' 대형 선전간판 앞에서 기념촬영했다(왼쪽). 중중연 제공.


창립 11년을 맞은 중국연구회는 중국 관련 교양과 전문성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매월 셋째 주 화요일 점심 중국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분야의 교수 등 외부 강사를 초청해 강연을 열고 있다. 특강 내용은 중앙일보가 운영하는 네이버 주제판 ‘차이나랩’ 콘텐츠에도 실린다.


회원들이 월 2만원씩 모은 자금으로 중국 현지에서 역사탐방을 하기도 한다. 이달 3~5일 회원 32명 중 17명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마주한 중국 푸젠성 샤먼지역 등을 다녀왔다.


여성이슈를 꾸준히 다뤄온 이정연 한겨레 기자도 스터디에서 전문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페미니즘, 여성문제에 관심 있는 선후배들과 ‘페미라이터 인 한겨레’를 조직하고 기사 방향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


이들은 매달 한차례 점심시간에 만나 성차별 관련 서적을 읽고 감상을 공유했다. 다음 모임부턴 여성주의에 기반한 콘텐츠 제작‧유통 미디어들을 분석할 계획이다.


이 기자는 “주로 사회부에서 여성문제를 소화하지만 제가 있는 경제부나 정치부, 스포츠부, 국제부 등에서도 이 분야를 기사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기자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기사, 외적인 부분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부서가 다르고 나이 차가 커서 얼굴 맞댈 일 없던 구성원들이 자연스레 대화하게 되는 것도 스터디의 긍정적 효과다. 장세정 기자는 “보통 선후배간 위계가 있어 눈치를 보게 되는데 스터디는 연차와 관계없이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수평적 구조”라며 “일할 때와는 달리 선후배들과 편안하고 즐겁게 대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정연 기자는 사내 공동체가 기자사회에 퍼져있는 개인주의 경향을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기자는 “개인주의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일하다 보면 한계에 부딪힐 때도 있다”며 “스터디 같은 공동체에서 고민을 나누고 함께 계획하면 생각이 폭넓어진다. 쉽게 말해 기자 개인이 덜 외로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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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지 9곳 모두 운영…경제지, 활동 거의 없어


종합일간지 9곳 중 사내 스터디(학습모임)를 운영하는 곳은 8곳이다. 학습조직, 학습동아리, 사내연구모임, 실행공동체, 조인스터디 등 신문사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지원 범위는 대체로 비슷하다. 기자뿐 아니라 다양한 직군의 구성원들도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다.


먼저 종합지 가운데 스터디가 3개 이상 꾸려진 곳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등이다.


동아일보는 ‘함께 배우고 같이 성장하는 동아미디어그룹, 전문성을 통한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내걸고 자발적으로 조직된 10여개 '학습조직(CoP·실행공동체)'을 지원하고 있다. 조선일보에도 사원들의 자기계발 활성화를 목적으로 직무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사내연구모임' 8개가 운영 중이다.


중앙일보는 공부하는 사내문화 조성을 위해 2015년 '조인스터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공통관심사를 가진 구성원들이 모여 업무관련 지식, 노하우를 학습하고 그 결과를 업무에 적용하는 자발적‧자율적 모임이다. 중국연구회, 북한연구회, J-글로벌워치(국제정치), 외교안보J 등이 있으며 JTBC에는 탐사프로그램 학습모임 등 10여개가 활동한다.


한겨레는 10여년 전부터 사내 스터디를 지원해왔다. 현재 미디어공부, 공간문화연구, 공시학습, 정치사회연구, 환율민주주의, 페미라이터인한겨레(페미니즘) 등 6개 주제로 모임이 있다. 경향신문에선 책을 읽고 저자와 함께 토론하는 독서모임, 국제부 중심으로 이뤄지는 전문가 초청 스터디가 매달 열린다. 세계일보에는 디지털 뉴스 동아리와 데스크 주축으로 구성된 독서모임, 한국일보에는 데이터저널리즘 스터디가 운영된다. 국민일보의 경우 종교국 기자들이 종교책 스터디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는 회사에서 강사 초청비, 교재비 등을 지원한다. 경향신문은 기자협회지회에서 강사 초청비를, 노조에서 일부 식비를 제공한다. 세계일보는 회원당 5만원을 연 1회 지급하고 한겨레는 스터디마다 월 20만원씩, 국민일보는 회원이 15명 이상일 때 매달 지원금 10만원을 준다.


서울신문은 스터디 지원제도가 없다. 사내 경제독서 모임이 있으나 별도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 중이다.


경제지 3곳에선 스터디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 서울경제는 노조에 지원 규약이 있으나 현재 운영되는 스터디가 없고 매일경제‧한국경제는 스터디, 지원 제도 모두 없다.


기자들은 회사의 지원이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중앙 중국연구회 회장인 장세정 기자는 “회사가 식비, 강사료, 교재비 같은 현실적인 토대를 마련해줬기 때문에 맘 놓고 공부할 수 있다”며 “스터디가 재교육 역할을 하게 되면 기자 개인뿐 아니라 회사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지원한다 해도 기자들의 스터디 참여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경제지 A 기자는 “예전에 작은 모임이 몇 개 있었는데 흐지부지 됐다”며 “같이 공부하자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회사의 지원도 없었다. 무엇보다 외부에서 취재하고 서로 바쁘다 보니 시간 맞추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했다.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는 종합일간지 B 기자는 “스터디를 하고 있었는데 다들 인사가 나서 모임이 깨진 적이 있다. 상대적으로 바쁜 정치부, 사회부는 참여가 더 어렵다”며 “그래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기자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자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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