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

패션센터 직원 스스로 목숨 끊어…유족, 장례 미루며 진상규명 요구
해당기자 "팩트 보도했을 뿐 보복성 기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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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패션산업연구원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B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 제공)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서 근무하던 50대 직원이 기자에게 “펜을 든 살인자”라는 문자를 보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해당 기자에게 비난이 쏠리고 있다.


대구에 있는 이 연구원의 패션센터에서 대관업무를 담당한 책임행정원 A씨는 지난달 31일 패션센터 지하 주차장에 세워 둔 자신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사망 전인 이날 새벽 2시2분에 한 인터넷 매체 B기자에게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 그동안 얼마나 당신 글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생각해보았는지요. 당신이 쓴 글에 대해서 책임질 것을 바랍니다”는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유족과 공공연구노조는 A씨가 패션센터 대관업무를 비판하는 B기자의 기사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A씨가 남긴 3장 분량의 문서에는 한 업체의 센터 대관신청에서 불거진 문제, B기자가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등 갈등 상황이 적혀 있다.


B기자는 지난달 16일과 30일 출고한 <한국패션센터가 개인 건물? ‘갑 질’ 도 넘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패션센터 그대로 방치하나?>에서 패션센터 대관에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기사에는 ‘A씨가 16년 동안 대공연장과 대회의실 등 대관 업무를 도맡아 운영하면서 특정업체의 편의를 봐줬다는 주장이 나왔다’, ‘행사 업체가 대관 책임자에게 ‘성의 표시’를 했다’. ‘A씨가 임대를 마음대로 결정했다’, ‘최근부터 내년 4월까지 대관이 꽉 차 있다고 했지만, 확인 결과 실제 확정된 대관 일정은 8건에 20일이었다’는 내용 등이 실려 있다.


A씨 사망 관련 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꾸린 유족과 노조,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이 남긴 자료에 의하면 B기자가 작성한 기사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B기자의 부당한 청탁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행위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 관계자는 기자협회보에 “고인이 남긴 자료와 통화내역 등을 분석해 사망 원인을 밝힐 것”이라며 “패션센터 1층 로비에 빈소를 차렸다. 이 일이 해결되고 고인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구시에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해당 기자에게는 당장 할 말이 없다”면서도 “기사에는 (A씨가) 갑질을 하고 뇌물을 받았다고 하는데, (B기자는) 제보자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B기자는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입장을 밝히는 게 조심스럽지만 기사는 제보자 5명과 패션산업연구원, 대구시 등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며 “팩트를 기반으로 했을 뿐 사적 이익을 얻거나 보복성으로 쓰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A씨가 남긴 문서에 제가 ‘박살낸다’고 협박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A씨와 통화할 때 아내와 초등학생 막둥이가 옆에 있었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B기자는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명하면 고인을 욕보이게 할 수 있고, 취재원도 보호하지 못할 것 같았다”며 “종합일간지 대구주재 등 2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해왔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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