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장악이 주 업무였던 국정원 사람들, 이길 수 없었다"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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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선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가 열렸다.


“언론장악은 조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청와대, 국가정보원, 회사 내부 인물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이 각자 역할을 맡아 언론 통제를 시도했죠. 특히 청와대와 국정원과 회사엔 언론장악이 주 업무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밥 먹고 그 일만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취재와 방송 제작이 주 업무인 제작진이 아무리 저항하고 발버둥 쳐도 이길 수 없었습니다.”(김범수 KBS 전 ‘추적60분’ PD)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으로 피해를 본 언론인들이 자신과 프로그램, 동료들의 피해 사례를 발표했다. 18일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표현의자유특별위원장 주관으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린 ‘언론장악 국정원 문건 피해자 보고대회’에는 민일홍 KBS 라디오 PD, 김범수 PD, 이근행 MBC 전 시사교양국 PD, 이우환 MBC 전 ‘PD수첩’ PD 등이 참여해 국정원의 언론 장악 과정과 피해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은 KBS와 MBC 언론인을 사찰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퇴출시키며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내용 등이 담긴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2010년 3월 작성) 문건과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 쇄신 추진방안’(2010년 6월 작성) 문건 등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고, 이런 국정원의 공영방송 장악 공작은 방송사 내부자들의 협조 아래 차례차례 실행됐다.


라디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민일홍 PD는 “공영방송을 정권의 홍보 채널로 전락시킨 시발점은 2008년 10월13일부터 2013년 2월18일까지 4년 4개월 동안 109회가 방송된 ‘대통령 주례연설’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기획으로 일방적으로 시작된 프로그램으로, 방송국 책임자들은 청와대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데 급급했다”며 “그러나 프로그램은 용산참사, 유성기업 파업 등과 관련해 회를 거듭할수록 공정성 시비를 야기시켰다. 주례연설 반대 투쟁을 했던 나는 2009년 사측으로부터 2회 연속 저성과자 인사고과를 받았고 그 해 가을엔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주례연설 관련해 만나서 얘기 좀 하자’는 전화까지 받았다”고 했다.    


반면 주례연설을 담당했던 제작진은 출세 가도를 달렸다. 당시 1라디오 팀장이었던 성대경 PD는 KBS미디어 본부장으로, 서기철 당시 라디오 편성팀장은 1라디오 국장으로, 이경우 당시 주례연설 PD는 라디오센터장으로 영전했다. 민 PD는 “이경우 PD의 경우 8년 만에 직원에서 임원으로 올라가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며 “당시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에서 코너 형식으로 주례연설을 방송하던 민경욱은 KBS에선 유일무이하게 ‘생방송 심야토론’ ‘열린토론’ ‘9시뉴스’ 등 시사프로그램 진행 3관왕을 차지했고 결국 청와대 대변인으로 갔다”고 전했다.


블랙리스트도 공공연했다. 민 PD는 “윤도현, 정관용, 박인규, 정한용 등 블랙리스트에 오른 진행자는 정권 초반기에 이미 일방적으로 퇴출됐다. 진중권, 김용민, 유창선 같은 게스트 역시 마찬가지였다”며 “웃긴 건 KBS 기자인 엄경철도 ‘올드하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부당한 거다. 라디오라서 얼굴이 나가지도 않는데 KBS 직원 사이에도 블랙리스트가 있는 거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고 했다.


단순출연 거부는 수시로 일어났다. 민 PD는 “대표적인 것이 경향신문 한겨레 오마이뉴스 기자들이었다”며 “제작진이 출연 섭외를 해서 큐시트에 올려도 데스킹에서 다 걸러졌다. 김갑수 문화평론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KBS ‘추적60분’ 역시 국정원의 간섭을 피해갈 수 없었다. 김범수 PD는 “2009년 11월 김인규가 KBS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조직개편을 통해 ‘추적60분’을 보도본부로 넘기려 했다. 당시 KBS에 남은 유일한 PD 시사프로그램이었기에 거의 대부분의 PD가 이 이관에 반대했다”며 “매일 피케팅하고 PD 총회가 열리고 협회장이 삭발하고 심지어 팀장, 부장이 모두 보직 사퇴서를 제출하며 반대했지만 김인규는 끝내 밀어붙였다. 그런데 그 이유는 국정원 문건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복원한 국정원 문건을 보면 ‘경영진이 의욕적으로 조직개편 추진 중이니 최소한 기준 제시하고 KBS 측에 맡겨 사원행동,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 편파방송 했던 자는 배제할 것 주문’ ‘윤태호 추적PD(당시 추적 팀장) 사원행동, 불법행위 주도, PD들 편파방송 방치, 노무현 특집 천안함 좌초 의혹’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김 PD는 “국정원은 KBS 구성원들이 몰랐던 조직개편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고 거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며 프로그램과 PD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방송과 인사에 개입했다”면서 “그렇게 ‘추적60분’이 보도본부로 이관된 이후에는 게이트키핑을 명분으로 제작 자율성을 침해했다. 워낙 일상적으로 이뤄져서 대표적인 사안들만 소개한다”며 조현오 막말 동영상 편, 천안함 편, 4대강 편, MBC 파업 편,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편 등을 설명했다. 


김 PD는 “이건 대표적인 사안에 불과하다. 아주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간섭과 통제가 매일 매일 있었다”며 “지금 보니 그 배후에 청와대와 국정원이 있었다. 나머지 문건과 증언들이 다 모여 구체적인 매커니즘이 밝혀져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뿐만 아니었다. MBC 역시 국정원의 치밀한 정치공작 속에 수많은 시련을 견뎠다. 이근행 PD는 “국정원은 문건에서 MBC의 ‘당면과제’로 ‘노영방송 척결’을 가장 먼저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노조 활동은 사규에 따라 엄중 징계하고 주동자는 적극적 사법처리로 영구 퇴출’할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며 “회사는 2010년 6월 저를 39일 파업을 주도한 책임을 물어 해고하고 노조집행부 등 47명을 중징계 했다. 2012년 170일 파업 투쟁 땐 피바람을 일으켜 박성호 MBC 기자회장,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 등이 국정원 시나리오대로 ‘영구 퇴출’됐다”고 했다.


이 PD는 “아직도 해고자는 돌아오지 못하고 징계자들은 원상회복되지 못했다. 200여 조합원이 본업에서 쫓겨나 있다”며 “정권의 범죄이고, 국정원의 범죄이고, 부역 언론집단의 범죄이다.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우환 PD는 ‘국정원 언론 파괴 및 장악’ 문건 관련 피해자 조사를 받으면서 본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 문건을 복기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 PD는 “총 3단계로 이뤄져 있는데 1단계는 간부진 인적 쇄신을 통한 편파보도 퇴출, 손석희 김미화 성경섭 김성수 등 문제 진행자들 반드시 교체 등이었다”며 “2단계는 노조 무력화 및 조직개편으로 근본적 체질 변화 유도, 무능 기자 PD는 저인망식 인적 쇄신, PD수첩을 보도본부 산하로 옮기는 등 헤쳐모여식 조직개편이었다”고 했다.


이어 “3단계는 소유구조 개편 논의로 언론 선진화에 동참, 민영화였다. 미국의 폭스TV처럼 만들어보려 했던 것 같다”며 “이 전략은 내부 투쟁으로 일정 부분 지연됐지만 계속 업데이트 됐을 것이다. 이 문건들에 근거해 수사를 하고 처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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