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들은 왜 지난 5년간 침묵했나

'잉여와 도구' 펴낸 임명현 M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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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영방송 파업은 특이하게도 대부분 피해를 느끼지 않고 있다는 거에요. 경영진 입장에서는 대충 재방송 돌리면 되고 보기 싫은 직원들이 없으니까 오히려 좋고, 이미 MBC를 사랑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난 상태라 시청자들에게도 별 영향이 없거든요. 결국 불편함을 느끼는 건 MBC 직원들밖에 없는 거죠.”


KBS MBC 양대 공영 방송사가 파업에 돌입한 지 벌써 7주차에 접어들었다. 최근 MBC의 비인격적인 인사관리를 고발한 신간 <잉여와 도구>를 펴낸 임명현 MBC 기자는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진행된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천여명의 공영언론 종사자들이 제작에서 손을 뗐는데도 파업이 눈에 띄지 않는 건 확실히 이례적”이라며 “사장의 거취가 결론나지 않으면 파업이 끝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노조원들은 버티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결국 해임권한을 가진 방송통신위원회나 방송문화진흥회에서 하루 속히 절차적인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잉여와 도구>에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자행된 MBC 구성원들에 대한 ‘비인격적 인사관리’의 단면이 담겼다. 강압적인 인사 조치는 권력의 검열이나 경영진의 부당한 보도개입이 있을 때마다 활발하게 싸우던 조직 문화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임 기자는 “보도가 나아져서가 아니었다. 훨씬 나빠졌는데도 구성원들은 어느 순간부터 침묵했다”며 “경영진이 극우적이고 구시대적인 시각을 뉴스에 관철하기 위해 인사관리라는 보복의 형태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이후 해고를 포함해 징계와 전보를 받은 MBC 구성원은 200여명이 넘는다.


“녹취된 내용을 풀 때 괴로웠어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동료들의 이야기잖아요. 물리적 여건상 한밤중에 녹취를 들으면서 책을 썼는데, 심정 고통이 그대로 전달되다보니까 정서적으로 힘들더라고요.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에 그 육성이 재생되면서 잠도 잘 안 왔어요.”


임 기자는 총 27명의 MBC 기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 했다. 경인지사,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등 이른바 ‘유배지’에 내쫓긴 공채 기자들 외에도, 그 인력을 대체한 시용·경력기자의 목소리도 담았다. ‘왜 5년 동안 MBC 기자들이 저항을 유예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들은 각자가 처한 입장과 상황에 맞게 담담하게 풀어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잖아요. 100년, 200년 걸릴 게 압축적으로 이뤄지다 겪은 크고 작은 반동이라고 생각해요. MBC가 누린 2000년대 초반의 전성기도 민주주의 기반이 취약한 토대에서 이뤄진 거거든요. 지난 9년간 혹독한 경험들이었지만, 이런 과정들은 국민들에게 공공의 방송으로 인정받고 보도의 공신력이나 신뢰도를 쌓아가는 데 있어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기자는 “최악의 리더십을 막기 위해서는 불신 받는 경영진이 들어섰을 때 그 리더십을 중간에 멈추게 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 제도는 가장 훌륭한 왕을 뽑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최악의 대통령이 선출됐을 때 그것을 중단시키는, 최악을 막기 위한 제도”라며 “공영방송의 사장도 임기 내 재평가를 통해 중간에 재신임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파업이 끝난 후 MBC에 남은 과제에 대해서는 “적폐 청산도 필요하지만 전유의 과정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조직의 결속, 연대를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잔재들을 해체한 후 그 의미를 다시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지난 5년간 실천의 방식은 버팀과 기다림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파업도 조급해하지 말고 공영방송이 민주주의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기나긴 과정이니, 서로를 신뢰하면서 좀 더 버텨보자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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