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은 더 이상 논설실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설·칼럼만 쓰는 것은 옛말…현장 취재·디지털 글쓰기 활약
오피니언면 늘린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름 내건 콘텐츠 선보여
취재경험·전문성 살릴 기회지만 논설위원 본연 역할 약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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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들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사설·칼럼을 넘어 그간 쌓아온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직접 현장을 취재한 기사를 내놓고 있는 것. 중앙일보 논설위원실이 대표적이다. 사진은 왼쪽부터 조강수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남정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대사관은 말한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의 팟캐스트 <단언컨대>.


조강수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3월 큼지막한 백팩 하나를 장만했다. 취재에 필요한 노트북, 자료, 수첩, 펜, 보조배터리, 충전기를 넣고 다니기 위해서다. 조 논설위원은 이 검정색 가방을 메고 현장을 누빈다. 사회부장을 지내는 등 오랜 사회부 경력을 바탕으로 사회 문제, 이슈를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중앙일보가 지난 7월 오피니언면에 ‘논설위원이 간다’ 코너를 신설한 후 달라진 중앙 논설위원들의 모습이다. 코너 아래 <고대훈의 Fact&Fiction>, <남정호의 대사관은 말한다>, <김동호의 4차 산업혁명>, <서경호의 산업지도>, <김환영의 지식의 현장>, <조강수의 세상만사> 등 논설위원들의 이름을 내건 콘텐츠를 선보인다. 지난해부터 연재 중인 ‘직격 인터뷰’도 논설위원들의 몫이다.


13일 만난 조 논설위원은 자신이 쓴 ‘직격 인터뷰’가 실린 지면을 들고 있었다. 인터뷰이는 소년범들에게 ‘호통 판사’로 통하는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이틀 전 부산을 찾아 천 판사를 인터뷰한 게 이날 나왔다고 했다.


지면에는 사진 한 장과 본문 활자가 전부지만 온라인 기사에는 사진 3장, 동영상 2개도 실려있다. 별도의 사진과 동영상 모두 조 논설위원이 직접 찍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천 판사에게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부탁하고선 휴대폰으로 촬영했다”며 “아이들에게 받은 선물도 많길래 그것도 사진, 동영상으로 찍었다”고 설명했다.


▲조강수 중앙일보 논설위원. 현장취재 때마다 메고 다니는 검정 백팩이 그의 오른쪽에 있다.


2주에 한 번 연재하는 <조강수의 세상만사>도 늘 현장에서 취재한다. 비(非)대법관 출신인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이 대법원장에 지명됐을 땐, 그가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을 면담하러 춘천지법에서 대법원까지 시외버스·지하철을 갈아타고 온 경로를 되짚어가며 취재했다.


현장취재 기사뿐 아니라 사설과 칼럼까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조 논설위원은 “논설실 막내라 편집국장, 부장으로 모셨던 선배들과 함께 일한다”며 “그 선배들도 다 현장에서 취재하신다”고 했다. 그는 또 “기사는 팩트고 칼럼은 의견이지 않나. <세상만사>는 르포기사와 칼럼을 합친, 깊이 있는 콘텐츠로 콘셉트를 잡았다”고 말했다.

역할 확대 ‘고품질 콘텐츠·디지털 혁신’
논설위원은 취재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책 읽고 공부하며 사설과 칼럼을 쓴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논설위원들 사이에선 ‘사설이 잡히면 보람찬 날이고, 사설이 안 잡히면 행복한 날’이라는 말이 있다. 논설위원 생활에 만족감을 표현한 문장이다.


중앙일보는 그런 이들에게 전통적인 역할을 뛰어넘도록 했다. 오랜 취재 경험과 통찰력으로 현장에서 고품질 콘텐츠를 제작하자는 주문이었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회사가 디지털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논설위원들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는 취지”라며 “디지털에서는 더더욱 현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논설위원들이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 현장에서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기사를 써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중앙일보는 지면을 개편하면서 4면이던 오피니언면을 6면으로 늘렸다. 그 자리에 ‘논설위원이 간다’ 등을 배치했다. 지난해에는 논설위원실이 페이스북 라이브나 카드뉴스, 웹툰형식 만평 등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자신의 전문분야를 다룬 기사, 에세이를 쓰거나 SNS 등 또 다른 플랫폼을 활용하는 논설위원들이 있다. 경향신문에선 이대근 논설주간의 <단언컨대>(한반도 문제), 이기환 논설위원의 <흔적의 역사>를 팟캐스트로 들을 수 있다. 문화전문기자로 활약하며 문화재를 취재해 온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은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을, 배연국 세계일보 논설실장은 온라인에 에세이 <행복한 세상>을 연재하고 있다.

“논설위원 스스로 변화해야”
중앙일보는 논설위원들이 현장에서 쓴 고퀄리티 기사가 지면 독자들 뿐 아니라 디지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디어 혁신은 젊은 기자들 위주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취재력을 갖춘 노장들이 혁신에 큰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논설위원 역할 확대에 공감하는 다른 언론사 기자들 역시 기자의 전문성, 품질 높은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은 “논설위원들이 쌓아온 역량을 확장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며 “신문산업은 쇠퇴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논설위원처럼 전문성 있는 기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다른 신문사로도 퍼질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논설위원 출신인 한 일간지 간부는 일선 기자들의 기사와 차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전반적으로 콘텐츠 질이 낮아진 상황에서 논설위원들이 고품질 기사를 내놓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들 이쪽으로 가야 한다”며 “다만 후배들이 하지 못하는 취재, 차별화된 아이템을 다뤄야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논설위원의 변신에 대한 우려와 현실적인 어려움을 내비치는 이들도 있었다. 배연국 세계일보 논설실장은 “같은 인터뷰이라도 논설위원들의 배경지식과 경험을 통해 다른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서도 “사설과 칼럼은 언론 본연의 길인 사회의 목탁 역할을 한다. 다른 업무에 힘을 쏟다 이 기능들이 가벼워지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간지 편집국 한 간부는 “요즘 신문 독자들은 1면만 보고 바로 오피니언면으로 넘긴다. 이런 점에서 중앙일보의 논설위원 콘텐츠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우리 논설위원실에도 제안하고 싶지만 편집국과 분리돼 있는 데다 대부분 선배들이라 쉽게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 조강수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논설위원의 의지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 논설위원은 “논설위원 스스로 계속 앉아있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디지털 시대에선 깊이 있는 내용을 빨리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이 방향이 맞다. 그게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그는 “몸이 힘들 때도 있지만 현장에 가면 기자로서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며 “백발 기자가 가방을 메고 취재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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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논설위원 수 가장 많아
종합일간지·지상파 평균 10.8명


종합일간지 9곳과 지상파 3사의 논설위원 현황을 살펴본 결과 중앙일보가 16명으로 가장 많았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실에는 이들 외에도 편집국 보직과 논설위원을 겸하는 4명, 칼럼리스트 3명도 속해 있다.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곳은 동아일보(14명)였고 세 번째는 조선일보(12명)였다. 그 뒤로 서울신문(11명), 경향신문·세계일보·한국일보(10명), 국민일보·한겨레(9명) 순이었다. 종합일간지 9곳의 평균 논설위원 수는 11.2명으로 집계됐다.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KBS(해설위원)가 12명으로 가장 많았다. MBC는 9명, SBS는 8명씩이었으며 3사의 평균 논설위원 수는 9.7명이었다. 12개 언론사 전체의 평균은 10.8명으로 나타났다.


SBS는 지난해 8월 조직개편으로 논설위원실을 폐지했다가 올해 8월 다시 구성했다. 기존 3~4명 규모이던 논설위원을 8명으로 확대 개편했다. 지난 2004년부터 서울디지털포럼(SDF) 등을 맡아왔던 미래부가 이때 개편으로 해체됐는데, 논설위원실이 미래부 역할까지 담당하게 됐다.   

김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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