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살인마 석면의 공습

제324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1부문 / 한국일보 조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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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조원일 기자

7월 초, 출입기자들에게 뿌려진 환경부 주간 보도자료가 취재의 시작이었습니다. 석면 질병 검사 의료기관 수를 대폭 늘린다는데 환자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늘어날 가능성이 크길래 늘린 것인지, 당연히 있을 법한 설명이 없었습니다. 정부는 20~30년 안에 사망자가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 죽음들은 오로지 피해자 각자의 몫으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때에 영문도 모르게 찾아올 것이 뻔한데 이렇게 담담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피해자들을 찾는 게 어려웠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두 해 전쯤 가족이 악성중피종 관련 수술을 받았다는 회원들은 그 뒤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준 석면암 환자는 대부분 경과가 좋지 않아 커뮤니티에 꾸준히 글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피해자는 자신 같은 환자들이 선고를 받기 전까지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환경부는 위험군을 서둘러 찾아 정밀 검사를 해야 하지만 생활급여를 주는 것 외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석면 광산과 공장 직원 및 인근 거주자에 대한 지원이 진행된 것은 그들의 상황이 집단 발병 형태로 드러나면서 비교적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에 대해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고된 밥벌이 현장에서 가장 약자였던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약자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정부와 기업·고용주 등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억울함을 따지지 못했습니다.


획득한 팩트들은 저 스스로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가습기 사태 초기, ‘안타깝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냐’는 안일함으로 많은 사람의 죽음을 용인했던 잘못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기사로 옮기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이미 철 지난 이야기’라는 주위 시선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부족한 팩트보다 왜곡된 선입견이 더 큰 짐이 됐던 보도였습니다. 스스로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한 기사였지만, 꾸역꾸역 썼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지만 아직 많은 숙제가 남았습니다. 이 보도가 석면의 위험성을 다시 환기하고 더 많은 대책을 마련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또 찾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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