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피해자들을 찾는 게 어려웠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두 해 전쯤 가족이 악성중피종 관련 수술을 받았다는 회원들은 그 뒤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준 석면암 환자는 대부분 경과가 좋지 않아 커뮤니티에 꾸준히 글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피해자는 자신 같은 환자들이 선고를 받기 전까지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환경부는 위험군을 서둘러 찾아 정밀 검사를 해야 하지만 생활급여를 주는 것 외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석면 광산과 공장 직원 및 인근 거주자에 대한 지원이 진행된 것은 그들의 상황이 집단 발병 형태로 드러나면서 비교적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에 대해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고된 밥벌이 현장에서 가장 약자였던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약자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정부와 기업·고용주 등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억울함을 따지지 못했습니다.
획득한 팩트들은 저 스스로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가습기 사태 초기, ‘안타깝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냐’는 안일함으로 많은 사람의 죽음을 용인했던 잘못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기사로 옮기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이미 철 지난 이야기’라는 주위 시선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부족한 팩트보다 왜곡된 선입견이 더 큰 짐이 됐던 보도였습니다. 스스로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한 기사였지만, 꾸역꾸역 썼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지만 아직 많은 숙제가 남았습니다. 이 보도가 석면의 위험성을 다시 환기하고 더 많은 대책을 마련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또 찾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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