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닮아가는 트럼프와 미디어의 혈투

[글로벌 리포트 | 미국]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8일이면 대통령 당선 1주년을 맞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끝없이 상대를 바꿔가며 좌충우돌했다. 그렇지만 일관되게 ‘다이하드’로 남아 있는 상대 중의 하나가 미국의 미디어이다. 트럼프와 미디어 간 싸움은 스포츠 경기로 치면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에 가깝다. 옥타곤 바닥에 선혈이 낭자하지만, 양측 간 주먹질과 발길질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WP)는 미국의 어느 매체 못지않게 ‘트럼프 짓밟기’에 올인하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북한과 2∼3개의 직접적인 대화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고 공개했다가 트럼프로부터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면박을 당한 일을 전한 WP의 기사를 보면 UFC의 혈투 장면이 떠오른다. 대나 밀방크(Dana Milbank) 기자는 3일 자 ‘워싱턴 스케치’ 코너에 쓴 기사에서 트럼프를 개 주인, 틸러슨 장관을 ‘렉스’라는 이름의 개, 국무부를 ‘개집’에 비유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트럼프가 잘 구르는 개들을 좋아한다. 말을 한다고? 나쁜 렉스!’라고 돼 있다.

 

렉스는 ‘말’로 먹고 사는 외교 사령탑이지만 그가 무슨 말이든지 하면 트럼프가 트위터로 ‘입 다물어’라고 꾸짖는다고 밀방크 기자가 비아냥거렸다. 밀방크 기자는 “렉스가 화가 나서 으르렁거리고, 짖어대기도 했으며 트럼프를 물려고까지 했으나 주인을 물 수는 없어 이제 다시 그 앞에서 구르기나 하고, 죽은 척한다”고 두 사람의 관계를 묘사했다.

 

미국의 퓨 리서치센터는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사 24개를 골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반의 보도 내용 3000건을 비교·분석했다. 이 조사에서 미국 미디어가 최근 3명의 전임 대통령과 비교할 때 트럼프를 가장 비판적이고, 부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미국 정부 출범 60일 동안의 보도 내용을 비교한 결과 트럼프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 비율은 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언론의 긍정적인 보도 비율은 버락 오바마 42%, 빌 클린턴 27%, 조지 W. 부시 22% 등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에 미국 주요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 비율은 트럼프가 62%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클린턴 28%, 부시 28%, 오바마 20% 등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퓨 리서치센터는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사 24개를 골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반의 보도 내용 3000건을 비교·분석했다.

미국 미디어는 특히 트럼프에 대해서는 정책이나 이념보다는 지도력과 성품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는 사실도 확인됐다. 주요 언론의 지도력과 성품에 관한 보도 비율은 트럼프 69%, 오바마 50%, 클린턴 42%, 부시 35% 등으로 집계됐다. 이념과 정책이 차지한 비율은 트럼프가 31%로 가장 낮았고, 부시 65%, 클린턴 58%, 오바마 50% 등으로 드러났다.

 

퓨 리서치는 진보, 중도, 보수 언론 등 세 그룹으로 나눠 트럼프와 현 정부에 관해 어떻게 보도하는지 비교했다. 트럼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진보 언론의 기사 중 약 70%가 비판의 근거로 미정부 관리, 상·하 의원 등 의회 관계자, 전문가 등 ‘소스’(source)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도 언론은 소스 인용 비율이 62%이고, 트럼프에 우호적인 보수 언론은 소스 인용 비율이 44%에 그쳤다. 진보 언론이 ‘팩트 체크’ 형식으로 트럼프 발언 등의 부정확한 측면을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트럼프 발언 등에 대한 팩트 체크 비율은 진보 언론 15%, 중도 10%, 보수 언론 2% 등으로 집계됐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 언론의 ‘이슈 몰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보도 토픽을 분야별로 보면 트럼프의 정치력 17%, 이민 14%, 각료 임명 논란 13%, 미국과 러시아 관계 13%, 건강 보험 9% 등으로 5대 이슈가 전체 보도의 66%를 차지했다. 이 문제 이외의 다른 현안을 다룬 비율은 34%에 머물렀다.

 

트럼프라는 이단아의 등장으로 미국과 세계가 격변기를 보내고 있고, 미국 언론도 그런 트럼프를 뒤쫓으면서 변화의 바람에 휩쓸려가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도 언론의 생명인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게 트럼프 시대의 언론이 안고 있는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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