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지시로 국정원이 공작, 방송사 내부자들 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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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청와대 지시 받아 ‘KBS 인적쇄신’ 문건 작성
기자·PD 20명 실명 적시 “김인규 사장 시절 실행돼”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청와대의 지시로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이란 문건을 작성, KBS 간부와 기자들을 좌편향 등으로 낙인찍고 관리한 정황이 드러났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새노조)는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와 국정원이 공영방송사 구성원을 좌파 등으로 분류해 낙인을 찍고 퇴출을 지시한 정황이 담긴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노조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 방안’이란 제목으로 △KBS 기자·PD들을 이념성향과 정부 동조 정도에 따라 낙인찍어 퇴출 등 관리를 하고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을 배제토록 하며 △김인규 당시 KBS사장과 협의해 부사장, 본부장 인사를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KBS연구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국정원의 공영방송사 인사 등 개입정황을 드러내는 문건 내용에 대해 밝혔다. 사진은 (왼쪽부터) 이번 문건 취재를 맡은 파업뉴스팀 엄경철 KBS기자와 국정원 보고서를 통해 ‘좌편향’ 등으로 낙인 찍힌 이상요 전 KBS PD, 용태영 기자, 소상윤 PD의 모습.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년 6월3일 작성된 이 문건은 “KBS는 6월4일 조직개편 단행하고 후속인사에 착수할 예정으로, 이에 대한 면밀한 인사검증 통해 부적격자 퇴출해야”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실제 KBS에선 2010년 6월4일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있었는데 새노조는 “KBS의 조직개편과 인사에 맞춰 작성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국정원 개혁위가 지난 11일 발표한 보도자료 내용 가운데 청와대 홍보수석의 지시로(2010년 5월) 만들어진 ‘KBS 조직개편 관련 좌편향 인사 여부’ 문건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은 당시 조직개편과 관련 “…문제간부 교체에 초점…” “…<좌편향, 무능 무소신, 비리연루> 여부를 감안, 인사대상자 색출”을 기본방향으로 제시하며, KBS 기자·PD 20명의 실명과 ‘좌편향’ 성향, 정권 복무의 적극도 등을 함께 적시하기도 했다.


‘좌편향’이란 평가를 받은 용태영 KBS 기자의 경우 “정연주 전 사장을 추종하는 인물로 새노조를 비호하고 반정부 왜곡보도에 혈안. ‘한명숙 무죄’, ‘4대강에 무슨 일이?’, ‘봉하마을’ 등”이라고 적시됐고, 소상윤 PD는 “사원행동(새노조 전신) 출신, 과거 편파방송 자성 없고 좌파세력 비호”로 기재됐다. 그 외 이강현·윤태호·김영신·이상요 PD, 최춘애 KBS아메리카 사장 등의 이름에 ‘좌편향’이란 주홍글씨가 찍혔다.


용태영 기자, 소상윤 PD, 이상요 전 KBS PD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 문건 내용이 KBS 내부에서 어떤 식으로든 실행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문건에 적시된 아이템들의 데스크를 맡았던 용 기자는 “어느 날 국장이 부르더니 이유도 없이 ‘너 딴 데로 가야겠다’고 해서 ‘평소 국장과 많이 다퉈서 그런가’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3~4달 만에 갑자기 옮긴 게 확실히 (이 보고서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공영방송이 어떻게 무너지는가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문건에 ‘무소신’ 인사로 낙인 찍혀 “좌파 눈치보기 체질화돼 있어, 소극적 태도”라는 평가를 받은 오진산 당시 기획제작국장은 “그런 덧씌우기를 해서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몇 달 보직을 못 받고 내려왔고, 길환영 본부장 밑에서 (국정원이) 리포트(보고)를 하루아침에 하는 게 아니라 계속 정기적으로 하는데 그렇게 보고를 한 게 ○○○(당시 KBS 담당 국정원 정보요원)라는 걸 들었다”고 새노조가 공개한 파업뉴스를 통해 전했다.


아울러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에 대한 배제와 부사장과 본부장 인사는 김인규 사장과 협의해 처리한다는 내용 역시 보고서에 담겼는데, 노조는 “인사상 배제를 위한 모종의 기준을 사측에 제시하며 인사에 개입했음을 알 수 있다”며 “MB정부의 청와대와 국정원이 공영방송을 얼마나 장악하고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문구”라고 지적했다.


문건작성 지시와 보고여부에 대한 노조 측의 해명 요구에 이동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국정원에 지시를 내린 적도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답했다. 노조는 김인규 당시 KBS 사장에겐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전했다.


해당 문건의 취재를 맡은 엄경철 KBS 기자는 “김인규 사장 시절 집요하게 실행돼 대부분 맞아떨어졌고, 이후 길환영, 조대현 사장을 거치며 달라진 정치상황 때문에 (문건지시 대로 불이익을 받지 않은 인사들이 존재하는 등) 달라진 게 아닌가 판단한다”고 밝혔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국가기관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위반한 중대한 범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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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취임 맞춰 원세훈 지시
인적쇄신→노조무력화→민영화
김재철 사장 체제 3년간 현실화
“MBC 내부 국정원 채널 파악중”


이명박 정부의 MBC 장악 시나리오는 치밀했다. 지난 18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공개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에는 출연자 배제, 프로그램 폐지, 제작진 물갈이, 노조 무력화 등 MBC를 쥐락펴락하기 위한 MB정부의 계획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지난 2010년 김재철 MBC 사장 취임 후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 지시로 작성된 이 문건에는 ‘MBC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목적으로 3가지 세부방안이 등장한다. 국정원은 MBC를 ‘노영방송, 편파방송’으로 규정하면서 △1단계(~2010.3) 간부진 인적쇄신·편파프로 퇴출로 기반 조성 △2단계(2010.4~연말) 노조 무력화·조직개편으로 체질변화 유도 △3단계(2011년 이후) 민영화로 언론 선진화에 동참 등을 설계했다.


이 시나리오는 김재철 체제 3년 동안 현실화됐다. 2010년 시사프로그램 후플러스, W가 폐지됐고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와 100분토론 손석희 앵커가 하차했다. 이듬해에는 PD수첩의 최승호 PD 등 제작진 6명이 부당전보됐다.


지난 2012년 MBC 파업을 이끈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0년 ‘PD수첩-4대강 수심 6m의 비밀’ 불방, 2011년 단협 해지(재체결 후 주요 조항 불이행), 2012년 파업 기간 중 해고 6명, 정직 38명, 파업 종료 후 200여명 부당교육과 부당전보 실행,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접촉해 민영화 추진 협의 등이 이뤄졌다”며 “김재철과 경영진, 주요 보직들이 실행에 옮긴 MBC 장악 실체가 문건으로 확인되고 드러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조 무력화 조치도 실현됐다. 실제로 2011년 10월 바뀐 단체협약에서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국장 책임제가 사라졌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이를 두고 “임원인 담당 본부장이 경영뿐 아니라 제작 전반에 대한 권한마저 틀어쥐겠다는 속셈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2010년 39일 파업에 즈음해서는 노조 집행부를 향한 전방위적 형사 고소를 단행하고, 이근행 위원장과 정대균 수석부위원장을 해고했다. 이 위원장에 대해서는 구속영장까지 신청됐다”고 폭로했다.


앞서 지난 11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산하 적폐청산TF가 밝힌 MB정부의 ‘좌편향’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공영방송에 고스란히 적용됐다. MBC에서는 시사보도, 라디오국, 예능국, 드라마국 등 전방위에 걸쳐 출연자 배제가 이어져 온 것으로 드러났다.


블랙리스트 82인에 오른 김제동씨는 직접적인 출연 제재 압박을 받았다. 2009년 김씨가 MC로 나선 파일럿 프로그램 ‘오마이텐트’는 방송이 무산됐고 2010년에는 김씨가 진행하던 ‘환상의 짝꿍’도 폐지됐다. ‘오마이텐트’를 기획한 조준묵 PD는 지난 14일 MBC본부 기자회견에서 “당시 편성국장이었던 안광한이 ‘시류를 잘 읽은 기획이다. 김제동 같은 MC를 어떻게 데려왔느냐’고 했다”며 “오마이텐트 첫날 시청률은 파일럿 중에 가장 높은 13%였다. 당연히 정규프로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윗선에서 타이틀이 ‘오마이뉴스’를 연상케 한다며 문제시했고 결국 편성은 무산됐다”고 증언했다.


라디오국에서도 출연자 배제가 잇따랐다. 방송인 김미화·김어준, 가수 윤도현, 배우 김여진, 시사평론가 김종배 등이 라디오에서 하차하거나 출연하지 못했다. 한재희 라디오PD는 “2010년 이우용 라디오본부장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세계는 우리는> 진행자 김미화씨에 대한 퇴출 움직임이 일어났다”며 “김재철 사장이 김미화씨를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좋은 라디오 프로 많은데 다른 데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직접적으로 압박을 했다. 결국 내외부 압박 속에서 스스로 하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미화씨는 19일 ‘MB 블랙리스트’ 수사 관련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하달하면 국정원이 (블랙리스트를) 실행했고, 방송국 간부들이 충실하게 이행한 것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게 밝혀졌다”며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해 해당자들에 대한 민형사 고소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허유신 MBC본부 홍보국장은 “문건 작성 시점인 2010년 당시 직책이나 노사관계에서의 발언, 오갔던 공문 등을 미뤄볼 때 누가 MBC와 국정원의 채널이었는지 파악하고 있다”며 “블랙리스트를 넘어 단협 무력화 등 노조파괴 시도가 드러난 만큼 관련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MBC본부는 2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의 방송장악 문건이 어떻게 실행됐는지 폭로할 예정이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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