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어야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릴레이기획] 돌아오라 마봉춘·고봉순②MBC·KBS 파업 연대 피케팅 최영기·박정남 독립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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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파업 지지, 대체인력 제작 거부' 피케팅에 나선 박정남 독립PD(왼쪽)와 최영기 독립PD.


“공영방송 자리 찾을 때까지
대체인력 제작 거부하겠다”


MBC 총파업이 일주일에 접어든 지난 12일.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앞에 큼지막한 피켓이 자리 잡았다.


'MBC 김장겸 OUT, KBS 고대영 OUT. 우리는 공영방송이 국민의 품에 돌아갈 때까지 대체인력 제작을 거부한다.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에 지지와 연대를 위해 행동하는 김종관·박정남·복진오·최영기 독립PD.'


밖에서 때론 안에서 두 방송사를 지켜본 독립PD들이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18일 만난 최영기 PD와 박정남 PD는 "이번이 아니면 (공영방송 정상화를 이루지) 못 할 것 같아서" 힘을 보탰다고 했다.


피케팅을 기획한 최 PD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아무 것도 안하고는 못 배기겠더라. 잘 때도 계속 생각나서 두 다리 뻗고 자려고 그랬다"며 웃었다. 박 PD는 "최 선배가 참여의사를 묻길래 바로 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피켓제작비가 없대서 내가 내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비쌀 줄 몰랐다. 2개에 7만6천원이나 들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인터뷰 내내 두 PD는 '피케팅이 주목받을 만한 일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럼에도 독립PD로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박 PD가 연출한 다큐멘터리가 당장 이달 말 MBC스페셜에서 방송될 예정이었다. 이미 제작비도 1000만원 넘게 쓴 상황. 본사 소속 제작진이 지난 4일부터 파업에 돌입하면서 제작이 중단됐다. 그런데 얼마 전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MBC 간부가 박 PD에게 연락을 해왔다. 


"전화를 안 받았어요. 그리고 나선 담당 AD에게 저 문구가 쓰여있는 피켓을 찍어서 보냈죠. 그분에게 '내 의지는 이거요, 더는 귀찮게 하지 마십쇼'라는 뜻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현 체제에서 정상적인 방송이 나가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거예요. 그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용되고 싶지 않습니다. 공영방송이 국민에게 돌아갈 때까지 대체인력 제작을 거부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박정남)


▲최영기, 박정남 독립PD 등이 마련한 공영방송 파업 지지 피켓. (박정남 독립PD 페이스북)


30년 넘게 독립PD로 살아온 최 PD는 지상파 방송사 파업으로 생긴 공백이 외주업체, 독립PD들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다고 했다. 박 PD도 "정글 같은 사회라 누가 빠지면 또 다른 이로 메워진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저쪽에 줄을 선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이들이 나선 건 지난 9년 간 공영방송이 무너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시사교양 측면에서 보면 언론의 자유가 가장 보장된 시절은 노무현 정부였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정연주 전 KBS 사장이 해임된 이후 KBS와 MBC는 몰락했어요. 공영방송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하니까 국민들도 외면한 겁니다. 언론인이 해직되고 징계받고. MBC 간판 PD 한학수가 비제작부서로 간 게 말이 됩니까. 이건 상식이 아니죠."(최영기)


최근 'MB판 블랙리스트'가 떠오른 상황에서 박 PD도 2010년 김재철 MBC 사장 취임 이후 불이익을 겪었다. 박 PD는 2005년 MBC 국제 시사 프로그램 'W'의 론칭부터 함께 했다. 2007년 나이지리아 무장단체가 현지에서 근무하던 대우건설 직원을 납치했을 때도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현장을 찾은 그였다.


"W에서 4년 간 51편을 제작했어요. 그만큼 W와 MBC에 애정이 컸죠. 2010년 갑자기 W를 폐지한다는 거예요. 당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김 사장을 비판했는데 그 뒤로 MBC에서 방송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기획안을 내면 연출자에는 이름을 빼라는 식이었죠. 기안서에 제 이름만 올라가면 킬된다고 하더라고요. 종합편집을 2/3나 해놨는데 위에서 저를 빼라고 한 적도 있어요. 저 같은 외주 나부랭이까지 신경쓰려면 얼마나 피곤했을까, 불쌍한 마음도 들더라고요. 정부 바뀌고 나서 처음 MBC스페셜을 맡은 건데 못하게 됐네요. 하하. 정말 그 인터뷰 때문에 그랬을까요?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박정남)


파업이 끝나면 두 언론사 구성원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반면 독립PD들은 그때 어디에 서 있을지 알 수 없다.


"불안한 마음도 있어요. 우리가 이런다고 어디서 보상받는 것도 아니고. 공영방송 파업에 힘을 보태고 싶은 독립PD들도 많은데 선뜻 나서지 못하죠. 그러니까 저기 위에 계신 분들이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좋은 프로그램 만들고 싶고 돈도 벌어야 하거든요."(박정남)
"방송사 직원들에게 우리는 철저히 을입니다. 프로그램 편성, 폐지에 따라서 좌우로 갈라질 수밖에 없어요. 저는 아직도 방송사 노조는 귀족노조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게 옳으니까 동조하는 겁니다. 지금 노조는 양심세력이에요. 파업에서 승리한다면 그 양심을 또 한 번 발휘하길 바랍니다. 지난 2012년 파업처럼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끝날 때까지 시간 날 때마다 피켓을 들 겁니다."(최영기)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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