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블랙리스트는 범죄행위…그 정점에 김장겸 있어"

[좌담회] MBC 정상화 과제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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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를 보면 ‘배제’와 ‘격리’, ‘억압’이 키워드인데, 김장겸 사장의 인사를 보면, 반노동적이고 극우적인 이념 성향이 표출된 배제와 격리, 억압이었거든요. 지난 5년간 MBC가 어떻게 억압돼왔는지, 기자부터 국장과 사장, 방문진까지 이어지는 배제와 격리, 억압의 한 단면을 보여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성호 MBC 해직기자)


“2012년 파업 참가자 700여명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을 100% 믿고 있었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5년 동안 인사고과나 연수, 승진 등이 이토록 집요할 수 있을까요. 카메라 기자뿐만 아니라, 취재기자, PD, 아나운서 등 다른 직군도 비슷한 등급으로 나눠져 있을 겁니다.”(정영하 전 MBC본부 위원장)


“최근에 회사 안에 있는 복사기를 모두 교체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불법성들이 밝혀지니까 증거인멸 단계에 들어가는 거라는 얘기가 돌아요. 승진에서 누락된 사람들을 전수조사 해보면 굉장히 체계적으로 관리돼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끔찍한 범죄 행위죠.”(강지웅 MBC 해직PD)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도 총 지휘자는 김기춘으로 드러났잖아요. 이 모든 과정에 김장겸 사장이 있었다고 봐요.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고 MBC의 보도와 인사를 좌지우지 했다는 의심이 있었는데, 이번 블랙리스트가 결정적 증거가 된 거죠. MBC에서 지난 5년간 벌여온 편파보도, 노조탄압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증거 말이에요.”(박성제 MBC 해직기자)

▲지난 9일 기자협회보는 서울 상암동 MBC 노조사무실에서 해직언론인(강지웅 박성제 박성호 정영하 최승호)을 만나 'MBC의 정상화 과제와 미래'를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최근 MBC는 카메라기자들을 등급으로 나눠 인사에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MBC 블랙리스트’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가시질 않고 있다. ‘제작 자율성 침해’를 이유로 <PD수첩> <시사매거진2580> 등 시사제작국과 콘텐츠제작국이 제작거부를 선언한 가운데, 118명의 기자들이 무더기로 제작을 중단하면서 보도프로그램이 불방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지난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간의 파업 이후 MBC는 사내 기자, PD, 아나운서 등을 업무와 관련 없는 부서로 내쫓고, 정직과 해고 등을 서슴지 않았다. 보도와 시사교양프로그램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공영방송이라는 이름마저 무색하게 시청자의 비난과 외면을 받아왔다. 급기야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엠빙신’이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야유 속에서 제대로 된 취재조차 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MBC 기자들은 ‘MBC 로고’를 마이크에서 뗀 채 방송해야 했다.


기자협회보는 한국기자협회 창립 53주년을 맞이해 MBC 해직언론인(강지웅 박성제 박성호 정영하 최승호)을 만나 <MBC의 정상화 과제와 미래>를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복막암으로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불참하며, 유독 그의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최근 <공영방송 뉴스의 불편부당성 연구: BBC와 KBS의 선거보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박사 학위 논문을 펴낸 박성호 기자, 지난 10년간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을 추적한 영화 ‘공범자들’을 제작한 최승호 PD, 언론개혁을 다룬 신간 <권력과 언론>을 펴낸 박성제 기자 등 각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후배들의 투쟁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는 여전했다.

▲박성호 MBC 해직기자.


-사퇴 촉구 움직임에도 경영진은 꿈쩍도 않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정영하=사장 퇴진의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사장이 자발적으로 나가는 것이다. 둘째는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임면권을 사용해 자르는 방법이 있다. 셋째는 법 개정을 통해서 교체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모두 구성원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싸울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저항을, 투쟁을 하다보면 국민들도 알게 될 것이고 정리될 거라 믿는다.


박성제=대통령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했다고 하지만, 결국 국민이 하고 밀어붙인 것이다. 방송법, 노동법을 어기고 공영방송 수장으로서 의무를 저버린 경영진은 언론인들의 힘으로 충분히 끌어내릴 수 있다고 본다.


박성호=각자 맡은 직분 충실히 하면 될 거라 본다. 방통위는 원칙대로 공영방송을 황폐화시키고 부당노동행위로 갑질하고 언론자유 말살시키는데 대해 책임을 물으면 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빠른 시일 내에 김장겸 사장을 몰아내는 것이다.


강지웅=공영방송 회복 문제가 해직자를 내세우면서 복직시키면 된다는 식으로 끝날까 우려스럽다. 사측에서 물타기를 하지 못하도록 이 상황을 빨리 종식시키는 게 중요하다.


최승호=영화 공범자들을 보면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한 사장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공영방송 회복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의제 속에서 현 경영진이 시급히 치워져야 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최승호 MBC 해직PD.


-새로운 경영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박성제=추락한 국민 신뢰도를 되찾기 위해서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뉴스와 시사프로그램, 라디오국, 아나운서국 총괄해서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사내 위원회를 만들어 체계적인 인적 기반을 구성해야 한다.


강지웅=지난 9년간 있었던 일을 분명히 진상규명하고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MBC에서 내쳐진 사람들이 돌아와서 다시 마이크를 잡고 출연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박성호=그간 MBC가 시청자들에게 사회적 흉기로 작동됐던 거에 대국민 사과가 필요하다. 처절한 사과 반성과 함께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지 청사진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통해 제작 자율성이 다시는 침해되지 않도록 체제 개편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최승호=“프로그램을 통해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디지털 방송 환경에서 체계적이고 새로운 비전도 세워야 한다. 또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책임자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력 조치해야 한다.


정영하=프로그램이 돌아와야 ‘MBC 돌아왔다’고 국민들이 느낄 것이다. 인적쇄신이라는 수단을 통해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


-YTN 해직기자는 28일에 복직한다. 동료 해직기자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박성제=평화로운 방법으로 사장을 압박해서 자발적으로 사퇴하고 복직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9년 간 해직자들도 고생이 많았지만 내부에 있는 기자들도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나. 훌륭한 사장을 뽑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그 과정에 놓여있다는 게 부럽다.


최승호=YTN이 가장 먼저 ‘언론회복’이라는 대의를 성취하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그 희망의 싹이 다른 공영방송으로도 전해지길 바란다. 노종면 앵커 등 해직자들이 돌아가서 좋은 방송을 만드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싶다.


박성호=YTN이 MB정부에서 가장 먼저 칼을 맞았다. 가장 먼저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고 잘된 일이다. 앞으로 보도를 응원하고 기대하겠다.


정영하=복직 뉴스를 보고 축하한다는 말을 못할 정도로 동화가 되더라. ‘내가 나중에 복직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언론인의 복직은 대법원의 판결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염원이 더 중요하다. 후배들의 뜻이 반영된 것 같아 기분 좋다.

▲박성제 MBC 해직기자.


-복직하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강지웅=현업에서 떠난 지 꽤 되긴 했지만 <PD수첩>에 복직해서 일하고 싶다.

박성제=파업할 때 아침뉴스 팀장이었다. 데스크 경험을 막 하려고 하다가 쫓겨난 거라 데스크로 돌아가고 싶다. MBC 밖에 있으면서 느낀 뉴스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과제 등을 후배들과의 소통을 통해 혁신을 일구고 싶다.

정영하=뭐든 시키는 건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복직을 하고 회사가 ‘이런 역할 필요하다’고 하면 지금 기분은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성호=뭐가 됐든 주어진 역할이 있으면 재미있고 보람있게 하겠다.

최승호=어떤 주제든 기탄없이 발제해서 보도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강지웅 MBC 해직PD.


-투쟁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박성제=지난해 여름, 아무도 이화여대생들이 싸우는 거에 관심 없었다. 학내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정유라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총장을 바꾸고 제도도 만들고, 이대생의 용기가 나라를 다시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한두 달 목숨 걸고 싸워보자.

강지웅=그동안 억압받다보니 후배들이 상처가 많다. 싸우는 과정에서 훌훌 털어내길 바란다. 나쁜 기억이 있으면 깨끗이 지워버리고 미래지향적으로 다 털고 새 출발했으면 한다.

박성호=주체적인 책임자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패배감과 모멸감, 자괴감 등 우리 내부의 앙금들은 용광로에 넣어버리고, 하나의 승리 에너지를 만들어내자.

▲지난 9일 김장겸 사장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 MBC 로비에서 해직언론인이 피켓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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