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의 싸움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정의롭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펴낸 권석천 JTBC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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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논쟁, 부끄러움, 정의.’ 권석천 JTBC 보도국장이 ‘이용훈 대법원’(2005~2011년)을 주목한 이유다. 법조기자로 오래 일한 권 국장은 당시 “논쟁다운 논쟁”을 벌였던 이용훈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대법원, 이의있습니다>를 최근 펴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JTBC 인근에서 만난 권 국장은 “그간 한국 사법부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 없었다”면서 “이 책으로 법조기자로서 작은 소망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2009~2010년 중앙일보 법조팀장으로 법원과 검찰, 대법원과 청와대, 보수와 진보가 격돌했던 현장에 서 있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기자로서 자괴감을 느꼈다. “언론은 싸움을 부추기며 갈등을 확대·재생산했습니다. 법원이 왜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주목하기보다 결과만 프레임에 맞춰 보도했어요. 맥락과 검증이 사라진 상업주의적 태도였죠. 부끄러웠습니다.”


▲권석천 JTBC 보도국장

그는 2012년 논설위원이 되자 이용훈 코트(대법원)에서 진보적 소수의견을 제시했던 ‘독수리 5남매’ 대법관들(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을 떠올렸다. 뜨거웠던 그들의 논쟁, 사법개혁 의지를 기록하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본격적인 책 출간 논의는 2015년에서야 시작됐다. 이 대법원장과 그 시대의 대법관들, 진보적 판사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취재과정은 행복했지만 그만큼 힘겨웠다. 지난해 3월부터 이 대법원장과 2~3시간씩 16차례 인터뷰했고, 독수리 5남매와도 20여 번 만났다. 이용훈 코트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전·현직 판사들도 찾아다녔다. 이들이 쏟아내는 회한과 분노, 서운함 같은 감정을 몇 시간 동안 받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감정노동자가 된 기분이랄까요.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공감하며 들으려 애썼어요. 고해성사하듯 모든 껄 쏟아내 후련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500쪽에 달하는 책에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에피소드와 감정이 담겨 있다. 권 국장은 “대법원장 한 사람의 회고록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 “모든 등장인물의 이야기이자 기자가 객관적인 거리에서 대법원의 한 시기, 한 단면을 바라본 것”이라고 밝혔다.


권 국장이 책에서 소개한 대법원 판결은 모두 우리의 삶과 연결돼 있다. 특히 언론인에게는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보도’로 재판에 넘겨진 MBC <PD수첩> 사례가 그렇다. 제작진은 무죄를 받았지만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이 언제든 언론보도에 행사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런 우려는 당시 대법관들의 의견에 고스란히 쓰여 있었다.


이용훈 코트를 향한 권 국장의 평가는 ‘정의’로 귀결된다. 2015년 출간했던 칼럼집 <정의를 부탁해>에서 강조했던 바다. 이번 책 <대법원…>의 에필로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정의롭다’는 말로 시작한다. 6년간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법부 개혁의 끈을 놓지 않았던 판사들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법원 이야기를 쓰다 보니 기자사회가 겹쳐 보였습니다. 윗선 눈치 보고 자기검열 하는 언론의 관료화도 심각해요. ‘정의’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합니다. 사회를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자기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 우리 기자들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 아닐까요.”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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