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에 오른 BBC 성별 임금격차

[글로벌 리포트 | 영국]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BBC가 자랑하는 여성 스타 40명이 공개적으로 회사의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고발하는 성명서를 지난달 22일 발표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BBC의 인기 방송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 클레어 밸딩, 빅토리아 더비셔, 안젤라 리폰 등의 스타 진행자들의 서명이 포함된 이 성명서는 BBC의 연간보고서에서 BBC가 그동안 임금 지불에서 노골적으로 성차별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BBC는 의도적으로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태프들의 명단 누출을 막아왔다. 일반에 공개하면 경쟁 방송사들이 이를 악용해 인력 유출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난해 영국 보수당 내각과 BBC서비스의 라이센스 갱신 및 그 규모와 범위를 재정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른바 ‘왕실칙허장’ 재발행에 대한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출연진에게 지불하는 수신료 예산의 현황을 공개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난달 19일에 출판된 BBC 연간보고서에서 15만 파운드 이상의 임금을 받는 고액 출연진 명단이 공개되었다.


이 임금 명단을 살펴보면 BBC를 대표한다는 말을 듣는, 그야말로 최정예 출연진들 사이에서도 남성과 여성 간에 상당한 수입 격차가 확인된다. 성별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스타들을 비교했을 때, 라디오2 채널을 이끄는 남성 진행자인 크리스 에반스의 임금이 200만 파운드를 상회한 반면 BBC1 채널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스트릭틀리 컴 댄싱’의 여성 진행자인 클라우디아 윙클만의 임금은 50만 파운드를 밑돌았다.


그 충격적인 결과에 BBC의 여성 진행자 및 배우들은 분노하며 회사가 이러한 임금 격차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담아 토니 홀 사장 앞으로 공개 성명서를 보내는 한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연간보고서에서 공개된 임금 지불 세부 내역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BBC의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적은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공적서비스로서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BBC와 같은 조직이 “미래 세대의 여성들이 이러한 종류의 차별을 더는 겪지 않도록”해야 한다고 빠른 대응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예상한 듯, 연간보고서가 공개된 직후에 토니 홀 사장과 BBC의 대변인은 성차별 문제에 대한 회사 차원의 대응을 약속한 바 있다. 홀 사장은 지난 달 20일, 성명을 통해 “BBC가 다른 방송 산업의 조직보다 더 다양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임금 공개를 통해 여전히 성별 임금 격차 문제가 확인되었다고 시인하였다. 이에 “2020년까지 방송 출연진에서 여성과 남성의 수”를 각각 50:50으로 맞추고 이들에게 지불되는 임금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BBC 대변인 역시 “영국 전역에서 성별 임금격차는 평균 18%로 조사되었지만 BBC의 경우에는 10% 수준”이라고 단서를 달면서도,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라며 회사 차원의 대응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회사 측 입장에 대하여 여성출연진들은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BBC 라디오 5채널의 생방송 뉴스쇼를 진행하고 있는 레이첼 버든은 지난달 25일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상급 관리자에게 남성 진행자와 동일한 임금을 받을 수 있냐고 문의하였을 때 “무시당하거나 하찮게 취급되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밝히며, 회사 내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분위기가 이번 문제의 근원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코멘트가 시사하듯, 결국 BBC 조직의 성차별적 근무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고액 연봉의 출연진들 사이에서의 성별 격차가 해소되더라도 여성 고용인이 겪는 다른 차별 문제들 역시 언젠가 이처럼 도마 위에 오를지 모른다. BBC가 그 칙허장에 명시된 것처럼 젠더 평등과 다양성을 자신들이 추구하는 주요한 공적 가치로서 내세운다면 이들이 당장 집중해야 할 문제는 수신료 인상도 상업 방송사들과의 경쟁도 아닌, 내부 조직의 젠더인식부터 바꾸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