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릿 편집에 편집기자들 우려 반 기대 반

중앙, 지면에 템플릿 활용...편집기자 일부 디지털 이동
업무환경 변화에 편집기자 역할 축소 반감
콘텐츠 디렉터 활약 등 새 흐름에 긍정적 시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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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 과도기에 접어들었다.” 일간지 한 편집기자는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바라봤다. 이달 초 중앙일보가 지면 편집에 템플릿을 도입하자 편집기자들 사이에선 이 방식이 전체 신문사로 확산돼 결국 편집기자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란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했다.


템플릿(template)은 ‘견본’이라는 뜻처럼 지면 편집의 레이아웃을 몇 가지 형식으로 정해놓은 것이다. 이를 적용하면 편집기자는 매번 새로운 판을 짜지 않고 지면에 맞는 템플릿을 고르면 된다. 이달 초 도입 당시 중앙일보는 지면 편집의 효율성을 높이고 디지털에 힘을 쏟기 위해 템플릿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편집기자 일부를 디지털에 투입해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기도 했다.


편집기자들은 중앙일보 사례를 변화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기대감을 내비치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까진 편집기자의 역할이 줄어든다는 우려와 온라인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 이철민 한국경제 기자(한국편집기자협회 부회장)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일간지 20년차 A 편집기자는 “레이아웃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의 역할은 어떤 기사를 톱으로 올릴지, 기사의 중심 내용을 파악하고 어떤 제목을 뽑을지, 어떤 사진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라면서도 “업무 환경이 온라인으로 바뀐다면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 기사 제목은 편집기자가 아니라도 부서장이 데스킹하면서도 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부정적인 전망 탓에 디지털화 추진에 반발하는 편집기자들도 많다. 일간지 B 간부는 “편집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온라인화는 ‘화선지에 서예를 하던 내게 도시 전체를 상대로 그래피티아트를 하라는 거냐’식의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며 “미디어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편집기자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일간지 C 편집기자는 “디지털이 중요하다지만 지면을 포기하지 못하는 게 딜레마다. 우리도 그쪽으로 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갈팡질팡하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며 “템플릿을 적용해도 제목이나 분량 조절은 편집기자가 해야 해서 작업에 두 번 손이 간다. 완벽한 템플릿이 나올 때까지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새로운 흐름을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들은 업무 환경이 지면에서 온라인으로 변하더라도 편집기자의 본래 역할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일간지 주니어 D 편집기자는 “템플릿 도입이나 편집기자의 온라인 투입을 두고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려 조심스럽다. 연배가 있는 분들은 변화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고, 젊은 기자들은 각오가 돼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며 “디지털로 가면 외관상으론 달라지겠지만 대중에게 어떤 콘텐츠가 먹힐지 잡아내는 우리의 근본적인 역할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업무 경험이 있는 일간지 고참 E 편집기자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요즘 신입 편집기자를 뽑는 곳이 많지 않다. 편집부 인력이 갈수록 줄어들어 과부하가 걸릴 때 템플릿이 업무 부담을 줄여줄 것이다. 신문의 질도 나빠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지금도 편집부는 인력 부족을 호소하지만 온라인 업무를 원하는 젊은 기자들이라도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편집기자들 사이에서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에서 편집기자의 영역이 오히려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철민 한국경제 기자는 “세로짜기가 건축, 가로짜기가 창작의 영역이었다면 템플릿 도입 이후엔 선택의 영역이 될 것이다. 편집기자 개인기로 승부하던 시대에서 팀플레이로 변화한 것”이라며 “콘텐츠를 선별·포장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기사뿐 아니라 회사의 자산을 튜닝하는 콘텐츠 디렉터로서 활약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온라인·모바일에 적합한 제목은 12~13자다. 짧지만 기사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제목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고 사람만이 할 수 있다”며 “신문 편집기자 고유의 업무가 사라진다고 해서 능력이 줄어들진 않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큐레이션 역량은 디지털에서도 발휘될 것이고 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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