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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만델라

[글로벌 리포트 | 중국]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2017.07.11 11:40:10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생화와 탱크 사이에서 / 경례와 총검 사이에서 / 비둘기와 미사일 사이에서 / 일사불란한 발걸음과 무표정 사이에서 / 지난 세기의 종말은 / 피비린내 나는 어둠으로 얼룩졌다 / (중략) / 50년의 눈부신 영광에는 / 공산당만 있고 / 신중국은 없었다.'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의 자작시 '시간의 저주 속에서'의 일부다. 천안문 사건 10주년이 되던 날인 1999년 6월 4일 수감중이던 다롄 노동개조소에서 쓴 것이다.  탱크, 총검, 피비린내 등의 시어가  그 날의 비극을 일깨운다.


그는 지금의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이렇게 단 한 문장에 집약했다. "중국의 경제 기적은 체제 부패, 불공정 사회, 도덕적 붕괴. 미래를 담보로 한 무절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류샤오보의 발언은 위험했지만, 그러나 진실이었다. '공산당만 있고 신중국은 없었다'고 일갈한 그를 공산당은 그냥 둘 수 없었다. 중국 당국은 그의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붓을 꺾고 입에 재갈을 물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부재' 가 가장 울림이 큰 웅변이 되고 가장 날카로운 필봉이 될 줄은 중국 당국도 예상치 못한 바였다. 2010년 노벨 평화상 시상식장의 주인공은 류샤오보가 아니라 '빈 의자'였다. 전 세계는 주인 없이 수상자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 빈 의자를 통해 중국의 현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된 류사오보가 8일 미국 독일 의료진의 진료를 받았다. <사진 선양 중국의대 부속 제1병원>

따지고 보면 류샤오보 이전에도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이 적잖게 있었다. 웨이징성(衛京生), 팡리즈(方勵之), 왕단(王丹), 천광청(陳光誠) 등이 그들이다. 모두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다 투옥됐거나 또는 체포 위기 속에서 원하지 않는 망명객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동자 출신의 웨이징성은 1970년대 마오쩌둥(毛澤東) 사망과 함께 반짝 찾아온 '베이징의 봄'  때 대자보와 지하 유인물을 통해 민주화를 호소하다 구속됐다. 1997년 신병 치료 명목으로 출국이 인정된 그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다. 천체물리학자 팡리즈 박사는 89년 천안문 사건 때 민주화 운동 배후로 몰려 지명수배를 당한 뒤 1년 동안 주중 미 대사관으로 도피해 있다 미군 군용기로 출국했다. 맹인 인권운동가인 천광청은 인구 억제를 위한 중절·불임수술 강요 등 중국 당국의 비인도적 행위를 고발하다가 투옥됐다가 2012년 유학 명목으로 출국했다. 이들의 출국이 성사된 것은 모두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물밑 교섭 결과였다. 중국 당국은 이들이 해외로 나가면 반정부 운동을 계속할 것임을 알면서도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출국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류샤오보에게도 그런 제의가 있었다. 노동개조형을 받고 있던 1998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의료가석방 형식으로 중국을 떠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는 등 몇 차례 중국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는 "죄가 없으니 중국을 떠날 이유가 없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원점이랄 수 있는 6·4 천안문 사건의 한 복판으로 들어선 것도 교환학자로 해외 체류중이던 그가 중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그런 그에게 해외 언론들은 '중국의 만델라'란 호칭을 부여했다. 


류샤오보는 천안문 사건 이후 모두 5차례에 걸쳐 체포 또는 구속됐다. 바깥에서 보낸 시간보다 옥중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 그 사이 그의 육신에 암세포가 자랐다. 중국 당국은 미처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된 뒤에야 그를 외부 병원으로 내보냈다. 그를 진단한 미국과 독일의 간암 전문의조차 해외로 이송한들 뾰족한 치료법이 없다는 소견을 내놓을 정도였다. 중국 당국은 수감 기간 중 정기 검진 등 적절한 건강관리를 했다고 강조하지만 위중해질대로 위중해진 류샤오보의 병세 자체가 이런 해명을 부정하고 있다. 류샤오보는 자신의 육신이 병들고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온몸으로 중국의 인권 현실을 폭로하는 증인이자 증거물이 된 것이다.

▲류사오보는 8일 오후 미국과 독일 의료진의 진찰을 받았다. 중국 당국이 미국·독일 등과의 외교 협의를 거친 끝에 해외 의료진의 방문 진료를 받아들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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