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고 잘리고 돈 못받아도"…산업기능요원의 눈물

제321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취재보도부문 / kbc광주방송 탐사팀 박성호 기자

▲kbc광주방송 탐사팀 박성호 기자

군대를 대신해 공장으로 가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욕설을 들어도, 야근을 강요당해도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청년이 공장에서 땀 흘려 번 돈은 네 가족의 생활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장난 기계를 스스로 고치다가 엄지손가락 절반이 잘려나갔습니다. 하얀 뼈가 드러나고 피가 철철 흘러내렸습니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엔 걱정뿐이었습니다.
“산업기능요원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어쩌지.”


사고가 났다는 소식에 공장장이 달려 나왔습니다. 괜찮으냐는 말 대신, 응급차를 부르는 대신, 공장장은 한숨부터 내쉬며 보험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봉합수술을 마친지 이틀 뒤부터 청년은 다시 출근을 강요당했습니다. 소독을 받기 위해 하루 한 번 병원에 가고 싶다는 요청도 묵살당했습니다. 청년이 다치는 바람에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며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줄였고 기계는 더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청년은 우리에게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자신은 ‘현대판 노예’였노라고.


현장에서 확인한 산업기능요원들의 실태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한 달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하기도 하고, 제대로 된 수당이나 보상을 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폭력과 폭언, 보이지 않는 괴롭힘도 따라다녔습니다. 갓 20대가 된 청년들은 그렇게 사회의 쓴맛부터 배워나가고 있었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인터넷상에서 큰 반향이 일었습니다. 기사는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1만 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비슷한 일을 당하고 있다. 저게 우리의 현실이다. 어디서도 말 못했던 억울함이 전국 각지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곳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병무청은 산업기능요원들을 감시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고, 노동청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공장으로 나갔지만 국민의 권리는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보도 이후 노동청과 병무청은 대책 마련을 약속했습니다. 누군가 또다시 이 일을 할 때 자신보다는 나은 상황이었으면 좋겠다는 한 산업기능요원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번 보도가 변화의 시작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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