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모이는 여름 축제가 불안해진 이유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YTN 기자·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 교육 석사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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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YTN 기자

오뉴월 핀란드에 눈이 내렸다. 누군가 깊은 한을 품고 사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이상한 날씨였다. 핀란드 기상청은 지난 5월이 거의 반세기 만에 가장 추운 달이었다고 발표했다. 남부 도시 해멘린나(Hämeenlinna)가 섭씨 영상 27도를 기록한 5월 중순, 라플란드 지역 수오무살미(Suomussalmi)는 영하 13도를 기록했다. 북부 산지 낄삐스야르비(Kilpisjärvi)에는 5월 평균 60센티미터 가까운 눈이 내렸다. 어찌됐든 춥고 긴 겨울과 봄을 지나 하지(6월24일)에 가까워질수록 언 땅이 녹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핀란드어로는 유한누스(juhannus)라고 부르는 하지는 핀란드의 국경일 중 하나다. 하루 종일 맥주를 마셔도 밤이 오지 않는 계절,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는 여름이다.


그런데 올여름, 사람 많은 곳에 가기가 괜스레 꺼려진다. 지난 6개월 사이 영국 런던을 비롯해 스웨덴 스톡홀름 등 유럽 곳곳에서 벌어진 각종 테러 때문이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마음은 없었겠지만, 지난 5일 핀란드 국정원 쑤뽀(Supo)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테러 경계 수준을 ‘낮음(low)’에서 ‘주의(elevated)’로 올렸다. 전체 4단계로 이뤄진 가운데 아래서 두 번째라 그리 신경 쓸 만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경각심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이 같은 경각심의 시작은 지난 4월 7일 스톡홀름 중심가에서 벌어진 차량 돌진 공격이다. 핀란드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백화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북유럽도 안전지대일 수 없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갖게 했다. 테러 당시 핀란드인들 가운데는 스톡홀름에 있는 친지와 연락이 닿지 않아 마음 졸인 경우도 있었다. 안부를 물으려는 사람이 많아 통신망이 잠시 먹통이었기 때문이다. 행정부 장관 빠올라 리식꼬 (Paula Risikko)는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동안 헬싱키 시내 경찰 근무 인력이 늘었다.


이후 지난달 22일 영국 맨체스터 콘서트장 폭탄 테러 이후에는 크고 작은 여름 축제나 관광지에서 ‘안전 문제’가 주요 준비 사항으로 떠올랐다. 이를 테면 발틱해에서 열리는 큰 국제 행사 가운데 하나인 ‘꼬트까(Kotka)’ 범선 경주 대회는 보안 문제 대비 차원에서 전문가 및 관공서와 긴밀히 협조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전인 지난 18일에는 헬싱키 관광 명소 가운데 하나인 ‘뗌뻴리아우끼오(암석 교회)’에서 경찰 수색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핀란드 국립수사국(NBI)’이 테러 공격 가능성과 관련해 의심할 만한 정보를 입수해 암석교회 주변에서 작전을 진행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유럽 곳곳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치안 혹은 안보(security)에 대한 위기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럽 국가에서 보기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혹은 남한의 사드 배치는 상당히 걱정스러운 국제 문제겠지만, 실제 생활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유럽이 훨씬 크다. 맨체스터의 콘서트장,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장터, 쌍뜨빼쩨르부르그의 지하철과 스톡홀롬의 쇼핑몰 등 장소가 점점 늘고 있고, 그 시간이나 대상, 그리고 주체도 다양해지고 있다. 불특정 다수가 많이 모이는 유럽 주요 도시를 예전처럼 한가롭게 구경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일간지 ‘헬싱키 사노맛(Helsingin Sanomat)’ 국제부 기자 헤이끼 아이또꼬스끼는 지난달 24일자 칼럼을 통해 “테러리즘이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면 자유도 포용도 없어진다”며 “안보와 자유를 동시에 극대화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평화롭고 조용했던 핀란드의 여름은 지금까지와 같이 계속 안전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북유럽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라도 테러리즘이 사그라지기를 바란다. 북적거리는 축제나 음악회가 아니라, 그저 일 년에 한두 달쯤 자연을 감상하며 쉴 수 있는 시간이 모두에게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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