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거듭나기

[언론 다시보기]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근 KBS와 MBC에서 사장 퇴진의 목소리가 높다. 기자·PD를 비롯한 구성원들이 기수별로 또는 개인이 실명으로 퇴진을 요구했다. KBS에서는 기자·PD 또는 노조원이 아니라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했는데 응답자의 88%가 사장 퇴진에 동의했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요구했던 촛불 혁명의 연장선에 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 공정한 언론은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KBS와 MBC에서 구성원의 의사에 반해 사장을 불법·편법으로 몰아내고 정권의 대리인을 사장으로 앉힌 기간 동안 공영방송은 추락했다. 신뢰도와 영향력은 땅에 떨어졌고, 공영방송다운 보도, 공영방송다운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주장한 사람들은 해고되고 징계를 받았다. 공영방송의 ‘날개 없는 추락’에 책임을 져야 할 인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한 공영방송의 공공성 복원은 무망해 보인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동안 공영방송 경영진들은 200여 명이 넘는 언론인들을 해고·징계 했다. MBC와 YTN에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해고자가 있고, 피징계자 대부분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직종과 무관한 부서에서 근무한다. 비리로 쫓겨난 사장을 프로그램에서 풍자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MBC 안혜란 PD. MBC의 현실을 한탄하는 웹툰으로 해고됐다 대법원의 판결로 돌아온 권성민 PD. 공추위 간사로서, 공정보도국장으로 왜곡보도의 사유를 물어보다 징계를 받은 KBS의 정홍규, 김준범 기자. KBS의 현실을 한탄하다가 제주로 쫓겨 갔던 정연욱 기자 등은 알려진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사회 쟁점들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불방시키고, 공정 보도를 막고, 왜곡보도를 지시하고 거부하면 징계하고 이게 우리의 공영방송이 지난 9년 동안 겪은 현실이다. 방송 독립성과 공정성은 방송 노동자의 기본 노동조건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인용하지 않고 상식적인 견지에서 봐도 공영방송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보도의 자율성 즉 내적 자유를 확보하지 않은 저널리즘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은 이 국면을 ‘강 건너 불구경’해도 될까? 우선 공영방송의 기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제대로 보도한 것 같지는 않다. 제대로 보도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같은 언론인들이 공정방송 투쟁을 벌이는데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기자 동료로서 자괴감이 없었을까?


그렇다고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을 때 다른 언론들이 권력의 비판 감시 견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한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지난 정권의 국정농단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당시 4대강, 방위산업, 자원외교 비리 보도는 ‘언 발에 오줌 누듯’ 찔끔 지리고 말았을 뿐이다. 사실 권력이 직접 개입함으로써 두드러져 보여 그렇지 공영언론의 현실과 다른 언론의 현실이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대부분 언론은 기레기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공정보도를 얘기하는 게 사치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언론이 저널리즘의 고민보다는, 클릭장사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내가 이러려고 기자됐나!’라며 자괴감을 느끼고 있어야 마땅하다. 최근 논란이 되는 가짜뉴스 범람에 대처하는 적절한 해법은 신뢰받는 저널리즘이다. 그러나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SNS의 시대에 신뢰받지 못하는 저널리즘의 만연은 역으로 언론 전체의 공멸을 의미한다. 올바른 저널리즘 회복을 위한 공영방송의 분투를 도외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오히려 이번 공영방송의 투쟁을 계기로 언론 전반에서 저널리즘 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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