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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눈치만 보다 추락한 신뢰…‘국민의 방송’ 돌아올 수 있을까

공영언론의 9년, 잃어버린 저널리즘 ③KBS
뉴스 시청률 1위 지켰지만 신뢰·공정성은 계속 하락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선과 함께 내부 분위기 쇄신 필요

최승영 기자2017.06.14 14:04:04

공영방송 KBS 구성원들이 고대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2일 KBS 양대 노조와 사내 10개 직능단체가 약 500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선 응답자 3292명 중 88%(2896명)가 사장이 퇴진해야 한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54%가 퇴진의 주된 사유로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하락’을 꼽았다. 지난달 조준희 YTN 사장이 자진사퇴하며 본격화된 움직임이지만 이 같은 인식은 하루이틀 새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오히려 지난 9년 간 반복되고 누적된 현실이 정권교체와 맞물려 갑자기 터져 나온 것에 가깝다.

‘신뢰의 위기’ 맞은 KBS
“KBS를 향한 국민들의 신뢰가 어디까지 추락할지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아깝다…KBS가 국민만을 바라보고 떳떳하게 방송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투쟁을 벌여나갈 것”(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 지난 12일 기자회견 발언)


▲12일 KBS 양대 노조와 10개 직능단체는 KBS 약 5000여명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노조)

KBS 구성원들은 현재 공영방송사 위기의 본질을 ‘신뢰의 위기’로 보고 있다. 실제 여러 지표들을 종합해 보면 KBS는 ‘영향력은 아직까지 최고지만 신뢰성·공정성이 최고는 아닌 언론사’ 정도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해마다 실시하는 프로그램 신뢰도 조사에서 KBS ‘뉴스9’은 2016년 응답률 13.4%에 그쳐 JTBC ‘뉴스룸’(17.5%)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지난해 9월 실시된 ‘시사저널’의 언론사 신뢰도 조사에서도 KBS(26.6%)는 JTBC(34.4%)에 밀렸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더 냉정했다. 언론학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 ‘미디어미래연구소’ 신뢰성 조사에서 지난 9년 간 줄곧 신뢰성 상위권에 랭크돼 오던 KBS는 2016년에 이르러 순위권에서 아예 사라졌다.


반면 ‘2016년 KBS 경영평가보고서’ 등에서 ‘뉴스9’의 시청률(평일, 수도권 기준)은 17.94%로 확인돼 타 지상파 방송 메인뉴스의 2~3배 수준을 보였다. KBS 한 기자는 “지상파 뉴스 중 유일하게 9시 시간대를 고수하고 있지 않나. 경쟁이 치열한 8시대에 가면 경쟁력이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경영평가보고서는 이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매체이면서 신뢰성과 공정성이 하락하는 매체라는 평가”라며 “(국정농단 당시 보도와 관련) 전대미문의 사회적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에서 KBS가 국민의 알 권리를 적극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장악 방지법 개정 절실
여러 지표들은 KBS의 보도를 둘러싼 수많은 비판들이 구체적인 숫자로 드러난 데 불과했다. 국가적 재난급의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공영방송사 보도를 두고 내외에서 지적이 빗발쳤다.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 축소·은폐, 4대강 뉴스 불방, 천안함 ‘안보팔이’ 보도,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폐지, 관제 프로그램 양산 논란 등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과도한 대북보도나 극우적 인물을 다룬 프로그램 방영 등도 단골메뉴였다.


KBS는 때로 수신료 인상 등 이해관계나 정치권의 자장 안에서 논란의 당사자가 되기도 했다. ‘이정현-김시곤 녹취록’, ‘김영한 비망록’ 등은 대표 사례다. 최근 ‘뉴스타파’의 보도로 다시금 제기된 2011년 ‘민주당 도청 및 녹취록 유출 의혹 사건’ 등도 이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특히 이런 배경에는 항상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문제가 깔려 있었다. 정연주, 이병순, 김인규, 길환영, 조대현, 고대영 사장 등 지난 9년 간 KBS의 사장직을 맡았던 6인 대다수는 ‘낙하산 사장’이란 평가와 함께 ‘불공정방송’의 당사자란 지적을 받아왔다. 이사회 구성과 사장선임이 정부여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자리 보위를 위해선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를 개정하려는 ‘언론장악 방지법’이 현 여당이 야당이던 시절 발의됐지만 현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계류돼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12일 성명에서 “국민은 ‘정권의 방송’이 아니라 ‘국민의 방송’을 원한다”며 방송법 개정을 지상과제로 거론했다. 이어 자유한국당 측에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를 철회하고 법안 처리에 즉각 협력하라”고 촉구했다.

고난·싸움의 시간…“KBS 바로잡아야”
지난 9년간 KBS 구성원들은 내내 싸워왔다. 김인규 사장, 길환영 사장 등 당시엔 대규모의 장기간 총파업이 있었다. 파업 이외 제작현장에서의 충돌도 끊이지 않아왔다. 고 사장 임기 동안만 해도 대구총국 사드 외부 세력 개입 보도, KBS가 30억원을 투자한 영화 ‘인천상륙작전’ 홍보성 리포트 제작지시 거부 기자 징계, ‘이정현 녹취록’에 침묵하는 간부들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던 기자의 징계성 제주발령 등의 일들이 터졌다.


이 같은 기간이 길어지면서 현 공영방송 거버넌스의 개선과 함께 KBS 내부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 돼 버렸다. 언론사의 환경, 제작자율성은 동료들과의 관계와 무관치 않아서다. 내부에서는 지난 2008년 정연주 사장 해임안이 의결된 ‘8·8사태’가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 이명박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부당해임에 반대하던 직원들을 끌어냈다.


KBS 한 기자는 “현재 회사 분위기는 이명박 집권 후 ‘8·8 사태’를 겪고 나서 상황이 심화된 결과”라며 “성향이 다른 사람들도 일과가 끝나면 호프집에서 자유롭게 만나 터놓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젠 그게 언젠지 모르겠다. 선후배 간 유대가 단절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보도본부 간부들 주도하에 결성된 사조직이 기자협회를 공격하고 성명 등을 내는 과정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 선배들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확인되며 분위기가 악화됐다는 의견도 있었다.


당장 KBS 구성원들은 공영방송사 내외를 모두 바꾸고 추슬러야 하는 어려운 난제를 안고 있다. 앞으로 모든 투쟁에 양대노조와 10개 직능단체가 비대위 체제로 싸워나간다는 방침이다. 이현진 KBS노동조합 위원장은 “양대 노조가 한 마음으로 길환영 사장을 퇴진시켰던 때도 6월이었다. 딱 3년이 지난 2017년 6월,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또 한 번 승리의 역사를 쓰고자 한다”고 밝혔다. 14일 이들은 서울 여의도 KBS 본관 계단에서 사장퇴진 끝장투쟁 선포식을 개최한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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