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처 너머에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3부)다시 저널리즘으로 가는 길 ③출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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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출입처’ 비합리적 카르텔 문화 양산
권력 견제·취재편의 목적이지만 폐쇄적 운영으로 비판받아
신뢰도 떨어지는 매체 차단…언론 건전성 유지 역할도
기자단 폐쇄성 개선하고 전문기자 양성 환경 만들어야


“온라인뉴스 부서에 따로 출입처가 없으니까 정보 하나 얻는 것도 어렵더라고요.” 한 방송사 A 기자는 출입처의 폐쇄적인 시스템부터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출입처가 없는 기자들은 보도자료나 브리핑 일정과 같이 기본적인 정보에서조차 배제되는 건 일상이고, 통신사발 스트레이트 기사에 나온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것조차 막히기 일쑤다. 특히 엠바고가 걸린 기사의 경우 출입기자만 미리 내용을 받고 취재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이슈를 빠르게 따라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A 기자는 “중요한 부처에 출입처를 꾸리는 건 필요하다”면서도 “기자단 투표제와 같이 자신들만의 리그를 구성해 비합리적인 카르텔을 만드는 건 사실상 취재방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일간지의 B 기자도 고민이 다르지 않다. 온라인 부서에만 4년 가까이 몸담아오며 출입처 없이 취재하는 어려움을 몸소 체감해온 그다. B 기자는 “연예와 스포츠와 같은 분야는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의 기사 유통이 본격화되면서 출입처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여러 매체가 동등하게 경쟁하는 구도가 자리 잡혔다”며 “반면 그 외 다른 분야는 아직도 공고한 출입처 문화가 자리하고 있어서 취재하기가 쉽지 않다. 대개 편집국의 해당 출입처 기자에게 사실 확인을 이중 단계를 거치며 기사를 쓰는데 번거로운 게 사실”이라고 호소했다.

출입처 제도, 필요악일까
오랜 기간 취재 편의를 위해 제공돼온 출입처 문화가 속보성이 강조되는 시대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패쇄적인 출입처 문화가 발빠른 취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본래 출입처 제도는 권력에 대한 견제 목적과 취재 편의를 위해 생겨났다. 기자들은 집단적으로 현장에 상주하며 출입처에서 제대로 업무가 수행되고 있는지 감시한다. 또 풀기자단에 우선적으로 제공되는 정보는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하고, 공보 라인은 사안에 대해 사실 확인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된다.


▲출입처의 감시 기능은 살리되 카르텔과 같은 지나친 폐쇄성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기자 양성과 탐사, 기획 보도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현 출입처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온라인 부서에 있다가 경제부로 옮긴 한 일간지 기자는 “출입처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부서를 옮기면서 더 크게 실감했다”며 “기존에 경제부 선배들이 쌓아놓은 연락망을 한꺼번에 받고, 취재원들도 단기간에 파악하면서 취재가 훨씬 쉬워졌다”고 했다. 그는 “꼭 폭로성 아이템만 기사가 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내부 자료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취재는 출입처가 없으면 아예 기사화될 수도 없기 때문에 (출입처는) 필수 제도”라고 했다.


무분별한 기사를 걸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JTBC의 한 기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1인 매체들이 광고 협찬을 따기 위해 협박성 기사를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기자단의 까다로운 가입 조건은 이를 완화하고 있다”며 “신뢰감 떨어지는 매체들의 접근을 막아 언론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의 기자는 “출입처가 따로 없으면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사들이 양산되면 개인의 명예훼손을 넘어 사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법조나 정부부처는 엄격하게 출입처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입처의 검은 그림자, 카르텔 문화
출입처의 이 같은 순기능에도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흘러가는 문화는 개선해야할 점으로 꼽힌다. 특히 종합편성채널과 온라인 매체의 기사 소비가 급격하게 늘며 기존 언론사를 위협하는 단계에 다다르자, 진입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가입을 막는 ‘카르텔’이 팽배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청 한 직원은 “기자단이 투표를 통해 해당 언론사의 출입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정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관행”이라며 “기자단 가입을 원하는 언론사의 기자는 일정 기간 동안 매일 출입해야 하고, 기사의 양적 기준도 충족시켜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 모든 기준에 부합된다고 해도 기존에 가입된 언론사 기자들의 개별 투표로 인해 결정되기 때문에 탈락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통신사의 기자는 “기획 기사를 발제해서 취재하려고 하는데, 해당 출입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자료를 받는 데만 일주일 이상 걸린 적도 있다. 홍보실에서는 대개 기자라고 하면 정보 제공에 호의적이지만, 출입기자단의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직접 현장에 찾아가면 기자단이 대놓고 차별하고 배제하기도 한다. 심지어 출입처의 주요 간부와의 티타임이나 식사 약속도 배제시키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수시로 바뀌는 출입처…전문성은 헛된 꿈
출입처 제도의 폐쇄성은 기자의 전문성에도 독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 언론사들은 대개 기자들의 출입처를 수시로 바꾸는 방식으로 취재 영역을 분배하는데, 이 같은 조치가 전문기자의 양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창일 국민일보 기자는 “출입처가 1~2년 단위로 바뀌다 보니 전문성을 쌓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며 “장기적으로 기자의 전문화를 담보해야 (출입처 제도) 유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상욱 CBS 기자도 “오히려 출입처에 편입이 되면서 기자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자기 개발이나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안주하는 문화가 양산되고 있다”며 “출입처를 거치지 않은 전문기자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건 그만큼 끊임없이 노력한 대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출입처라는 울타리는 ‘질문하지 않는 기자’를 양산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청와대 기자들이 박 전 대통령에 질문을 하지 않고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이 뉴스 화면에 담기며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경제부 등 주요 부처 출입처에서 브리핑이 있을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영자신문의 한 기자는 “질문 순서와 내용 등을 사전에 합의해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며 “물론 질문 선정에 있어 중복과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지만, 지나친 준비는 자칫 취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감시 기능 살리되 카르텔 최소화해야
“홍보실에서 제공하는 일방적인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기사가 얼마나 가치가 있겠어요. 기자가 아니라 회사원 마인드가 강해진 거죠. 편하게 앉아서 떠먹여주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쓰다보면 더 이상 발로 뛰는 취재를 하기 귀찮아지는 게 사람이에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와 친분이 있는 대기업 간부를 위해 홍보기사를 써주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죠.”


한 방송사의 C 기자는 “보도자료를 써주는 게 출입처 관리라고 생각하는 선배들이 있다. 출입처 관계자와의 친분 때문에 비판 기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선배도 봤다”며 “출입처에 연연하지 말고 제대로 된 기획기사를 써보자는 분위기가 나오면 간부들이 ‘그럼 광고나 협찬 어떻게 할 거냐’는 식으로 덮기도 한다”고 했다. C 기자는 “선배들이 아무렇지 않게 출입처에 의존하는 것을 보고 기자 일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언론의 미래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지 자괴감도 들었다”고 호소했다.

조직개편·평가시스템으로 전문기자 쑥쑥
기자들은 출입처의 기능은 살리되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자단의 폐쇄적인 문화를 개선하고 전문기자를 양성하는 환경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원우 한국경제TV 기자는 “출입처에 얽매이다보니 비슷한 기사를 생산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이 뉴스 선택의 제약을 받는다. 공급이 아닌 수요 측면에서 실제로 시청자가 궁금해 하는 뉴스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뉴스타파와 같이 탐사보도나 기획 체제로 가는 게 지금의 출입처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면 팩트체크나 카드뉴스와 같은 하드웨어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방식도 현실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기자 조직문화 자체도 이슈 하나가 터지면 여러 명이 붙어 대응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도 “방대한 취재영역을 취재원에 따라 출입처를 나누면, 겹치지 않고 효율적으로 취재할 수 있고 전문성도 살릴 수 있다”며 “출입처에 얽매이지 않고 취재원을 통해서 얻은 정보는 바로 기사를 쓰거나, 담당 기자와 협업해서 보다 완성도 높은 기사를 쓰는 등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도록 언론사 차원의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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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쌓아야 발굴 기사 나오죠”
의사에서 데스크까지 종횡무진 이진한 동아일보 기자


“제 별명이 ‘발발이’에요. 그만큼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고 즐기죠. 주변인들은 ‘의사 관두고 기자되길 잘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진한 동아일보 기자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의학 관련 기획기사 발굴하랴, 후배들 기사 데스킹하랴, ‘이진한 의사 기자의 따뜻한 병원 이야기’ ‘광화문에서’ 등 정기 칼럼 기고까지 하루가 쉼 없이 흘러간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명함에는 정책사회부 데스크라는 직함과 함께 의학전문기자, 의사, 통합의학박사 등이 빼곡히 박혀있다.


▲이진한 동아일보 기자는 의학전문기자로서는 최초로 데스크를 맡고 있다. 의사라는 선입견을 벗고 기자로서, 작가로서, 칼럼리스트로서 승승장구한 비결은 출입처에 연연하지 않고 기사를 발굴해내려는 노력에 있다. 이 기자는 “한 분야에 꾸준히 네트워크를 쌓으면 누구나 전문기자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학생회에서 야학 활동을 하며 사회 이슈에 관심을 키워온 그가 서울대 의대와 인턴을 수료하고 기자로 업을 바꾼 지도 벌써 17년째. 처음부터 그가 취재에 재능을 보인 건 아니었다. 의사라는 타이틀은 종종 걸림돌로 작용했고, 보이지 않는 선입견이 그를 힘들게도 했다.


“오래전부터 기자를 꿈꿨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글쓰기에 있어서 트레이닝이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주어와 서술어와 같이 기본개념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 글이 매끄럽지가 않았죠. 또 ‘대체 왜 기자가 됐냐’고 의아하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때마다 ‘더 열심히 잘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의학전문기자는 대개 출입처가 없는 경우가 많아 취재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이 기자는 출입처를 넘나드는 발굴 기사를 내며 전문성을 키워왔다. 적극적으로 개인 네트워크를 쌓아야 출입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출입처발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건 속보성을 강조하는 요즘 시대에 의미가 없어요. 통신사 기사를 그대로 쓰면 누가 보겠어요. 자체적으로 취재해서 다른 발굴 기사를 내놔야 해요. 자기 출입처가 아니어도 접촉을 꾸준히 하다보면 자연히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새로운 기사도 나옵니다.”


이 기자는 “일반 기자도 그 분야에 최소한 3~5년 이상 파헤치면 전문기자가 얼마든지 될 수 있다”며 “기자들은 평소 관심 있는 분야를 설정해 끊임없는 네트워크를 쌓고, 회사는 기자로서의 취재 영역을 확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주는, 두 박자가 어우러져야 출입처에 연연하지 않는 전문기자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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