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과 편견의 뉴스룸…이해와 대화 앞에 '넘사벽'은 없다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3부)다시 저널리즘으로 가는 길 ①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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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 “현장과 소통없는 회의…일방적 지시와 평가만”
선배들 “개인주의 성향 강하고 대화도 부담스러워 해”
사측 일방적 징계 빈번…소통은커녕 불통·불화
위계적 조직문화 ‘한번 해보자’ 의지보다 ‘해도 안된다’ 회의감만



“평기자들은 데스크를 불신하며, 데스크는 임원진을 불신하고 있습니다. 임원진은 후배 모두를 불신하고 있습니다.”


“사내 소통이 활발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토론을 펼친다는 다른 회사의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눈물이 날 만큼 부러웠습니다. 저희가 선배에게 받은 술잔은 공식 회식 외에 몇 잔이나 있었나 돌이켜 보았습니다.”


지난 23일 연합뉴스 막내 기수 기자들이 낸 성명 일부다. 이들이 고백한 상황은 연합뉴스만의 일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많은 언론사가 겪고 있는 소통 부재의 현실이다.


▲소통이 화두인 시대. 요즘 기자들은 뉴스룸에서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후배들은 ‘존경할 만한 선배가 없다’고 하고, 선배들은 ‘개인주의적 성향, 회사원 같은’ 후배들을 못 미더워 한다. 위계적 언론계 문화, 세대 차이, 노사 갈등, 회의적 분위기가 켜켜이 쌓여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소통 창구를 열 대책은 없는 걸까.

요즘 기자들은 선후배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뉴스룸에선 인간적인 대화와 생산적인 토론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기자협회보가 지난해 12월 기자 1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저널리즘 인식 조사’에서 ‘선후배 소통이 잘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48.8%(84명)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대체로 잘 된다’는 응답은 18.6%(32명), ‘매우 잘 된다’는 1.2%(2명)에 그쳤다.


특히 평기자와 데스크급의 인식 차이가 두드러졌다. 같은 설문에서 직위별 소통 원활에 대한 인식을 5점 척도(‘매우 그렇다’ 1점, ‘전혀 그렇지 않다’ 5점)로 평가한 결과 평기자의 불만이 3.52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 지수는 차장급(3.32점), 부장급(3.08점), 국장급(2.93점) 순으로 집계돼 연차가 낮을수록 소통 부족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존경할 수 없는 선배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듯 뉴스룸의 소통 부재는 일선 기자와 데스크·국장급 사이에서 크게 부각된다. 먼저 젊은 기자들은 존경할 수 있는 선배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데스크는 이상하다’ ‘기자의 주적은 데스크’ 라는 불평이 나오기도 한다.


기사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데스크와의 갈등은 가장 큰 불만이다. 종합일간지 5년차 A기자는 “현장 기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자신이 회사에 앉아 상상한 ‘야마(글의 주제)’에 맞춰 기사를 재구성하는 데스크가 있다”며 “중요한 문장을 들어내거나 취재하지 않은 내용을 집어넣고, 데스킹을 거치면 오히려 기사가 이상해지는 경우도 있다. 부끄러움은 바이라인을 단 내 몫”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매체 3년차 B기자는 “이미 현장을 떠났다고 해도 업계 소식에 둔감한 부장을 보면 답답하다”며 “회의는 현장 이야기를 반영하는 자리라기보다 일방적인 지시와 평가만 있다. 소통 자체가 없다 보니 ‘부장이 또 세상모르는 소리 하는구나’라고 넘어가곤 한다”고 했다.


선배의 모습에 자신의 미래를 비춰보다 한숨만 나왔다는 기자도 있었다. 종합일간지 산업부 C기자는 “기업 ‘조지는’ 기사 주문하면서 뒤로 광고나 협찬받는 선배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되겠지’라는 두려움이 든다”며 “본받을 만한 선배가 없다, 우리는 언제쯤 그만 둬야할까라는 말을 동기들까지 자주 한다”고 토로했다.



평기자들은 업무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일간지 D기자는 “해외 출장 다녀오고 얼마 후 부서에서 여름휴가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 데스크가 ‘출장 다녀왔는데 왜 휴가 가느냐’고 하더라”라며 “선배 때는 출장이 노는 것이었나. 힘들게 취재하고 온 후배를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에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방송사 6년차 E기자는 “휴일이나 휴가에 거리낌 없이 취재지시 하는 일도 다반사”라며 “이달의 기자상 신청할 때 한 일도 없이 숟가락만 얹는 선배들을 보면 내가 다 민망하다”고 말했다. 방송사 2년차 F기자는 “기자들 격려하고 사기 높이겠다면서 술자리 만드는 건 구시대적”이라며 “대신 새벽까지 일한 수당을 달라. 수당이 어렵다면 눈치 보지 않고 연차휴가라도 쓸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못 미더운 후배
선배들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차장급 이상 기자들은 ‘요즘 후배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기자가 아니라 그저 직장인처럼 살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기자 정신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내비쳤다. 일간지 G부국장은 “취재거리가 있다면 늦은 밤이나 새벽에 일할 때도 있어야 하는데 후배들이 몸을 사리는 모습에 안타까울 때가 있다”고 했다. 경제지 H부장은 “급한 일이 생겨 추가 근무를 해야 했는데 수당 줄거냐부터 묻는 후배가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챙겨줄 거였는데 괜히 얄밉더라”며 “데스크들은 기자로서 업무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젊은 기자들은 휴가나 복지 등 당연한 권리 행사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선배 기자에게 후배들은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도 했다. 종합일간지 I차장은 “나와 비슷한 연차 기자들 모두 후배들이 어렵다고 한다. 배려하려다 보니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고 눈치 보게 된다”며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쌓아야 애정을 가지고 가르쳐 줄 수 있는데 후배들은 대화마저 부담스러워한다. 소통해보자고 자리를 마련하면 싫어하는 내색이고, 막상 참석해도 아무 말을 안하니 회의에서도 활발하게 의견을 나누기 힘들다”고 했다.


고참과 주니어 사이의 기자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경제지 12년차 J기자는 “연차가 낮을수록 개인적이든 업무적이든 이야기를 잘 안하더라. 자기 생각을 드러내면 회사 생활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 우려하는 듯하다”며 “10년 전 만 해도 선배와 기사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다 술 한잔 하며 풀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일 자체가 없어졌다”고 전했다.
 
멀고 먼 사이, 기자와 경영진
선후배뿐 아니라 노사 간 소통 부재도 널리 퍼져있다. 극심한 노사 갈등을 겪고 있는 MBC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2년 공정보도를 위한 170일 간의 파업 후 수많은 기자·PD·아나운서가 해고되거나 떠밀리듯 떠났고 MBC의 신뢰도와 명성은 곤두박질쳤다.



사측의 일방적인 징계는 최근 지역 MBC까지 퍼지고 있다. 지난 4월 춘천MBC는 노사 임금교섭 중이던 노조위원장에게 정직 3개월 중징계를 내렸다. 대전MBC에서는 ‘7분 지각·취재계획서 미제출’과 ‘방송 지연·무단결근’을 이유로 기자 2명이 감봉 징계를 받았다.


이달 들어 포커스뉴스에서도 기자 징계가 이어졌다. 대선 전후로 출고된 기사 100여건을 사측이 일방적으로 삭제했는데, 이에 반발한 기자 가운데 4명이 대기발령 조치나 권고사직을 받았다. 국제신문 구성원들은 엘시티 비리에 연루된 사장 퇴진운동을 벌였다. 현재 연합뉴스와 KBS, MBC의 내부 게시판에는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이 나오고 있다.


구성원과 경영진의 소통은 갈등, 징계 해소뿐 아니라 언론사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디지털화 등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나아갈 길을 함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종합일간지 8년차 K기자는 “회사를 끌고 가는 분들과 일선 기자들은 만날 기회가 없다. 회사가 왜, 어떻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들은 적도 없다”며 “가끔 대표와의 만남, 설명회를 열지만 일방적이고 일회성이다. 그건 소통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경제지 3년차 L기자는 “경영진과는 불통을 넘어 불화가 아니면 다행인 수준”이라며 “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 편집국 간부들이 대부분 경영진의 의견에 따르다 보니 소통이 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위계적 언론 문화와 세대 차이
언론사 선후배 사이, 노사 간 소통은 왜 원활하지 못한 걸까. 종합일간지 5년차 M기자는 뉴스룸 분위기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는 “소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어려운 데다 기자들은 그 의지를 가질 수 없고 갖고 싶지도 않아 한다”며 “‘한 번 해보자’보다 ‘해도 안 될 것’이라는 회의감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지역방송국 2년차 N기자도 “언론사의 수직적 의사체계에 순응해야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이런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일간지 20년차 O기자는 위계적인 언론계 문화와 함께 선후배 간 가치관 차이가 불통을 만들었다고 봤다. 그는 “대화는 대등한 관계에서 할 수 있다. 한쪽이 지배하는 상황에선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의견 전달, 상부에 보고하는 것 뿐”이라며 “예전 기자들은 언론과 민주주의를 연결지어 생각했는데 지금 후배들은 하나의 직장으로만 보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인 인식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리연차인 10년차 종합일간지 기자는 구성원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했다. 그는 “몇몇 젊은 기자들은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보신주의에 빠진 선배들은 위아래로 소통하는 시늉만 내고 있다”며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KBS와 MBC, YTN, 연합뉴스 등에선 정부의 부정적인 영향력 행사가 구성원 간 소통을 가로막았다. KBS의 한 중견 기자는 “2008년 8월8일 정연주 당시 사장의 해임제청안이 이사회에서 의결됐던 ‘88사태’ 이후 노사 갈등이 시작됐고 선후배 간 유대감도 끊어졌다”며 “사내 정치적 노선이 드러나 권력 편에 선 간부들과 그렇지 않은 후배들의 간극이 점점 커졌다”고 회상했다.

“소통과 토론이 좋은 기사 만들어”
당장 뉴스룸 소통은 쉽지 않다. 소통을 방해하는 언론계 문화, 세대 차이, 노사 갈등, 회의적 분위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대화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언급한 기자협회보 ‘저널리즘 인식 조사’에서 ‘소통의 도구로 무엇이 좋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기자 58.1%가 ‘정기적 대화’를 꼽았다. ‘상향평가제 등 인사혁신’은 27.6%, ‘사내게시판 활성화’ 18.6%, ‘멘토제 도입’ 11.6% 등 순이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초 취임한 편집국장들은 기자들과 대화에 나서며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김민아 경향신문 편집국장, 김창균 조선일보 편집국장 등은 차장급 미만 기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났다. 조선일보에서 편집국장이 기자 개개인과 면담을 한 것은 창간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기 서울경제 편집국장도 취임 직후 매주 기수별 만남을 진행했다.


김영기 서울경제 편집국장은 “기자들과 직접 만나보니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의견과 제안들이 나오더라. 편집국 공기가 안 좋다는 사소한 것부터 야근 시간, 편집부 인력 충원 등 당장 실행한 가능한 것들을 고쳐나갔다”며 “현재 하고 있는 부서별 면담 이후 기수모임을 또 계획 중이다. 여전히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지만 벽이 생기지 않도록 대화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선후배 만남이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기구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역 종합일간지 3년차 기자는 “취재기자와 국장단의 소통 창구를 만들고 대화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주고받은 의견이 신문 제작과 일상 업무에 반영되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를 설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기자들의 노력과 세대 간 인식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종합일간지 6년차 기자는 “우리는 선배들의 의견을 접할 때가 많지만, 선배들은 우리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다. 어렵더라도 젊은 기자들이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며 “선배들은 후배들의 의견을 수용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피드백이 있어야 작은 변화라도 생길 것”이라고 제안했다.


노사 관계에서도 일방적인 결정과 통보 이전에 구성원들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연합뉴스 막내기자들은 23일 성명에서 “전 사원 혹은 최소 대의원이라도 소집해 사장께서 직접 단상에 서서 사측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납득시켜 주십시오. 물밑 협상이 아니라 투명한 대화를 해주십시오”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언론사의 소통은 그 어느 조직에서보다 강조해야 할 키워드다. 민주사회에서 정부, 시민, 기업, 사회 곳곳을 연결하는 창구가 언론이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 한 중견기자는 “언론사의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해야 한다”며 “소통과 토론이 좋은 기사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신종수 국민일보 편집국장은 “뉴스룸에서 소통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기자들이 혼자 판단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고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기도 어렵다”며 “소통과 토론이 복잡할 것 같아도 오히려 더 쉽고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작은 일부터 중요한 보고거리까지 계속해서 묻고 대답하는 게 뉴스룸의 건강한 의사결정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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