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 넘은 '단독·특종 가로채기'

국민 '박근혜 거울방' 단독보도
연합, 출처 안 밝히고 기사화
따라쓴 매체들 온라인서 혜택
포털, 원 소스 배제 편집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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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박근혜 거울방’이 화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 늦게 입주한 이유가 거실을 사방으로 둘러싼 거울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온 후였다. 네이버를 기준으로 보면 ‘박근혜 거울’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검색어에 오른 뒤 온종일 이목을 끌었다.


관련 기사가 쏟아지면서 이를 처음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는 어느새 사라졌다. 직·간접적 인용보도가 포털과 SNS에서 더 큰 주목을 받은 탓이다. ‘박근혜 거울’을 거론한 첫 보도는 15일 오후 6시쯤 국민일보 뉴미디어팀 ‘왱’의 고승혁 기자가 자사 페이스북에 올린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이사 거울방 때문에 늦어져>였다. 뉴미디어팀 합류 직전 정치부였던 고 기자는 자신의 취재원을 통해 청와대 거울방을 파악하고 기사를 내보냈다. 해당 기사는 ‘단독’ 말머리를 달고 국민일보 홈페이지와 포털에도 출고됐다.


몇 시간 후 연합뉴스가 이를 받아 기사화했지만 정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는 15일 오후 11시 보도한 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관저 거실벽 전체에 붙여둔 대형 거울 때문에 문 대통령 내외의 입주가 늦어졌다는 후문”이라고 표현했다. 다음 날 인사이트 등 SNS 전문매체가 연합뉴스를 인용했고, 연합뉴스 전재 언론사들은 연합 발 기사로 처리했다. 포털 메인에는 단독 보도한 국민일보 대신 서울신문 기사가 실렸다.


▲원저자가 사라진‘거울방 보도’는 언론의 잘못된 관행과 온라인 뉴스 시장의 부정적 단면에 맞물려 발생했다. 사진은 국민일보가 자사 홈페이지와 SNS에 실은 관련 보도들.

국민일보 뉴미디어팀장인 이용상 기자는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한 내용인데 먼저 취재한 기자의 콘텐츠는 포털이나 페이스북에서 거의 노출되지 못했다”며 “댓글이나 좋아요 등 단순 수치만 비교해도 받아쓴 매체들이 우리보다 수백, 수십배 큰 혜택을 누렸다”고 설명했다.


원저자가 사라진 ‘거울방 보도’는 언론의 잘못된 관행과 온라인 뉴스 시장의 부정적 단면에 맞물려 발생했다. 먼저 인용보도에 인색한 언론계 문화가 이번 일을 부추긴 모양새다. 지난해 말~올 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대형 특종이 터지면서 인용보도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기자들에게 인용보도는 불편한 일이다. 태블릿PC를 보도한 JTBC를 인용할 때도 자존심 상하니까 소문자로 표기하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라며 “단독보다 받아쓴 타사가 주목받을 때가 많다. 억울하지만 나도 가해자가 될 때가 있어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출처를 밝히더라도 ‘~에 따르면’ 문구 하나로 타사의 콘텐츠를 쉽게 쓸 수 있는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11월 SNS에 떠돈 ‘최순실 곰탕 암호설’을 취재했던 유시혁 비즈한국 기자는 “최씨가 검찰에 출두한 날 저녁으로 먹은 곰탕이 암호라는 의혹을 풀기 위해 검찰청 반경 1km 이내의 모든 곰탕집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썼다”며 “단 1개 언론사만 인용보도를 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내 기사를 아무 말 없이 받아쓴 곳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걸 보니 허탈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포털의 메인 페이지 편집 기준도 늘 도마 위에 오른다. 포털이 기사의 가치나 내용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는 “연극을 직접 관람하고 작성한 리뷰 기사가 아니라 보도자료를 보고 쓴 6줄짜리 기사가 포털 메인에 걸리기도 했다”며 “메인에 뜨면 조회수가 바로 큰 폭으로 늘어나니까 기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승혁 국민일보 뉴미디어팀 기자도 “포털이 원 소스를 배제한 채 뉴스를 유통하면 어느 언론사와 기자가 투자하고 취재하겠느냐”며 “언론사의 수익 문제뿐 아니라 언론 생태계와 국민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최진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한국경제 기자)는 “‘거울방 보도’는 단순히 빠른 사실 확인만으로는 온라인 뉴스 시장에서 주목받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도 “다른 언론사가 독점 취재한 뉴스를 문제의식 없이 자사 뉴스로 둔갑시키는 ‘뉴스 도둑질’이 근절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뉴스유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포털이 느슨한 편집행태로 언론사의 단독-특종 가로채기를 거들고 있다”며 “‘가짜뉴스’ 퇴출을 고민하듯 ‘단독-특종’보도에 대한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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