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소통의 틀, 소셜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언론 다시보기]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만, 그래도 ‘형식’도 중요하다”는 말은 참으로 구차했다. 박근혜 정부 때 이 칼럼에서 두 번이나 그런 말을 해야 했다. 외딴 관저에 머물며 국민과의 대화인 기자회견을 거의 하지 않고,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들과도 대화하지 않는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답답했다. 그래서 “소통의 틀을 바꿔보자, 그러면 내용도 바뀔 수 있다”고 썼다. 돌아보면 허탈하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주 출범했다. ‘소통의 형식’이 신선하다. 대통령이 국무총리 내정자와 신임 비서실장을 언론 앞에서 직접 소개했다. 수석비서관들과 점심식사를 한 후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커피 잔을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요 며칠 새 국민이 접한 대통령의 모습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백악관이나 웨스트윙 같은 미국 정치 드라마를 보면서 국민들이 부러워했던 장면이다. 그래서 지금 국민들은 기대에 차 있다.


소통의 틀을 짜고 운영하는 수석비서관의 명칭도 ‘홍보수석’에서 ‘국민소통수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윤영찬 수석이 임명됐다. 동아일보와 네이버 출신이니,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기성의 대중미디어와 새로운 시대의 주류인 인터넷 미디어를 모두 아는 인물이다.


이번 기회에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의 소통에 관한 한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면 한다. 방향은 개방, 공개, 탈권위, 경청이다. 필자가 2015년 2월 ‘소통과 청와대, 블룸버그의 불펜’에서, 올해 1월 ‘대통령의 정치소통, 공간과 시간의 틀을 선진화해야’라는 칼럼에서 제안했듯이, 무엇보다 대통령이 참모들과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며 수시로 대화해야 한다. 일본 총리실처럼 국민이 대통령의 동선과 그가 만난 사람들의 명단을 언론을 통해 알 수 있는 틀도 필요하다.


좀 더 나아가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블룸버그의 불펜’이라고 불린 넓은 홀의 중앙에 앉아 시청 직원 51명과 함께 일했던 모습을 벤치마킹해 응용해보는 건 어떨까. 메르켈이나 캐머런처럼 대통령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국민과 만나기 위해 슈퍼마켓과 지하철도 자주 들르면 좋겠다. 오바마나 아베처럼 언론에 수시로 나와 현안에 대해 직접 설명도 하자.


소셜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한 걸음 더 혁신을 해보면 좋겠다. 청와대의 언론 브리핑을 매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그 파일을 국민이 언제든 볼 수 있게 인터넷에 올려놓는 거다. 일부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 회의 등 청와대의 회의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올려놓는 것도 좋겠다.


이제 드디어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소통의 ‘형식’을 잘 만들어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그 틀을 통해 지지층뿐만 아니라 중도와 보수 국민의 목소리도 경청하며 ‘내용’까지 잘 채워 ‘통합의 정치’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민심은 냉정하고 무섭다. 소셜 인터넷 시대에는 더 그러하다. 김영삼 대통령도 취임 초에는 파격적인 ‘문민정부’ 행보를 보이면서 지지율이 90%대까지 치솟기도 했었다. 당사자들은 아쉬움이 크겠지만, 이호철-양정철씨가 모두 해외로 나가는 것을 보니 민심을 대하는 문 대통령의 각오가 비장해 보인다.


‘비선과 패권’ 논란을 잠재웠으니 이제 남은 ‘내용’은 안보다. 지금의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의 북한과는 또 다르다. 한미동맹이 흔들려 안보가 위기에 빠질까 우려하는 중도와 합리적 보수 성향 국민들의 걱정을 불식시킬 수 있다면, 지금의 환호는 오래 갈 것으로 보인다. 신선함도, 혁신도, 하다못해 소통을 위한 ‘쇼’라도 해보려는 노력마저 못 보여준 보수의 입장에서는, ‘정말 심각한 위기’라는 얘기다.


어쨌든 이제 한국정치도 대통령을 보면서 ‘소통의 형식’이 아니라, ‘소통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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