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가학적인 미디어 첫사랑, 뉴욕 타임스

[글로벌 리포트 | 미국]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첫사랑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디어 첫사랑’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 대상은 뉴욕 타임스(NYT)라고 시사 종합지 ‘더 위크(The Week)’가 최근 보도했다. 첫사랑은 잘 잊히지 않게 마련이다. 트럼프도 그렇다. 그는 아직도 NYT를 잊지 못하고 있다. 잊지 못할 첫사랑을 마음 속에 묻어두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랑을 끝없이 갈구하는 사람도 있다. 트럼프는 후자다. 트럼프는 NYT와의 만남을 평생의 악연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NYT를 향한 러브 스토리는 대단히 가학적(abusive)이라고 더 위크가 지적했다.


‘스토커’ 트럼프를 대하는 NYT도 결코 만만치 않다. 스트레이트 기사, 해설, 칼럼 등으로 트럼프에 온갖 조롱과 경멸을 퍼붓고 있다. NYT는 5월부터 일요판에 희한하기 이를 데 없는 고정란을 신설했다. ‘트럼프의 모든 게 나쁜 것은 아니다(Trump Isn’t All Bad)’가 이 코너의 문패다. NYT는 독자와 외부 전문가에게 무엇이든 트럼프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기고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첫 번째 등장한 이 코너 칼럼은 트럼프의 과도한 트위터 집착증을 놀리는 내용이었다.


트럼프는 NYT에 이렇게 당하면서도 NYT를 향한 ‘가학적인 연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다. 더 위크는 “트럼프가 CNN, MSNBC 등 일부 방송의 시청을 끊었으나 뉴욕 타임스 구독을 끊지 못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전기 작가인 마이클 댄토니오는 “트럼프가 NYT의 인정을 받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고, 이 신문의 비난을 받을 때마다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의 고향 뉴욕에서 발간되는 ‘지방지’다. 트럼프는 뉴욕시의 퀸즈 출신이고, NYT는 맨해튼에 본부를 두고 있다. 퀸즈와 맨해튼은 서울로 치면 강북과 강남이다. 퀸즈 출신의 트럼프는 파워 엘리트의 집결지인 맨해튼에서 인정받고 싶은 콤플렉스를 떨쳐 버리지 못했다. NYT는 맨해튼 파워 엘리트 세계의 심벌이다. 트럼프는 30대에 부동산 개발로 돈을 벌자 보란듯이 맨해튼에 ‘트럼프 타워’를 세우고, NYT가 자신을 주목해주기를 기대했다.


NYT가 트럼프 이름을 지면에 처음으로 게재한 것은 그가 27세 때인 1973년의 일이다. 그 기사의 제목은 ‘주요 건물주가 이 도시에서 반 흑인 편견으로 고소를 당하다’라고 돼 있었다. 트럼프와 그의 부친이 흑인에게 임대를 주지 않아 인종 차별로 고소를 당한 스토리를 실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5년에 대통령 출마를 위해 공화당 후보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NYT는 그 당시에 “도널드 트럼프라는 수다쟁이 부동산업자가 그의 부와 명성을 (대통령) 자질로 내세워 될 것 같지도 않은 공화당 후보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유세와 대통령 취임 이후 행사에서 뉴욕 타임스 앞에는 꼭 ‘망해가는(failing)’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가짜 뉴스의 대명사로 이 신문을 지칭하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 어느 날에는 하루에 무려 9번 트위터를 날려 이 ‘망해가는’ 신문사에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 다시 NYT의 문을 두드렸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22일 트위터에서 “NYT를 방문하려 했으나 망해가는 신문사가 면담 조건을 바꾸는 바람에 가지 않기로 했다”고 적었다. 트럼프는 그러나 그 다음날 ‘망해가는’이라는 말을 뺀 채 “오늘 12시30분에 뉴욕 타임스에 간다. 기대가 된다!”고 트윗을 날렸다.


NYT는 트럼프의 끝없는 구애에도 불구 트럼프 때리기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NYT의 마크 톰슨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가 취임한) 올 1분기에 온라인 구독자가 30만8000명 순증했고, 이는 NYT 역사상 구독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분기로 기록됐다”고 공개했다. 딘 베케이 편집국장도 지난 2월 방송 프로그램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 타임스를 공격하는) 트윗을 할 때마다 구독자가 급증한다”고 트럼프의 약을 바짝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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