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 시대' 굿바이…문 대통령, 달라진 소통 행보에 기대

취임 후 첫 인선 직접 발표하고 주말엔 기자들과 산행
국민과 적극 소통 표명 등 대통령 의지도 중요하지만
역대 정부 공과 평가해 관행 아닌 시스템 정착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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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소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일 첫 취임사부터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시사하는 이같은 발언이 나왔다. 대통령이 직접 총리 등 첫 인선과 그 배경을 발표하고, 취임 후 첫 주말에는 선거기간 자신의 마크맨이었던 기자들과 북악산 등산을 했다. 아직까지는 언론과의 소통이 활발한 상황이다. 다만 전임 대통령들의 언론소통 방식에서 공과 과를 찾고, 이런 행보를 관행이 아닌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임 박근혜 정부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불통’이었다. 공식·비공식 석상에서의 소통은 물론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임기 내내 ‘불통’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2015년 1월 신년구상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참모들로부터 대면 보고를 받지 않는다는 지적과 관련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답한 것은 상징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 첫 주말인 13일 오전 대선당시 ‘마크맨’을 담당했던 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을 하며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는 총 5회로 김대중, 노무현(이상 각 150회), 이명박 대통령(20회) 등과 비교해 가장 적었다. 2014년 1월 취임 1년만에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을 정도다. 그나마 마련된 기자회견조차 사전질문지 유출 등으로 연출 논란에 휩싸였으며, 추가 질문도 받지 않았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들러리를 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에는 전국 30여개 지역일간지가 박 대통령의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 지역언론이 배제되면서 “지방과의 소통 외면”을 비판, 일제히 기사를 싣는 일도 있었다.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언론을 ‘홍보팀’과 비슷하게 대했다는 평가가 많다. 민감한 질문이 쏟아지는 기자회견 대신 사전 각본을 짜기 쉬운 방송을 활용하는 일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따른 대국민 사과 후 기자회견을 잘 열지 않았다. 대신 임기 첫해 10월부터 격주로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고, 취임 2년차에도 연두 기자회견 대신 ‘국민과 대화’를 했다. 2009년 9월 이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유치 보고 특별기자회견’에서 당시 최대 현안인 세종시 관련 질문을 빼달라고 요청하며 ‘언론통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를 받아들인 기자단 역시 비판 대상이 됐다. 전임 정부에 비해 소통은 줄었지만 질문한 기자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답하거나 운동 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기자실에 들르는 등의 스킨십은 많았다는 평가도 있다.


이 대통령 임기 말 청와대를 출입했던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임기 초 (기자회견이 없었던 대신) 몇몇 수석, 참모들이 기자들과 만나 정책 방향 등을 설명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하는데 (임기 말엔) 차이가 있었다”며 “박 대통령 땐 그런 것마저 없었다고 하는데 불이익을 당하겠다는 두려움이 있으면 당연히 (이런 것도) 어려워지는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을 마치고 청와대 충정관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뉴시스)

노무현 대통령 임기는 언론과의 소통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로 꼽힌다. 노 대통령 캐릭터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란 평이 많다. 춘추관을 찾아 직접 국정운영을 설명하거나 예고 없이 주말에 국회에 나타나 기자회견을 하는 일도 잦았다. 논쟁을 피하지 않고 즐기면서 ‘설화’도 많이 겪었다. 석진환 한겨레 기자는 지난 2015년 관훈저널 기고에서 “기자회견을 해도 주류 언론이 비틀어 써서 그 취지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된다는 불만이 많았던 노 대통령은 ‘왜곡’ 없이 그대로 전달되는 생방송을 적극 활용하려 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이 MBC ‘100분 토론’에 사전 원고 없이 나와 패널과 논쟁을 벌이고, 청와대 대변인이 매일 정책방송에서 생중계 브리핑을 한 배경에는 참여정부의 언론불신이 깔려 있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청와대를 출입한 한 지상파 기자는 “산행 같은 공식행사를 통해 기자들과 보긴 했지만 노 대통령도,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도 ‘스킨십’은 잘 하지 않았다. 살갑게 대하고 잘 아는 척하기보다는 낯가림이 있고 소탈한 스타일”이라며 “임기 초엔 틈나는 대로 기자실을 찾곤 했는데 보수 언론에 말꼬리가 잡히고 그게 증폭되다보니 중후반 들어선 (방문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소통’의 정도를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란 점은 여전하다. 하지만 대통령 개인이 ‘소통’을 위해 몇몇 이벤트에 나서는 것과 조직 자체가 언론을 대하는 방식이 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새 정부가 역대 정부의 성과를 냉정히 평가해 청와대 취재 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집무실 자체를 옮기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적기이기도 하다.


김영삼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청와대에 출입한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은 “문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인식이나 소통 의지는 충분히 전해졌다고 본다. 남는 게 제도화의 문제”라며 “춘추관 브리핑을 정례화하고 현안이 있으면 주요 수석, 실장 등이 수시로 오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이어 “노 대통령이 취재 시스템을 고치면서 중앙언론은 격년으로, 지역언론은 5년에 한 번씩 대통령이 개별 언론과 인터뷰하던 게 사라졌다”며 “언론사별, 지역별로 특화해서 물어볼 수 있는 이점이 사라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본부장은 또 “기자단에 무조건 맡기고 질문을 사전 조율하거나 추가 질문을 봉쇄하는 것도 사라져야 한다”며 “앞서 청와대 선배들이 잘못 만들어 놓은 건데 지금이라도 고쳐야 된다”고 밝혔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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