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선 올라갈수록 기사 달라진 사실 확인 안해

SBS '세월호 인양 지연 의혹 보도' 조사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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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지난 2일 보도해 큰 논란을 일으켰던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 보도는 부실한 취재, 부적절한 데스킹, 허술한 게이트키핑, 뉴스 제작 시스템의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일어난 대형 사고였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김성준 SBS 보도본부장이 지난 3일 '8뉴스'에서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보도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SBS가 15일 발표한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난달 16일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뉴스제작1부 소속 조을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오며 시작된다. 이 공무원은 조 기자의 전 직장 선배와 친분 있는 사이라고 밝히며 9분간의 통화에서 세월호 인양과 관련해 여론 동향을 묻고 해수부 내 분위기를 전했다. 그 과정에서 “(세월호 인양은) 문재인에게 갖다 바치는 거다”라는 발언을 했다.


당시 해수부가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세월호 인양에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했던 조 기자는 이후 17일, 18일, 24일에 공무원과 재차 통화하면서 해수부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기사를 쓰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당 공무원을 ‘000실 소속 홍보관리관’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세월호 인양 과정을 충분히 파악할만한 위치에서 계속 근무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28일 조 기자는 SBS 보도정보시스템 취재정보에 해당 내용을 올렸다. 이를 보고받은 뉴스제작1부장은 조 기자에게 통화한 공무원의 직위를 물어봤고 조 기자가 ‘홍보관리관’이라고 답하자 ‘공보과장(4급 상당)’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발언과 정황만으로는 기사를 쓰기 어렵다며 더 취재해보라고 조 기자에게 지시했다.


조 기자는 28일과 30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 특별조사위원회 전 조사관, 국회 농해수위 관계자 등과 통화해 추가 취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탄핵이 가시화하면서 해수부 분위기가 인양에 적극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2일 오후 1시엔 다시 취재정보에 세월호 선체조사위 시행령이 오늘 통과됐고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등을 조사한다는 내용에, 이전에 올렸던 해수부 공무원 발언을 포함시켜 기사로 발제하자는 내용을 올렸다. 뉴스제작1부장은 편집회의에서 상의해보겠다며 오후 2시20분 편집회의에서 8뉴스 기사로 발제했다.


편집회의에선 뉴스제작부국장, 정책사회부장, 국제부장, 경제부장 등 참석자 여럿이 ‘공보과장’은 해수부 입장을 대표한다고 하기엔 걸맞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해당 공무원의 발언 내용은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았다. 보도국장은 “선체조사위가 지연 의혹을 조사한다는 스트레이트를 앞세워 해수부 내에서도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더라는 식으로 발언 녹취를 소화해 제작하자”고 정리했다.


오후 5시12분 조 기자가 기사 초고를 작성해 보도정보시스템 공용기사에 올렸다. 뉴스제작1부장은 조 기사의 기사를 교정해 5시42분 최종 기사 작성을 완료했다. 이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지연되던 인양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 서둘러 진행된 것을 두고 해수부가 그간 권력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습니다’라는 문장이 빠졌다. 대신 ‘부처의 자리와 기구를 늘리는 거래를 후보 측에 시도했음을 암시하는 발언도 합니다’라는 문장이 삽입되며 ‘거래’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제목에도 ‘거래’가 포함됐다.


오후 5시42분부터 7시20분 사이에 조 기자는 교정한 최종 기사를 보고 뉴스제작1부장에게 “거래는 확인된 게 아니다” “제목에서 거래는 빼달라”며 4차례에 걸쳐 기사와 제목 수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뉴스제작1부장은 기사 문장의 주어는 모두 해수부로, 해수부가 거래를 시도하려 했다는 의미이며 제목에서도 거래 뒤에 물음표를 붙여 단정하지 않았다면서 최종 기사를 고칠 이유가 없다고 수정 요청을 거절했다.


오후 6시 전후해 해양수산부를 취재하는 경제부 표 모 기자가 기사에 나오는 공무원이 ‘공보과장’이 아니라 ‘주무관급(6급 이하)’인 것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며 경제부장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오후 6시30분쯤 경제부장은 보도국장을 찾아가 표 기자의 의견을 전달했지만 보도국장은 편집회의에서 발언 녹취를 중요하게 쓰지 않기로 했고, 편집회의 지시대로 기사가 작성됐을 것이라고 생각해 따로 기사를 보지 않았다. 뉴스제작부국장은 방송 전 기사를 보고 ‘거칠다’고 생각했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보도본부장은 큐시트에서 전체 기사를 훑어봤으나 기사의 제목과 내용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결국 문제의 기사는 2일 ‘8뉴스’를 통해 그대로 보도됐다.


보고서는 이 과정에서 △부실한 취재 △부적절한 데스킹 △허술한 게이트키핑 △뉴스 제작 시스템 등 네 부분에 걸쳐 문제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취재에 있어서는 하위직 공무원의 발언 녹취만으로 기사를 쓸 수 없는 만큼 해수부 내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확인하고 교차 검증하는 취재가 필수적인데 이뤄지지 않았고, 해수부에 대한 비판 취지라도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가 거론되는 만큼 후보 측 입장을 취재해 기사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또 데스킹에서도 ‘부적절한 거래가 오갔다’는 식으로 기사 취지와 다르게 읽힐 가능성이 크게 기사가 고쳐졌으며, 게이트키핑 과정에서도 기사 초고가 작성되고 이후 방송되기까지 담당 부장의 상급자인 뉴스제작부국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중 누구 하나 편집회의 취지와 다르게 기사가 교정됐다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출입처 담당기자가 차장과 기사를 논의하고, 다시 부장에게 보고한 후 편집회의에 발제 하는 등의 게이트키핑을 거치는 일반 취재부서와 달리 이번 기사는 편집 등의 고유 업무를 수행하는 뉴스제작1부에서 만들어져 별도의 게이트키핑을 거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보고서는 외부 압력설에 대해선 이 기사의 최초 발제 과정부터 보도가 나가기까지 전 과정을 면밀히 살펴봤으나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거나 악의적인 의도로 단정할 만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한국기자협회 SBS지회가 참여한 가운데 지난 4일부터 14일까지 이뤄졌다. 조사는 SBS 보도본부 보도정보시스템에 남아있는 기록을 확인하고 취재기자와 담당 부장, 보도제작부국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등 해당 기사의 보도라인에 있는 보도책임자들을 대상으로 2회의 면담 조사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진상조사보고서는 SBS 홈페이지 공지사항과 SBS 노동조합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Q&A 전문.


Q) 조 기자는 왜 4월16일에 통화한 내용을 5월2일에 기사로 썼나?
A) 조 기자는 해당 해수부 공무원과 4월16일 이후에도 17, 18, 24일과 5월 2일까지 수차례 통화를 했음. 기사에 쓴 핵심 발언은 4월16일 통화에서 나온 것이나 이후 통화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고 진술. 첫 발제가 4월28일에 이루어진 것은 조 기자가 4월27일 8뉴스에 <3년만에 돌아온 새 청바지> 기사를 쓴 뒤 이후 발제한 것으로 보임. 다음 발제가 5월2일에 이뤄진 것은 선체조사위 시행령이 이날 통과한 걸 확인했기 때문.


Q) 해수부는 해당 공무원이 인터넷뉴스를 보고 말한 것이며 무단 녹취하고 편집해 방송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대로인가?
A) 4월16일에 먼저 전화를 걸어온 것은 해당 공무원임. 첨부한 통화 녹취록을 보면 인터넷 뉴스를 봤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으며 문맥에 맞지 않게 편집해 보도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님. 통화를 동의 받지 않고 녹취한 것은 사실이나 5월2일 보도 전에 조 기자는 해당 공무원과 통화해 보도하겠다고 전했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도록 음성 변조해 방송하는 조건으로 허락 받은 것으로 확인.


Q) 뉴스제작1부장은 왜 편집회의 취지나 기사 초고와 다르게 기사 구성을 바꾸고 제목을 고쳤나?
A) 뉴스제작1부장은 이 기사를 쓰는 이유가 해당 공무원의 발언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내용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발언 내용을 중심으로 기사를 수정했다고 진술함. 공무원 발언에서 문재인 후보가 거론되긴 하지만 이 기사는 해수부를 비판하는 내용이며 “부처와 기구를 늘리는 방향으로 거래를 시도했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 라는 문장에서도 주어는 해수부였다고 해명함. 이 문장을 추가하면서 뉴스 후반부 내용을 기사 제목에 반영했다고 밝힘. 최종 기사가 의도와 다르게 읽힐 가능성이 높았다는 건 뒤늦게 깨달았다고 진술.


Q) 기자의 기사 발제와 부장의 교정 과정에 다른 의도가 있지는 않았나?
A) 조 기자는 해수부가 세월호 인양을 지연했거나 서둘렀다는 의혹을 비판하기 위해 취재하고 기사를 발제했다고 진술. 실제로 조 기자는 그 동안 여러 차례 해수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써왔음. 최초 통화와 기사 발제 시점이 차이가 나는 건 일반 취재부서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업무를 하면서 틈틈이 취재했고 1차 발제가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 뉴스제작1부장은 기사를 더 주목받도록 교정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실수를 했다며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기사를 수정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함. 1차 발제부터 보도가 나가기까지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거나 악의적인 의도로 단정할 만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함.


Q) 이 기사가 여러 단계의 게이트키핑 절차가 있는데도 걸러지지 않고 보도된 이유는?
A) 이 기사를 작성해 출고한 부서는 뉴스제작1부로, 평소엔 SBS 8뉴스 큐시트의 편집과 방송을 담당하는 부서임. 인력 구성 자체가 편집 기능에 집중돼 있어 일반 취재부서와 달리 발제와 기사작성이 일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부서이며, 중간 데스크 역할을 하는 기자도 없는 구조. 특히 일반 취재부서에서 출고된 기사를 최종 게이트키핑하는 역할을 통상 뉴스제작1부에서 수행하는데 뉴스제작1부에서 출고된 기사는 구조상 이 절차가 생략됨. 또 5월2일 대선 후보 마지막 토론 중계로 인해 8뉴스가 한 시간 일찍 19시에 시작된 데다 상급자인 뉴스제작부국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이 편집회의 이후 이 기사를 확인하지 않아 보도의 결함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보도됨. 편집회의 논의과정과 기사 작성 후 방송 전까지 여러 차례 취재원과 정보 신뢰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으며, 게이트키핑 책임 선상의 간부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으나 직무를 태만히 하면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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