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크로키로 '촉'을 기르세요"

이정권 중앙일보 그래픽데스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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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권 중앙일보 그래픽데스크 차장

“마우스와 디지털펜으로 15년 넘게 그림을 그려오던 중 우연히 빈 종이에 연필로 선을 긋는 순간, 연필심 끝이 종이위에 그어지는 약간의 까칠한 긁힘이 손끝에 미세하게 전달되는 순간, 잠들었던 아날로그 감성이 폭발했어요. 연필과 종이만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게 ‘누드크로키’죠.”


연신 누드크로키 자랑에 푹 빠진 이정권 중앙일보 그래픽데스크 기자가 오는 13일 ‘가가의 누드크로키 교실’을 개설한다. 이름은 자신의 별명인 ‘미스터 가가’에서 따왔다. (너무 좋아서) 제정신이 아닌, 미친, 열정적인 등의 뜻을 가진 영어 ‘gaga(가가)’의 의미다. 매년 관련 전시회를 여는 등 5년째 누드크로키와 인연을 이어오며 사내에서도 ‘누드크로키 전문가’로 통하는 그다. 이 기자는 “지난해 말 불현듯 우울증이 찾아오면서 개인 작업실을 꾸리게 됐고, ‘누드크로키 수업을 직접 해볼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고 설명했다.


누드크로키는 취미미술 중에서도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다. ‘누드’라는 말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막상 수업에 참여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짧은 시간에 순간적인 몰입으로 무아지경을 체험하는 매력에 시름도 우울증도 사라진다. 이 기자는 “누드는 완성이 아니라 끝없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며 “세상과 부대끼며 날카로워진 마음을 크로키의 곡선으로 부드럽게 깎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붓을 드는 순간 세상에 혼자라는 느낌이 들어야 작품다운 작품이 나오더라고요. 무엇을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괴로우면서도 행복해요. 극과 극의 접점을 무한 반복하는 느낌이랄까요. 태어날 때는 빈손이었지만 죽을 때는 붓을 들고 죽는 게 소원이에요.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오래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그림을 남기고 싶습니다.”


미술전공을 한 그는 본래 작가가 꿈이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취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미련이 남았지만 신문사를 다니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기쁨이 그보다 컸다. 이 기자는 “부모의 반대, 가정형편 등 환경 때문에 화가의 꿈을 접어야했던 분들이 화실을 찾아오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못다 이룬 화가의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했다.


집중력을 요구받는 취재기자에게도 누드크로키를 추천했다. 이 기자는 “취재를 동물적인 ‘촉’으로 시작하듯, 취재기자들에게 중요한 ‘빠른 촉’을 기르는 힘이 누드크로키에도 있다”며 “우아함, 역동성, 도발적, 섹시함 등 눈앞에 보여지는 포즈, 현장의 핵심을 재빨리 읽어내는 능력을 기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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