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탁정치, 촌탁보도

[글로벌 리포트 | 일본]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최근 2개월간 ‘촌탁’이란 단어가 일본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다. 아베 수상을 지지하는 우익성향의 학교법인 모리모토 학원에 국유지가 헐값에 매각됐다는 스캔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아베 수상과 야당간의 국회 설전에서 등장한 이후 일본 사회 전체로 퍼지고 있다.


일개 학교법인에 국유지를 매각한 것을 국회에서 다루게 된 것은 모리모토 학원의 명예교장이 아베 수상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였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들이 이번 사태를 아키에 스캔들로 명명한 것도 이런 이유다. 야당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싼 가격에 국유지를 매각한 것은 명예 교장으로 있는 아키에 여사의 의향을 관련 공무원들이 촌탁했기 때문이지 않느냐고 아베 수상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촌탁은 일본어로 손타쿠(Sontaku)라고 발음한다. 이와나미 일본어 사전에 의하면 손타쿠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추측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현실은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이런 것을 원하고 있겠구나라고 예측하고 그것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호텔이나 개호(노인 및 병약자 돌봄)와 같은 업종에서는 손님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손타쿠는 필요한 자질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나 교육, 언론 등에서 손타쿠가 벌어지는 경우는 스캔들이나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하기 쉽다. 3월29일자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넷판은 손타쿠를 ‘Sontaku’로 표기하면서, 지시받지 않은 사항을 지레짐작해서 그에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리토모 학원에 대한 국유지 매각을 둘러싼 아키에 스캔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관련 공무원들이 명예 교장을 맡고 있는 수상 부인의 의향을 살핀 것이다. 아키에 부인이 명예 교장으로 있지 않았다면 국유지가 헐값에 매각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국회 청문회에 출석했던 가고이케 야스노리 이사장은 총리 부인으로부터 100만엔의 지원을 받았고, 국유지 매각에 대해서도 총리 부인이 매각 과정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자료를 제시해 청문회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아베 수상은 손타쿠가 없었다고 부정하고 있지만, 어떻게 감정액의 10분의 1의 가격에 국유지가 매각될 수 있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야당은 재무성 공무원의 매각 관련 과정을 기록한 정보를 공개하라고 공세를 펼쳤지만 돌아온 것은 보전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정보를 폐기했다는 관련 부처의 답변뿐이었다.


서비스업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는 손타쿠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는커녕 사회의 건전성, 조직의 독립성을 해치는 병폐로 지목되고 있다. 교육분야의 손타쿠는 외부 자금이나 국가 보조금을 한 푼이라도 더 얻고 싶은 대학 당국에게 정부의 지원 기금의 선정 기준에 대해서 정부의 눈치를 살피게 한다. 교육 당국에 대한 대학의 손타쿠는 정부 입맛에 맞는 대학운영, 연구활동을 해야 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결과적으로 손타쿠는 대학 교육의 다양성, 자율성을 죽이고, 정부가 바라는 방향으로 획일적인 교육이 이뤄지는 사태를 만들기 쉽다.


손타쿠는 상대방의 의향을 과도하게 살피는 데서 나타나는 폐해다. 일본에서 민주당 정권 시절 당시 오자와 간사장의 의향을 측근들이 과도하게 손타쿠 해서 손타쿠 정치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NHK 전 회장인 모미이씨는 NHK 내부에서 회장의 눈치를 살피는 손타쿠가 퍼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언론사 내부에서 벌어지는 손타쿠는 뉴스나 보도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악영향이 적지 않다.


아베 정권이 개헌의지를 분명히 한 2014년부터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지자체의 손타쿠로 인해 시민단체의 호헌집회나 평화 이벤트가 규제를 당하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언론에 대한 정부 비판이나 보수 지지자들로부터의 압력이 거세진 것도 이 시기와 맞물린다.


손타쿠가 횡행하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라고 부르기 힘들다. 2016년도 일본의 언론자유 지수는 72위로 결코 높은 수치는 아니다. 아베 정권에 대한 ‘미디어의 자숙=손타쿠의 결과’이지 않을까. 자민당 내에서도 혹시나 공천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아베 수상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아베 수상도 트럼프 대통령의 의향을 손타쿠 하기 위해서 취임 전에 회담을 가졌다. 손타쿠 사회, 손타쿠 정치, 손타쿠 보도를 비롯해서 ‘손타쿠 ○○’라는 단어의 증식은 일본 사회의 내면을 비추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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