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트바트 뉴스와 위클리 스탠더드

[글로벌 리포트 | 미국]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하늘을 찌를 기세다. 트럼프는 지난 1월20일 취임한 직후 첫 공식 행사로 중앙정보국(CIA)을 방문했다. 트럼프는 그 자리에서 “기자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부정직한 인간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그 이후 CNN, 뉴욕 타임스(NYT) 등 미국 주류 언론을 ‘가짜 뉴스(fake news)’라고 부른다. 트럼프는 지난 2월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차 총회 연설에서 급기야 언론을 ‘국민의 적(enemy of the people)’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막말에 익숙해진 미국 언론도 ‘국민의 적’이라는 말에 다시 한 번 화들짝 놀랐다. 그런 표현은 단순한 막말의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국민의 적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던 인물은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다. 프랑스혁명 당시에도 반대 세력을 처단하는 데 ‘국민의 적’이라는 말이 동원됐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면서 그들을 ‘국민의 적’이라고 불렀다. 옛 소련에서 조셉 스탈린이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반대자를 ‘인민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런 트럼프가 “일부 기자는 정직하다”고 말한다. 그 일부 기자가 속한 언론사는 자신을 지지하는 보수 매체임에 틀림없다. 트럼프 시대를 맞아 미국의 진보 언론이 가는 길은 명확하다. 트럼프가 가짜 뉴스라고 부르는 CNN,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은 눈 딱 감고 ‘트럼프 죽이기’ 경쟁을 하고 있다.


문제는 보수 언론이다. 보수 매체는 미국 보수 진영의 ‘이단아’ 트럼프를 어떻게 다뤄야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특히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폭스뉴스와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보수 매체의 고뇌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가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시청하는 폭스뉴스는 여전히 트럼프의 수호자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WSJ는 지난 3월22일자 ‘대통령의 신뢰성’이라는 사설을 통해 “진실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지 않으면 대다수 미국인은 그를 가짜 대통령이라고 결론 내릴 것”이라고 트럼프를 비판했다.


머독의 언론사들이 좌고우면하는 사이에 보수 매체의 아이콘인 시사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와 ‘대안 우파(alt-right)’의 기관지 ‘브레이트바트 뉴스(Breitbart News)’는 좌표를 명확하게 설정했다.


위클리 스탠더드는 지난 1995년에 머독의 자본으로 설립됐다. 머독은 그러나 2009년에 억만장자 필립 앤슈츠(Philip Anschutz)에게 이 매체를 팔았다. 위클리 스탠더드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네버 트럼프 운동(Never Trump Movement)’의 선봉에 섰다. 이 매체는 트럼프 낙선 운동에 실패하자 이제 트럼프와는 다른 정통 보수 이념과 정책 지키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 잡지는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개입주의와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있다.


이 매체의 편집장 스티븐 헤이즈(Stephen Hayes)는 뉴욕 타임스와 회견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고, 위클리 스탠더드가 제시하는 해법은 진정한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브레이트바트 뉴스는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 전략가 겸 선임고문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이 되면서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배넌이 백악관으로 떠난 뒤에도 브레이트바트 뉴스가 세상을 보는 눈은 간단하다. 트럼프에 유리하면 진실이고, 그에게 불리하면 거짓이다. 뉴욕 타임스는 브레이트바트 뉴스 등의 언론 활동에 대해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사실’보다는 독자의 구미에 맞는 ‘환상’이 더 잘 먹힌다”고 개탄했다.


한국 언론이 박근혜 시대의 종식을 견인한 힘은 ‘이념’이 아니라 ‘진실’을 캐는 기자 정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 뉴스’ 타령만 늘어놓으며 끝내 진실을 외면하다가는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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