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야 할 일, 해서는 안될 일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경제검찰’인 공정위가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근절에 발벗고 나섰다. 재벌 계열사 간 내부거래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규제 대상 기업을 확대하기 위한 법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총수일가 사익편취는 계열사 간 부당지원, 사업기회 제공, 일감 몰아주기 등의 수법을 통해 총수일가가 회사 이익을 빼돌리는 행위로 폐해가 심각하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심화, 부당한 경영세습 수단으로 악용, 중소기업의 사업기회 차단이 대표적이다.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2014년 시행됐지만 지난 3년간 제재 건수가 단 3건에 그쳐, 공정위의 의지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마트와 비비큐에 요청해 닭고기와 치킨의 가격인상을 철회하도록 했다. 서민들이 즐겨먹는 식품인만큼 가격인상은 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마트와 비비큐가 각각 업계 1위라는 점에서 동반인상을 불러올 수도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와 브라질산 닭고기 파문으로 타격을 받은 관련 시장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하지만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정부가 직접 가격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가 아니다. 더욱이 농림식품부는 업체가 말을 안 들으면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 의뢰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구태를 보였다.


정부는 부실기업인 대우조선의 구조조정을 위해 신규 자금공급, 출자전환, 만기연장 등을 포함해 총 6조7000억원 규모의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대우조선이 쓰러지면 종업원, 하청기업, 지역경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실기업은 신도 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사례들은 정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원칙적으로 정부는 시장경제에서 일종의 ‘심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심판은 공정한 규칙을 정하고, 반칙을 엄히 제재하는 게 핵심 기능이다. 정부가 공정한 심판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시장경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부는 공정한 규칙을 만들지 않았고, 그나마 있는 규칙도 제대로 집행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공정한 심판 역할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현실에서는 공정한 규칙이 무엇이냐부터가 논란의 대상이다. 2월 국회에서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경제개혁의 핵심과제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포함한 상법 개정을 추진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재벌 정경유착 사태를 계기로 총수일가의 전횡을 막고 감시와 견제를 강화하기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공정한 시장경제 구현을 위해 시급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경영계와 자유한국당은 기업지배구조 관련 규제가 이미 선진국 수준이라며 동일한 시장경제 원칙을 내세워 반대했다.


규제방식의 선택도 간단치 않다. 때로는 정부가 직접 규제하는 방식보다 시장을 통해 규율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시장의 이해관계가 갈수록 복잡해지는데 인력과 예산의 제약을 받는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고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통적으로 정부 역할을 중시하면 진보이고, 시장 역할을 중시하면 보수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이 강했다. 하지만 시장을 통한 규율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시장만능과는 분명 다르다. 오히려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재조정하는 것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례로 대기업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국민이나 중소기업이 정부에 의존하는 대신 사법시스템을 통해 직접 구제받을 수 있도록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이중대표소송제 등과 같은 시장친화적인 피해구제 제도를 서둘러 도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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