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찬 따는 순간 리베이트 떠올린 내가 부끄러웠다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2부)저널리즘 기본과 멀어진 이유 ②자본권력에 휘둘리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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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비판기사 발제해도 ‘킬’ 되거나  축소되기 일쑤
젊은 기자들-데스크 온도 차…연차 많을수록 수긍 분위기
신문·프로그램 판매 수입보다 광고·협찬 비중이 훨씬 커
디지털 퍼스트·콘텐츠 유료화 등  수익 다각화 전략도 무용지물
자본권력 감시·견제 못하면서 독자들의 언론 신뢰도 추락
양질의 콘텐츠 생산으로 대기업 의존도 줄여나가야



“삼성이라 못 썼냐고? 그렇게 ‘돌직구’로 물어보면 어떡하나. 삼성 출입했던 기자로서 ‘그렇다’고 내 입으론 말 못하겠다. 근데 다 알지 않냐. 기업들 기사 톤다운 부탁하거나 압력 넣는 거 일상적인 일이다.”


‘일상적’이라는 단어는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대기업의 심기를 살피느라 발제된 기사가 ‘킬’ 되는 일이, 기사의 제목이나 단수가 조정되는 일이, 나간 기사를 수정하거나 내리는 일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기자들에게는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직위의 차이도 없었다. 평기자부터 국장까지 뉴스룸 구성원 대부분이 자본권력의 압박을 두루 경험하고 있었다. 이들은 언론사 경영 상황이 열악해지면서 대기업 광고주들이 뉴스의 방향을 좌우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일러스트=성철수 화백

사실상 자본권력은 정치권력보다 더 촘촘하고 교묘하게 오랜 기간 언론을 휘둘러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의 자유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매체 간 경쟁이 심화되며 광고를 제공하는 재벌과 대기업 등 자본의 영향력이 확대됐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자본권력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졌음은 물론이다. 2005년 대기업 총수들과 만난 후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언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종합일간지 A기자는 “저울의 추가 언론이 아닌 자본으로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그러한 위기를 언론 스스로가 몰고 왔다는 매서운 비판도 존재한다. 

“쓰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
“기업 비판 기사는 발제를 해도 종종 ‘킬’ 된다.” 건설사를 맡고 있는 경제지 B기자는 “회사 정책이 그런 것 같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B기자는 “만약 이번 주에 건설사 특집이 예정돼 있으면 최소한 해당 건설사를 비판하는 기사들은 못 쓴다고 보면 된다”며 “꼭 특집이 아니더라도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재벌, 대기업 기사는 거의 못 쓴다. 특히 삼성은 기자들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했다.


기사를 못 쓰는 이유는 해당 기업들의 광고비가 언론사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B기자는 “비판 기사가 나갔는데 해당 기업이 연락 와서 ‘광고 연간계약 앞두고 있는데 서운하다’는 식으로 대놓고 말한다”며 “그러면 톤 조절을 하기도 하고 아예 기사를 내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것 가지고 데스크랑 싸우는 기자도 있는데 연차가 올라갈수록 수긍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C기자는 “지난해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기사 역시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7월21일 뉴스타파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을 보도해 파문을 일으켰지만 이른바 ‘주류’ 매체들은 이 보도를 받지 않았다. 신문 지면에 관련 기사를 게재한 매체는 한겨레가 유일했고 KBS는 자정 무렵 관련 기사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삭제한 후 다음날 오전에 기사를 실었다. 주류 매체들은 삼성그룹이 22일 “회장의 사생활”이라며 삼성그룹과 무관하다고 해명하자 그때서야 삼성의 해명을 담은 기사를 내보냈다. C기자는 “내부에서 ‘너무 개인적인 얘기다’ ‘이건희는 이미 죽은 권력이라 기사 가치가 떨어진다’는 등 의견이 분분한 것도 있었지만 삼성에서 받는 광고도 영향을 끼쳤다”면서 “젊은 기자들과 데스크들의 생각이 많이 달랐다. 특히 온라인뉴스팀은 인터넷 매체들이 뉴스타파를 받아쓰는 와중에 윗선에서 ‘삼성 관련 기사는 확인이 될 때까지 쓰지 마라’는 지시가 떨어져 매우 난감해했다”고 전했다.

‘철 없는 기자’가 되지 않으려면
기자들은 언론사의 주 수입원이 광고·협찬인 상황에서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웅주의’에 도취돼 있다거나 ‘배신자’ 혹은 ‘이상주의자’라는 얘기를 듣는다고 했다. 경제지 D기자는 “광고시장이 죽어가는 와중에 새로운 수익사업을 발굴한다며 포럼 등 여러 행사를 벌이고 있지만 그것 역시 협찬으로 귀결된다. 결국 기자들이 광고주 눈치를 보며 손을 벌리게 되는 구조”라면서 “그런 구조 속에 기업 비판 기사가 나올 수 있나. 기자가 직접 광고나 협찬을 유치하지 않더라도 데스크가 다음번 광고, 행사를 위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D기자는 “나 역시 매번 자기검열을 한다”면서 “삼성 등 큰 손들이 싫어할 기사를 애초에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비판 기사 10개 쓸 것 있으면 3~4개 쓰고 그것도 비판 수위를 조절한다. 알아서 기는 것”이라며 “반면 대기업이 좋아할만한 기사는 적극적으로 쓴다. 비판이든 홍보든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거의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광고총연합회 광고정보센터 매거진이 닐슨코리아 자료를 받아 공개한 지난해 100대 광고주별 매체비 현황을 보면 이들 기업이 TV, 신문, 잡지 등에 집행하는 한 해 광고비는 약 150억~2000억원 수준이다. 삼성전자가 2002억원으로 가장 많고 LG전자 1240억원, 현대자동차 814억원, KT 807억원, 기아자동차 525억원 순이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지역MBC에서 일한 박대용 뉴스타파 기자는 “뉴스타파로 오기 전엔 스스로 보도를 검열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했다. 기자들이 수입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기 때문이었다”며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기사를 내보내려고 하면 안에서는 배신자가 됐고, 주위에서 그런 기자를 ‘철이 없는 기자’로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요즘엔 아예 협찬이나 광고를 성과로 매겨 우수사원으로 표창을 하거나 리베이트를 주는 식으로 기자를 영업사원으로 길들이고 있다”며 “최근에 만난 한 기자는 리베이트가 얼마 들어올지 속으로 계산하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고발 전문 기자였는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광고주와 사회 감시 사이 줄타기
신문 제작 현장의 책임자인 동시에 경영진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요구받는 편집국장은 이런 딜레마의 정점에 서 있다. 직·간접적인 광고 및 협찬 요구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기사 제목이나 단수 조정을 요청하는 광고주의 압력을 상시적으로 받으면서도 언론의 사회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충재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며 광고와 관련된 압력이나 협조 요청을 많이 받았다”며 대표적 사례로 최태원 SK회장의 계열사 자금 횡령 보도를 들었다. 한국일보는 2011년 11월8일 1면 톱기사로 <최태원 선물투자에 회사돈 500억 유용>이란 제목의 단독기사를 실었다. 검찰이 최 회장이 SK그룹 계열사 자금을 선물투자에 동원한 정황을 포착했으며 최 회장이 지시한 사실이 밝혀지면 횡령혐의로 처벌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였다. 이 위원은 “우리 법조기자들이 특종을 했는데 보도를 하고 나서 안팎에서 많은 압력이 있었다. 후속보도를 할 때마다 경영진 쪽에서 우려를 표명했고 특히 광고 파트 쪽에서 보도를 하지 말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SK에서도 협찬이나 광고를 축소한다고 해서 상당히 힘들었다. 아예 모른 척 할 수도 없어 기사 제목을 조금 손본다든지 배치를 줄인다든지 최대한 할 바를 했는데 위에서 보기엔 탐탁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2012년 4월 ‘광고 매출 부진’을 이유로 11개월 만에 편집국장에서 경질됐다.


2015년 그가 쓴 석사학위 논문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의 편집권에 대한 인식 연구’ 논문에도 광고와 협찬을 따내기 위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기업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져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거나,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광고주 관련 기사 처리 문제로 시달렸다고 토로하는 편집국장들이 등장한다. 연초가 되면 사장과 함께 대기업들을 돌아다니며 광고와 협찬을 부탁하는 인사를 다녔다는 편집국장들도 여러 명 있었다고 논문은 전하고 있다.


이 위원은 “자본에 대한 예속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방지나 소규모 인터넷 매체나 대규모 중앙일간지나 똑같다”면서 “정치권력과의 유착은 공영방송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완화됐지만 자본권력에 대한 의존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권력만의 문제인가
한편으론 이런 상황이 ‘예고된 재앙’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디어가 다양화되고 주류 언론의 광고 효과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언론사들이 예전과 같은 광고 몫을 달라고 요구하면 광고주 입장에선 일종의 ‘거래’를 하기가 좀 더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곽정수 한겨레 선임기자는 “최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언론사들에 비상이 걸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과 같은 현상은 자본권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언론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언론이 재벌 탓만 할 게 아니라 먼저 재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5년 11월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4대 재벌의 언론사 광고 지배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6개 종합일간지의 매출액 중 대부분이 광고수입이다. 이 보고서는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6개 신문사의 감사보고서를 토대로 2014년 매출액 중 신문수입(종이신문 판매수입+광고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했는데, 이에 따르면 6개 신문사의 신문수입은 평균 82.52%이고 그 중에서도 종이신문 판매수입은 비중이 높지 않았다. 또 신문수입을 제외한 나머지 매출은 외간출판, 문화사업 등의 사업수입과 분양수입 등으로 채워졌는데 이들은 비중이 크지 않거나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수입이어서 안정적인 재정기반이 되기 어려웠다.



방송사 역시 프로그램 판매 등 자체 수입원보다 광고·협찬의 비중이 컸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에 따르면 2014년 SBS의 매출액 중 광고·협찬 비율은 66.06%였고 MBC가 62.80%였다. 종합편성채널사의 경우 더욱 심해 2014년 매출액 중 광고와 협찬 비율이 MBN 83.04%, JTBC 78.78%, TV조선 77.79%, 채널A 72.78%였다.


곽정수 기자는 “한국 언론은 자본권력에 대한 의존도를 떨어트리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도 않는다”면서 “남 탓할 게 아니라 대응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망한 공룡처럼 언론도 공룡 꼴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안은 있나
하지만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수익을 다각화한다며 언론사들이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어떤 언론사도 제대로 된 대체수입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를 따라 우후죽순 시도한 디지털 퍼스트 전략이나 콘텐츠 유료화 역시 수익적 측면에서는 마땅한 돌파구가 되지 못 했다.


박대용 기자는 “모든 매체들에 신사업기획단이 있지만 잘 안 되고 있다”며 “네이티브 애드나 페이스북 전략 등도 뉴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만큼의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프로젝트성으로 끝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광고주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원장은 “재벌의 광고 지배력을 벗어나려면 중견그룹과 중소기업 광고를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며 “편집국과 광고국에 중견·중소기업 전담 조직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수의 기자들은 궁극적인 해답이 콘텐츠에 있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E기자는 “자본권력을 성역화해 온 언론의 원죄가 드러나고 있다. 언론이 자본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 해 독자의 신뢰를 저버렸고 이로 인해 언론에 대한 다양한 공적 성격의 지원조차 요구하지 못하게 됐다”며 “결국 답은 콘텐츠밖에 없다. 당장의 해결책은 보이지 않지만 ‘콘텐츠가 좋으면 전체 독자는 줄지 않는다’는 몇 가지 확인된 사실만을 붙잡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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