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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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다음날 열린 20차 촛불집회. ‘공정방송’ 파업을 이끌다 해고된 이용마 MBC 해직기자의 연설이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사회적 적폐를 청산하는 출발점은 검찰과 언론을 개혁하는 것”이라며, 검찰과 언론이 제 역할과 본분을 다했더라면 시민들이 추운 겨울, 차가운 광장에서 다섯 달 가까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언론이 바로 서야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 검찰과 언론이 바로 서는 것이 재벌, 관료, 노동의 문제 등 모든 사회적 적폐를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고 강조했다. 암 투병의 고난함 때문인지 여윈 모습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맑았고 메시지의 울림은 컸다.


아직 지난한 사회적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는 국민적 저항을 통해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현직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이 저항 과정에서 누구도 죽지 않았고, 아무도 피를 흘리지 않았다. 헌법에서 중대하게 이탈한 권력을 국민의 희생 없이 중지시킬 수 있는 제도적 민주주의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가동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 정도나마 ‘바로 서기까지’, 언론의 역할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여러 말로 다 할 수 없을 고난 속에서도 집요하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를 파고든 기자들이 있었다. 물론 양대 공영방송과 같이 마지막까지 권력자의 입장을 집요하게 편들며 의혹의 본질을 ‘물타기’ 하려는 언론이 있었고, 탄핵심판 막바지에 태극기집회로 대변되는 극우 여론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보수 언론의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그래도 다수의 언론이 마지막까지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해 냉정함을 유지했고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바꿔 말하면, 우리 사회가 앞서 ‘비정상화’ 되기까지 언론의 책임이 컸다는 이야기도 된다. 언론이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가 헌법을 중대 위반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국민 대부분이 “이게 나라냐”를 외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일차적으로는 파면된 권력자의 잘못이 크다. 헌재가 결정문에서도 지적했듯이 지난 2014년 세계일보가 처음으로 비선 실세 의혹을 보도했을 때 이 권력자는 모든 의혹이 거짓이고 청와대의 문건 유출이 국기 문란이라고 비판하며 비선 실세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그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 언론 등 민간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언론은 책임을 면피할 수 있는가? 혹시 서슬이 퍼런 권력에 눌려 눈치를 보고 자기검열 모드로 되돌아가진 않았나? 동료 언론인이 권력 핵심부를 취재하다 탄압받을 때 그와 연대하기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되뇌며 뒷짐 지고 있진 않았나? 동료 기자들이 힘겹게 길어 올린 사실관계의 조각은 짐짓 평가절하하면서 권력의 해명과 설명을 보다 신뢰하고 권력의 입장을 재생산해 온 것은 아닌가? 뼈아프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흔히 기자는 ‘알려주는 것’보다 ‘알려주지 않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고들 한다. 정치권력이든 자본권력이든 힘을 가진 누군가가 ‘알리려 하는 정보’보다는 ‘그들이 알리지 않으려 하는 정보’가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그것을 증명했다. 동시에 한편으로 기자는 ‘알리려 하는 정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힘을 갖지 못한,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에 충실할 때 기자는 바로 설 수 있다. 기자가 바로 서면 언론이 바로 선다. 언론이 바로 서면 이 나라가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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