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이끌었지만 국정농단 공범 비판도

<박근혜 탄핵과 언론의 공과>
지나친 보도경쟁 때문에
핵심사안 비켜가기 일쑤
기계적 중립으로 국론분열
촛불민심 되새기며 반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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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기까지 언론이 마중물 역할을 했다.
하지만 초유의 국정농단에도 박근혜 정부가 지난 4년간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이 책무를 방기했기 때문이다.


언론계 스스로가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마저 이념 논리로 재단하면서 논쟁으로 전락시켰다. 권력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도구로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이념 프레임’을 매번 꺼내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탄핵심판 선고가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열리고 있는 모습. (뉴시스)

우리 언론이 박근혜 정부 출범에서부터 탄핵에 이르기까지 어떤 역할을 했고, 무엇을 되돌아 봐야 하는 걸까.
‘불통’의 이미지는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 정부를 향해 쓴 소리를 하는 언론에 대해선 재갈을 물리고 ‘전략적 봉쇄소송’을 통해 확산을 막았다. 실제로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청와대가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건수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해도 17건이 넘는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을 막지 못한 데 따른 책임으로부터 언론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언론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대통령의 국민대담화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올라온 지난해 11월4일 2차 대국민담화까지 이어졌고, 기자들은 여전히 들러리만 섰다.


질문 내용 등을 항상 청와대와 사전 조율, 정해진 시나리오대로만 질문하고 보충질문을 할 수 없는 게 청와대 출입기자단 시스템이라 해도 국민의 알권리를 저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를 출입했던 한 기자는 “KBS, MBC는 노조가 강해 청와대와의 갈등이 표면화됐지만 나머지 언론사는 정부 눈치 탓에 제대로 보도를 하지 못해도 문제 제기가 힘든 구조”라며 “직무유기한 부분도 있지만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다보니 개인기로 뚫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9일 청와대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제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그렇다고 지난 정부의 적폐 청산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면마다 기자정신이 발휘됐지만 이를 떠받쳐 줄 언론계의 자양분이 부족했다.


실제로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보도’(2014년 11월28일자)로 국정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언론계에 뿌리 깊게 박힌 받기쓰기 관행 탓에 여론의 흐름을 타지 못했다.


정윤회 문건보도에서 청와대나 의혹 당사자들이 보도 내용을 부인할 때마다 한겨레 등이 반박하는 보도를 내면서 의혹제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언론보도는 비선개입 실체보다는 문건 유출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그나마 지난해 하반기부터 TV조선, 한겨레, JTBC, 경향 등의 보도 덕에 언론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언론계 자성의 목소리가 잇달아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언론계에 뿌리 깊게 박힌 적폐 청산을 위한 길은 여전히 멀다는 게 언론계의 공통 반응이다. 실체적 진실을 캐내기 위한 경쟁 속에서도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나친 보도 경쟁 탓에 핵심사안과 동떨어진 선정적이거나 지엽적인 문제들이 많이 다뤄졌고, 합리적 정황이나 근거 없이 주변인의 전언을 가지고 쏟아내는 기사가 범람했다.


한 신문사 정치부 출신의 고위 간부는 “태블릿PC 이후 우리 언론이 잘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역으로 생각하면 본연의 역할을 그동안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실체적 진실 접근에 앞서 ‘자사 이기주의’를 우선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핵반대 입장마저 공방이나 양비론의 틀에 꿰맞췄는지 언론 스스로 자문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안마저 기계적 중립의 틀 안에 넣으면서 국론분열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움직임이 시청률이나 신문부수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면 언론은 또다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세월호 사태 당시 ‘기레기’로 불렸던 이유와 촛불민심이 언론에 지지와 응원을 보냈던 이유를 되새겨야 한다는 게 언론계 중론이다.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일부 언론이 ‘수구 친박단체’의 탄핵반대 집회마저 이분법적으로 다루면서 탄핵을 가지고도 많은 국민들이 마음을 졸였다”며 “하지만 국민들의 열망 위에 광고탄압을 받으면서도 비판 목소리를 유지해 온 언론과 검찰, 특검 등이 제 역할을 했기 때문에 탄핵이 가능했다. 또한 이들이 자기 역할을 할 때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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