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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이 없는 ‘공영방송’…“MBC 기자라고 말하고 싶어요”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2부)저널리즘 기본과 멀어진 이유 ①권력에 좌지우지되는 공영방송

최승영 기자2017.03.14 21:43:56

현장과 동떨어진 보도 나올 때 왜 KBS에 들어왔나 생각해요
KBS에 대해 0.1% 관심 없어…압력 가하는 간부들 청산해야
MBC, ‘일베’와 코드 같이해…경영진, 회사 미래가치 손상
남편이 해직되던 2008년 10월 생각하면 여전히 모골이 송연
자유 빼앗긴 공영방송 기자들, 유신독재와 전혀 다르지 않아


“(…)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 삶까지 솎아 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그날’ 중 일부)


공영언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좇는 언론. “거짓말마요.” “대통령, 정부여당 눈치만 보잖아요.” 시민들은 믿지 않는다. 공영언론을 믿지 못한다. 그곳 기자들조차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쫓겨났고, 나머진 부끄러워하며 버틴다. 체념한 채 떠난다. 누군가는 가까이서, 멀리서 그런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기자가 딛고 설 땅은 조용히 무너져 내린 지 오래. 일군의 기자들만 그 폐허 속에서 싸우고 있다. 뉴스룸에서 자기 삶을 솎아내고 자기 하늘을 무너뜨렸다고 고백하는 이들. 감히 그 병을 감각하고 말하는 이들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광장에 나가보셨어요, 선배?”
“KBS 인기 없어요. 왜 물어보세요. 그냥 가세요.”
참 서러웠어요, 선배. 지금도 울컥해요. 촛불집회를 취재하러 광장에 나갔을 때, 어떤 분이 어깨를 툭툭 치며 말씀하신 겁니다. 많은 분들이 면박을 줬어요. 사다리를 차고 카메라에 침을 뱉는 분도 있었다고 해요. 20○○년 ○월 입사한 막내급 제 탓은 아닌 거 같은데 전 거기서 그냥 KBS 기자일 뿐이었어요. 한 번만 광장에 나와 보셨으면 했는데, 일이 그렇게 진행이 안되네요. 너무 바쁘셔서 그런 거겠죠.


▲KBS 구성원들은 지난달 28일 하루 총파업을 실시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여의도 KBS 신관 로비에서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결의대회를 하는 모습.

왜 KBS에 지원했더라, 부쩍 이런 생각을 합니다. 국민이 주인인 회사니까 성역 없이 자유롭게 비판기사를 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기대치가 바닥으로 내려가는 데는 입사하고 한 달이 안 걸렸어요. “내가 생각한 대로 멘트 받아와”라는 취재지시, 이행 못했을 때 돌아오는 “무능력하다. 열심히 안 한다”는 야단. 어느 순간 보니 제가 취재원한테 멘트를 유도하고 있더라고요. 타사 동기는 말이 안 된대요. “내 이름으로 나가는 건 내 책임이잖아.” 아, 그게 다르구나. 우린 토를 달지 못하는데, 문제제기조차 없는데. 난 그냥 직장인인가 싶었어요.


동기들끼리 모이면 ‘패배감’을 얘기해요. “그 태블릿PC를 우리가 가져왔다면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겠지”란 말도 합니다. 뒤늦게 꾸린 TF에서 힘들게 가져온 단독이 며칠 미뤄지다가 타사에서 먼저 나가버리고 취재 선배도, TF도 속상해했던 일이 생생해요. 데스크의 정치라인과 노선에 따라 지연되거나 원고가 바뀌는 모습을 보면 내가 시청자일 때 만난 뉴스가 저런 거였나 싶어져요. 제일 학을 뗀 건 정연욱 선배를 제주도로 발령 낸 거였어요. 이런 분위기가 보도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까요? 이대로 밤 8시 대로 가면 우리 뉴스는 경쟁력이 있을까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런 걸까요?


어떤 선배는 “미안하다”고 하세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좋았다 나빴다는 반복된다고 해요. 선배들도 힘든 거 압니다. 아무리 정치 보도가 이상하게 나가도 선배들이 데스크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압니다. 다만 실질적으로 저흴 좀 더 다독여주고 가르쳐 주셨으면 해요. 저흰 어떤 자부심도 없이 굴림만 당하는 KBS의 기자거든요.

최문호 기자는 왜 KBS를 떠났나
후배들은 왜 나가냐고 물었다. 바뀔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일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나이를 생각하면 내 기자로서 경력은 앞으로 5년이라고 생각했다. 한직에서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며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나머지 시간을 온전히 기자로 살고 싶었다. 안락하겠지만 자존감 없는 삶을 살고 싶진 않았다. 지난해 3월 사직서를 낸 이유다. 나는 KBS기자였다.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스카우트빌딩 강당에서 비상총회 및 대토론회를 연 모습.

KBS 기자로서 만들었던 ‘훈장’이 최근 ‘2016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사표를 낸 결정적인 계기가 된 프로그램이다. 공영방송 KBS에 경종을 울린다는 내용이 수상사유로 적시됐다. 씁쓸했다. 돌이켜보면 서훈정보를 얻기 위한 행정자치부와의 2년 간 소송은 쉬운 파트였다. 기약 없이 방송이 미뤄졌고, 돌연 인사가 났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가 담긴 프로그램 방영을 두고 사장선임 시기 KBS가 청와대 눈치를 본다는 얘기도 나왔다. 결국 KBS에선 2부작 중 1부(‘간첩과 훈장’)만 전파를 탔다.


나는 ‘훈장’을 내보내야만 했다. 제작 자율성 침해, 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KBS 안팎이 들끓게하고, 난도질 당할 걸 알면서도 데스크 지시를 다 받아들이겠다고, 그래도 방송을 해야한다고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속죄. 취재과정에서 만난 1970~80년대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봤다면 그 가족들은 KBS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KBS가 나쁘다고 하니 모두가 그렇게 봤다고, 우리가 악랄하게 보도했다고. 부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었다. KBS를 대표할 순 없지만 후배로서 선배들이 한 짓을 사과했다. 만날 때마다 그랬다. 방송은 속죄의 약속이었다.


목요일 사표를 내고, 금요일 짐을 싸서 나왔다. 간부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다. 정을 떼려고 했다. 예정된 주말 근무를 어찌 할 거냐는 전화가 왔다. KBS기자 20년 생활의 종지부는 그랬다. 새 보금자리 ‘뉴스타파’에서 나는 큰 책임감을 느낀다. 탄핵 보도에 매달렸고, 데이터팀 에디터로 기획에 바쁘다. KBS에 대해선 0.1%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가끔씩 KBS뉴스에 대한 평가를 부탁받을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아진다. 제대로 된 환경이었으면 저렇게 안 할 기자들인데…저렇게 하도록 유·무형의 압력을 가하는 간부들, 한 줌밖에 안 되는 부역자들을 청산해야 한다. KBS는 그들에게 맡겨두기엔 너무나 중요하고, 잘 돼야할 책임이 있어서다.

보도 못하는 MBC 기자 
저는 공영방송 MBC의 기자입니다. 기자인데 보도를 못한 지는 몇 년 됐습니다. 2012년 170일 파업이 끝나고 이후 잠깐 리포트를 한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보내는 대로 이런저런 부서를 떠돌다가 지금은 보도국 언저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이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예 보도국 밖이면 처음엔 속상해도 일상에서 불편하진 않을 텐데, 계속 뉴스 주변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위치면 더 마음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잖아요.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은 지난달 24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 앞에서 김장겸 사장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섰다. (언론노조 MBC본부)

가끔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기자들이 기사를 잘 써주면 그런 생각을 안 했을 거 같은데, 수준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제대로 해봤으면 싶습니다. 제가 이런데 후배 기자들은 어쩌겠나 싶어지기도 합니다. 태반이 계약직·연봉직이라고 하는 경력기자들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더 많은 나쁜 뉴스를 만든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요.


날이 갈수록 마음에 빚이 쌓여갑니다. 보도에 별 관여를 못하는 입장인데도 MBC가 하루하루 망가진 보도를 내는 걸 볼 때마다 그걸 못 막는다는 게 부채로 남습니다. 저도 MBC기자잖아요.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궁극적인 사고원인이나 문제점을 지적 못했다는 건 둘째 치고, 반인륜적인 보도까지 했다는 게 여전히 마음에 남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편파보도가 문제됐을지언정 재난 시 피해자에 대한 인륜적 지향은 분명했던 걸 기억하거든요.


아무래도 정상은 아닌 회사입니다. 구멍가게 대표라도 회사를 안정적으로 번영시키는 게 최선의 의무지 않습니까. 최근 사장들은 MBC의 미래가치를 손상시키며 자신들의 존립기간을 확대시켜왔습니다. 기업논리조차 무시하는 핵심 수뇌부는 무려 ‘일베’와 코드를 같이합니다. 정치적 편향은 물론 여성비하, 지역차별, 반인륜에 심취한 바로 그 그룹 말입니다.


인터뷰 중 기자가 제게 물었습니다. 이 모든 걸 얘기하는데 당사자가 아닌 논평자인 거 같답니다. 어떤 후배는 제가 ‘멘탈 갑’이라고 하던데 그런 게 아닙니다. 죄책감입니다. MBC가 지금 내놓는 결과물도 우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분명 저들은 문제지만 자기 연민에 빠지기보다, 당장 누구 탓을 하기보다, 우리 기자들이 반성할 게 아직 많다고 전 생각하거든요. 저는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

“YTN 해직기자 아내입니다”
탁영희.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 세 아이의 엄마다. ‘조승호’라고 써서 휴대폰 번호를 입력했다가 누가 남편번호를 그렇게 적냐는 동료들 타박에 ‘내편’이라고 고쳐 썼다. 나는 YTN해직기자의 아내다.


▲조승호, 노종면, 현덕수 YTN 해직기자(왼쪽부터)가 지난해 12월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아 촛불시위에 나선 모습. (언론노조 YTN지부)

8년. ‘내편’이 해직된 기간이다. ‘기자’, ‘경찰’이랑은 결혼하지 말라는 부모님 말을 듣지 않아서였을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특히 폭 빠져 일하는 스타일의 사람을 집에 두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이 남자는 집에 둬선 안 되겠다’ 싶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다행히 요즘은 노종면 기자의 ‘일파만파’ 일을 거들고 있다. 방송기자연합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도 맡는다. 다시 감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내편’에게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


2008년 10월을 생각하면 여전히 모골이 송연하다. 그날 화가 났던 것 같다. 출근을 하며 누구 하나 건드려만 보라지 별렀다. 남편의 해직 얘기에 긴장이 됐다. 내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구나 싶었다.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슬픔에 빠지지 않으려고 더 일에 매진했다. 무리를 했을까. 2010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회복했다. 천운이었다. 불편한 곳 없이 나아 복직했다. 집안일에 젬병인 ‘내편’이 두 달 동안 옆을 지켜줬다. 나를 수발했다. 당신도 경력의 허리쯤 왔을 때 잘렸는데, 나는 이렇게 쓰러졌네. 매너리즘에 빠질 땐데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거 같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8대2의 비율이 있는데 양분해서 똑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면 안 되지.” “저 기자는 당최 무슨 의도인 거야.” 내가 이런다. YTN은 잘 안 보게 된다. 얼마 전 광장에서는 YTN 기자가 수모를 겪고 있었다. ‘내편’은 그 기자를 데려가고, 나는 시비를 걸던 분과 맞섰다. 사정 모르는 동료는 “YTN 꺼져”라고 외쳤다. 부끄러웠다. 촛불시민이 지켜주겠다고, 종이학 천 마리씩을 접어 선물하던 ‘윤택남(YTN)’은 지금 어디 가 있나. 대통령 특보단장을 하던 사람이 언론사 사장이 되는 걸 막겠다는 게 틀린 일이었나.


먼훗날 퇴임하면 내 고향인 제주로 내려가기로 했다. 복직이 본인들의 숙명인 것처럼 도와준 YTN노조원들에게 방 하나는 언제고 내주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큰 애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된 기간. 어느덧 가족을 위로할 만큼 컸다. 방송이나 영화 쪽 일을 해보고 싶단다.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며 우리를 되돌아봤다. 많이 울었다. 교사의 일과 기자는 크게 다르지 않다. 교사는 교과서에, 기자는 기자실에 길들여진다. 1996년 물건 나르다가 점퍼 하나 걸치고 나온 것 같은 복장으로 처음 만난 그 사람은 한결 같다. 애 아빠로서, 남편으로서는 완벽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조승호 ‘기자’를 존경한다.

김종철 “언론탄압 교활해져”
1975년 3월17일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기자·피디·아나운서 160여명이 사측이 동원한 폭력배들에게 쫓겨나며 결성된 게 동아투위였습니다. 동아투위의 투쟁이 곧 42주년이 되죠. 옥고, 고문 후유증, 재취업 불가에 따른 생활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죠.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그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113명 중 26명이 세상을 떠나고 87명이 남았습니다.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은 지난달 3일 서울 마포구 상암MBC 사옥 로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언론노조 MBC본부)

지금 공영방송에서 탄압받는, 언론인 후배들이 겪는 고통의 본질은 동아투위가 겪은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직능을 다 하지 못하고, 그렇게 할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상황이죠. 안타까운 정도를 넘어 비통하죠. 오히려 박정희 정권 때는 아주 단순했다면, 지금은 유신독재 시대보다 언론탄압이 훨씬 교활해졌죠. 특히 MBC는 최악의 상탭니다. 1·2심에서 승소해도 다시 출근을 못하게 하는 일들이 저질러지고, 그 와중에 청와대 부역자를 새 사장으로 앉혔어요. 이용마 기자가 11일 20차 촛불집회에서 착잡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 검찰과 언론개혁이 제일 먼저 이뤄져야 한다, 공영방송 사장과 검찰총장은 국민선거로 뽑아야 한다고 말한 데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물론 언론인들의 힘만으로 부족할 수 있죠. 자유한국당이 온갖 수단을 다해 막고 있는 ‘언론장악 방지법’을 국회가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죠. 만일 야당이 대선에 몰두한 나머지 이를 불가능하다거나 사소하다고 봤다면 정말 엄중한 비판을 받아야 되죠.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을 하든 언론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해요.


KBS와 MBC언론인들에게 지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도 지치지 않았다면 과분한 말이죠. 감옥도 3~4번 가고, 언론사 경영도 해봤지만 견디게 해준 건 어떤 신념이었죠. 내겐 민주화와 민족통일의 일꾼이 되겠다는 거였어요. 역사적 전환기에 있으니까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청와대 방송을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돌리기 위해 치열하게 운동해야해요.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이 기사는 공영언론 기자와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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