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존재가치를 입증할 것인가

[언론 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

신문과 방송 뉴스를 보기 괴롭다. 어느 결엔가 헌법을 수호하자는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자는 ‘반탄집회’는 같은 반열이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80%에 달하지만, 언론은 두 집회를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진영논리로 뭉개졌다. 이것조차 문화적 상대주의인가.


친박세력이 ‘군대여 일어나라’거나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고 발언하면 고스란히 인용 보도하는 것이 ‘객관적 보도’인가. 박 대통령측 법률대리인 김평우 변호사가 ‘내란’을 언급하거나 헌재 심판 불복을 시사해도 인용 보도하는 게 공정한 보도인가.


몇 개월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탄핵정국’의 시작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5일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사과하면서 시작됐다. 그날 박 대통령은 처음으로 헌법에서 규정한대로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시인한 것이다. 그런 탓에 박 대통령 지지율이 4~5%로 추락한 것이다. 국회와 정치권은 하야하라고 권유했지만, 청와대는 ‘탄핵하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가 지난해 12월9일 국회의원 234명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국회의원도 동참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것이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78%의 여론이 반영된 결과였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한다. 법(法)을 파자하면 물(水)이 흐른다(去)는 뜻이다. 입법부가 민심의 흐름을 받든 것이다.


지난 6일 박영수 특검의 수사결과도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이익의 공동체로서 최씨의 요구를 지원하는 데 대통령직과 청와대를 적극 활용했다. 재벌과 거래한 정경유착도 드러났다. 박 대통령이 ‘사심없이 국가를 위해 일했다’거나 ‘국가와 결혼했다’는 발언들은 공허한 레토릭이었던 셈이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두 축은 법치주의와 효율적인 정부이다. 박근혜 정부는 두 축을 모두 무너뜨렸다.


국민은 헌재가 탄핵심판을 인용할지 기각할지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 80%는 탄핵심판이 인용된다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고뇌할 헌재를 위해 1796년 제2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존 애덤스가 1818년에 쓴 글을 소개하겠다. 애덤스 대통령은 영국의 식민지배에 저항해 미국 독립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미국 독립전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애덤스는 이렇게 답했다.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혁명(독립)은 발효되었다.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 속에 혁명이 있었다”라고.


비슷한 맥락에서 박 대통령 탄핵은 지난해 10월25일 첫 대통령 담화 때, 지지율 4%로 추락했을 때 이미 한국인의 마음과 가슴 속에 발효되었을 것이다.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은 국민 마음 속의 탄핵을 헌법에 따라 추인하는 과정으로, 헌재의 존재 가치와 명예를 입증하는 일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존속시키는 언론을 위해 애덤스의 글을 마저 더 소개하겠다. 애덤스는 “사람들의 기분과 관점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독립국가로 만든 것은 팸플릿, 신문 그리고 심지어 전단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즉 미국 독립은 언론과 언론의 자유 덕분이었다.


최근 유력 언론들이 헌재의 탄핵심판이 난 뒤 한국이 두 동강이 날 것을 걱정한다. 그렇다고 그 유력 언론들이 2004년 3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두고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고 그 결과에 모두 승복해야 한다”고 했던 발언을 상기시키며 ‘친박세력’들을 질타하지는 않는다. 두 동강 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두 동강 난다면 올바름을 보도하기보다 ‘기계적 중립’에 열 올린 언론의 보도태도를 탓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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