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대와 숫자 두 개

[글로벌 리포트 | 중국]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중국의 3월 초·중순은 ‘정치의 계절’이다. 정부나 권력기관의 활동이 언론에 투명하게 공개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중국의 정책 결정 과정은 언론의 접근권 밖에 있다. 1년에 유일한 예외가 오는 15일까지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다. 회의 장면이 언론에 공개되고 각료급 간부의 기자회견만 열여덟 차례 열린다. 정규 기자회견 이외에도 행정부 각 부처 장관들이 인민대회당 회의장으로 출입하는 복도인 ‘장관 통로’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간이 회견이 이뤄진다. 복도에 진을 친 기자들이 지나가는 장관들을 불러세워 질문 공세를 펼치는 형식이다. 평소 기자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간부나 유명인들도 이 기간만큼은 언론 취재를 피하지 않는다. 이는 오랫동안 형성된 관행이다.


전인대 기간 중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건 두 개의 숫자다. 하나는 개막식 당일 총리가 발표하는 경제성장률 목표치이고 나머지 하나는 국방예산 증가율이다. 십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이 현상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막일인 5일 인민대회당 앞 인도에는 이른 새벽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장사진이 생겨났다.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피부색이 제각각인 기자들의 줄이었다. 이윽고 오전 8시 인민대회당의 문이 열리기 전부터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정부공작(업무)보고’ 원고 배포가 시작되자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 체면 차릴 것 없는 기자들은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32쪽의 원고 뭉치를 뒤적였다. 해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숨은 숫자 찾기 대회’였다.


이윽고 복도 곳곳에서 서로 다른 언어의 전화 통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류덴우쭤유(六点五)” “around six point five” 곧이어 신화사를 비롯, AP·로이터·교도 등 세계 유수의 통신사들이 “올 중국 경제 성장률 목표 6.5% 안팎”이란 한 줄짜리 속보를 타전했다. 아예 바닥에 편한 자세로 주저앉아 전화로 리포트를 하는 외국 방송 기자도 있었다. 2017년의 전인대 취재 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숫자를 놓고 이처럼 초를 다투는 속보 경쟁을 펼치는 건 중국의 성장률이 주식 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마침 올해는 3월5일로 고정된 개막일이 장(場)이 서지 않는 일요일이었지만, 취재 경쟁의 양상은 예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실은 6.5%란 수치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뉴스였다. 중국의 경제전문가들, 사회과학원을 비롯한 싱크탱크들은 물론 블룸버그·파이낸셜타임즈(FT)등의 해외 매체들이 이미 예상한 수치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관심 숫자인 국방예산 증가율은 개막 하루 전인 4일 공개됐다. 푸잉(傅瑩) 전인대 대변인 겸 외사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올해 국방비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1.3% 수준”이라며 “(지난해 대비) 증가 폭은 7% 안팎”이라고 밝힌 것이다. 5년째 전인대 대변인을 맡아 온 그는 해마다 개막 하루 전날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국방비 증가율을 공개해 왔는데 이 역시 올해도 다름이 없었다.


일부에선 2년째 한자릿수에 머문 증가율을 놓고 예상보다 낮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10여년 동안 매년 두자릿수로 국방예산을 증가시켜오던 추세가 지난해부터 뚝 떨어졌단 얘기다. 하지만 그건 정확한 분석이라 보기 어렵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중국의 국방예산 증가폭도 경제성장률과 연동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국방예산 증가율이 한자리냐 두자리냐를 따지기보다 경제성장률과 비교해야지 중국의 의도를 더 정확히 읽을 수 있다.


중국은 최근 20여년간 한차례도 거르지 않고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게 국방예산을 증액시켜왔다. 그 결과 중국의 국방예산은 올해 처음으로 1조 위안을 넘어섰다. 푸 대변인은 증가율 및 GDP 대비 비중만을 밝혔지만, 정확한 국방예산 규모는 6일 신화통신의 보도로 공개됐다. 총액 1조443억9700만위안, 우리 돈으로 174조7200억원이었다. 이는 한국 국방예산의 4배, 일본의 3배가 넘는 액수지만 미국 국방비의 4분의 1수준이다.


하지만 사실상의 국방비지만 ‘연구개발비’ 등 다른 항목으로 위장분산된 예산을 포함할 경우 통상 공표된 국방예산의 2∼3배를 중국의 진짜 국방비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를 감안하면 중국의 총 국방비는 미국에 상당히 근접하게 된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국방비 규모에서 머잖아 미국을 추월하게 될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자들의 정책을 확 뒤집어 국방예산을 10% 이상 증액키로 결정한 주요 원인 중 하나도 중국의 추격을 의식한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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