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독과 트럼프의 유착

[글로벌 리포트 | 미국]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편집장 제러드 베이커(Gerard Baker)가 뉴스메이커로 등장했다. 그는 지난 2015년 11월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회 사회자로 나서 미국 유권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토론회 사회를 멋지게 소화해서가 아니다. 영화배우 율 브리너(Yul Brynner)처럼 완전 대머리인 그가 폭스 비즈니스 채널이 생중계하고, 1350만명 가량이 시청한 토론회에서 악센트가 진한 영국 영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영국 사람이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영국의 BBC 방송 프로듀서, 파이낸셜타임스 기자를 거쳐 2009년 WSJ에 입사했고, 2013년 3월부터 편집장을 맡고 있다. 미국의 트위터 등 SNS에는 “아니 왜 영국 사람이 미국 대선 토론 사회자로 나서지?”라는 질문이 폭주했다.


이 토론회가 끝난 직후에 그 무대에서 베이커 편집장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경선 출마자는 의미심장한 인사를 주고 받았다고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트럼프가 먼저 제러드에 다가와 말을 건넸다. “당신이 오늘 믿을 수 없을 정도로(incredibly) 사회를 잘 봤다.” 베이커 편집장은 기자들에게 둘이 나눈 대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화답했다. “트럼프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unbelievably) 매력적인 사람이더라.”


베이커 편집장은 2017년 2월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들과 긴급 타운홀식 미팅을 가졌다. 이 신문의 기자들은 WSJ이 지나치게 친 트럼프 성향의 보도를 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베이커 편집장은 이 자리에서 “절대 그런 일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베이커 편집장과 WSJ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보도 태도 논란을 계기로 뉴욕타임스(NYT) 등은 WSJ의 소유주인 글로벌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과 트럼프 대통령 간 ‘권언유착’의 실태를 파헤치고 있다. NYT는 세계 최강의 미디어 재벌과 세계 최강의 대통령이 결탁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고 경고했다. 올해 85세로 호주 출신인 머독은 21세기 폭스사와 폭스 코퍼레이션 등을 소유한 세계 최대의 미디어 재벌이다.


머독이 원래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을 대통령으로 밀었으나 블룸버그가 끝내 대선전에 뛰어들지 않았다. 머독은 블룸버그의 대타로 트럼프를 지원했다. 뉴욕에 거주하던 트럼프가 아침에 일어나면 보는 신문이 머독 소유의 뉴욕 포스트였다고 한다. 머독은 자신이 소유한 언론사가 특정 대선 후보를 밀어주면 나중에 대가를 챙기는 미국판 권언유착의 화신으로 꼽힌다.


머독은 뉴욕 포스트를 통해 로널드 레이건을 지원한 뒤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에 공중파 방송인 폭스(Fox)를 출범시켰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에는 24시간 케이블 뉴스인 폭스뉴스를 내세워 이라크전 지지 여론을 부추겼고, 이때 디렉트TV와 에코스타의 합병을 차단한 뒤 현재 디렉트TV에 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NYT가 보도했다.


머독은 이제 폭스뉴스 등을 통해 트럼프를 밀어주고, AT&T의 타임워너사 인수를 막고 있다고 NYT가 전했다. 머독은 CNN의 모기업인 타임워너사를 2014년에 인수하려다 실패했었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에서 AT&T의 타임워너사 인수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머독의 핵심 측근인 베이커 WSJ 편집장은 트럼프 시대를 맞아 WSJ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지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 베이커 편집장이 미국 언론계에 던진 화두는 ‘거짓말(lie)’과 ‘허위(untruth)’를 구분하자는 것이다. 거짓말은 상대를 속일 의도를 내포하고 있지만 허위는 그런 의도 없이 단순히 사실이 아닌 것을 의미한다. 베이커는 트럼프가 ‘허위’를 말하고 있을지 몰라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며 WSJ는 트럼프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NYT는 그러나 ‘동기’와 ‘의도’를 뺀 진실은 있을 수 없고, 트럼프가 사실이 아닌 것을 계속 말하면 이것은 의도가 개입된 ‘거짓말’이라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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