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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취재의 전부…두 발은 기자를 단련시킨다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1부)기본에 답이 있다 ⑤현장과 소명의식

김달아 기자2017.02.07 20:53:41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보도들
현장서 발품팔아 얻은 결과물
촛불집회서 시민들 만나면서
현장 중요성·소명의식 깨달아

팔짱 낀 채 웃고 있는 우병우
협력업체 돈뜯은 대기업 간부
부산 복지사각 제로맵 완성
현장의 고군분투 있어서 가능


“기자는 늘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역사의 산증인이잖아요.”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유지은씨(40)의 말이다. 그는 9살 아들, 4살 딸과 광장에서 열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사진전을 둘러보고 있었다.


조성봉 뉴시스 사진기자가 기획한 이 전시회는 기자와 작가 40여명이 촛불집회 현장을 기록한 사진으로 채워졌다. 유씨는 사진을 가리키며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든 이유를 어린 자녀들에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말을 따라 전시작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평범한 시민인 유씨가 바라는 기자의 모습은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기사로 국민을 선동하거나 현혹하지 말고 공공성을 지켜달라”는 당부도 더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기레기’로 비난받던 기자들은 국정농단 사태를 들추고, 사실상 촛불집회를 일으킨 불씨가 되면서 이제야 제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사회에 기자와 언론이 왜 필요한지 증명한 순간들이었다. 국정농단 국면과 촛불집회는 기자들에게도 많은 것을 남겼다. 현장취재의 중요성과 기자의 소명의식을 일깨웠다.																		 (뉴시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기레기’로 손가락질받던 기자들은 대통령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유씨가 생각하는 ‘기자의 모습’을 실현했다. 현장에서 끈질긴 취재로, 나라를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이끈 것이다. TV조선, 한겨레, JTBC 등을 비롯한 국정농단 관련 보도들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품 팔아 얻어낸 값진 결과물이다.


언론 보도로 국정농단 실체가 드러나자 우리사회는 변화를 겪었다. 먼저 국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졌다. 민주화를 갈망하던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였다. 국민들의 외침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특검은 국정농단 연루 인물들을 구속하며 진상 규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심판 결정을 앞두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과 촛불집회는 기자들에게도 많은 것을 남겼다. 현장취재의 중요성과 기자의 소명의식을 일깨웠다. 매주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했던 A 기자는 “수십, 수백만명이 모인 역사적인 현장에 설 때마다 자부심을 느꼈다”며 “기자로서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쓰레기나 해악으로 여겨지던 기자들이 이번 국면을 거치면서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촛불집회를 60여일 동안 매일 생중계했던 SBS 기자들도 현장취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시경캡인 정형택 SBS 기자는 “(게이트 초반에) 언론 본연의 기능을 소홀히 했다는 반성에서 촛불집회 현장을 매일 지키게 됐다”며 “국민들은 대통령 탄핵과 함께 적폐 해소를 요구했다. 매일 현장을 찾다 보니 그동안 지상파 메인뉴스에서 소홀했던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손형안 SBS 기자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 있다. 손 기자는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SBS 취재팀 가운데 촛불집회를 가장 많이 중계했다는 손형안 기자는 “현장에서 소명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했다. 손 기자는 “처음엔 적대적이었던 시민들이 계속 이슈를 이어가는 저희(SBS)에게 마음을 열어줬다”며 “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과 끝까지 호흡을 맞춰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이번 국면은 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기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일간지 중견 B 기자는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며 왜 기자가 됐는지 되돌아봤다고 했다.


B 기자는 “초년병 시절 가졌던 소명의식이나 소신, 철학은 일상생활에 묻혀 희미해지고 있었다”며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선후배들을 목격하면서 기자인 우리가 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기자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 볼 기회였다”고 밝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집회 외에도 지난해 현장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던 기자들이 많다. 사진 한 장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준 고운호 조선영상비전 기자가 대표적이다.


고 기자는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포착했다. 우 전 수석은 팔짱을 낀 채 웃고 있었다. 그 옆 검찰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손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조선일보는 이날 보도에서 “검찰을 쥐락펴락했던 우 전 수석의 ‘위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피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여유로운 우 전 수석의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고 기자는 이 한 컷을 위해 중앙지검과 300m 떨어진 건물 옥상에 올랐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반대편 눈으로 카메라 뷰파인더를 계속 바라봤다. 그렇게 5시간을 기다렸다.


▲고운호 조선영상비전 기자가 보도한 ‘팔짱낀채 웃으며 조사받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 고 기자는 “뉴스를 보는 모든 이들을 대신해 셔터를 누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배울 게 많은 (부서) 막내다. 선배들이 설명해준 취재의도를 생각하며 기다렸다”며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었을 땐 내 눈과 손이 나혼자 만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뉴스를 보는 모든 사람을 대신해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라며 “당시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순 없었지만 이 일을 허투루 해선 안 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 사진으로 언론계에서 주목을 받은 그는 늘 현장에서 성실하게 취재하겠다고 했다. 그는 “사진기자에게 현장성은 전부에 가깝다. 현장에서 직접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저뿐 아니라 독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기자로 우직하게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영 MBC충북 기자는 대기업 간부가 납품업체들에 수십억원을 뜯어낸 정황을 파악하고 10개월간 현장을 추적했다. 그는 ‘청주 LG화학 오창공장 간부가 돈을 받았다’는 단 한 줄의 실마리를 가지고 취재에 나섰다. 정 기자는 “지역방송사 특성상 날마다 리포트를 해야 하는 데다 혼자 대기업을 상대로 취재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검찰과 경찰의 합동 수사를 통해 해당 간부는 이미 기소됐지만 검경은 보도자료도 내지 않고 말을 아꼈다. 정 기자는 “수사 관계자가 청주에 자리 잡은 대기업을 저격하면 지역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보도를 막아섰다”며 “하지만 취재를 그만둘 수 없었다. 기자로서 대기업의 고착화된 뒷돈문화를 끝까지 캐고 싶었다”고 했다.


취재를 시작하자 대기업과 검경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 정 기자는 납품업체 관련 재판이 있을 때마다 참석해 정보를 얻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납품업체까지 찾아다녔다. 그렇게 10개월 동안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사건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 나갔다.


▲대기업 간부가 납품업체들에 수십억원을 뜯어낸 정황을 10개월간 추적했던 정재영 MBC충북 기자. 정 기자는 “현장을 파헤친 덕에 기획 리포트가 빛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마침내 정 기자의 끈질긴 취재가 빛을 발했다. 취재과정에서 해당 간부가 더 많은 뒷돈을 챙긴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 혐의를 추가해 기소했다. 보도를 막으려던 LG화학은 결국 납품 관행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언론을 믿지 않는다’던 협력업체 대표를 3개월에 걸쳐 설득한 끝에 대기업의 횡포를 거부할 수 없었던 사정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정 기자는 “검경이 보도자료를 냈다면 단순한 검거기사로만 나갔을 것이다. 처음엔 보도자료도 없었으니 그냥 묻혔을 수도 있다”며 “기자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건을 추적하고 파헤친 덕에 이 사건을 7개 기획 리포트로 보도할 수 있었다. 아쉬움도 있지만 ‘을’의 아픔을 계속 조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일보가 지난해 보도했던 ‘복지사각 제로맵’ 기획은 통계와 현장성의 시너지로 탄생했다.
취재팀은 부산지역 206개 동의 복지 수준을 점검하기 위해 동마다 인구·빈곤·건강·교육·주거 등 5개 분야, 10여개 세부지표 수치를 모았다. 이 자료를 모두 분석해 ‘부산 SOS 지수’를 만들었다. 지수가 높을수록 복지여건이 나쁘다는 의미다.


기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장 구석구석을 찾았다. 노인정, 미용실, 골목슈퍼 등에서 주민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시리즈를 기획한 이대진 부산일보 기자는 “현장을 빼고 데이터로만 판단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SOS 지수가 높거나 연도별 격차가 큰 20여 곳을 탐사했다”며 “3개월에 걸쳐 현장을 취재해보니 생각보다 수치와 실제가 다른 곳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현장 이해도가 높은 사회복지 시민단체와 협업해 현장성을 더욱 살렸다. 활동가들이 체감하는 것과 수치가 확연히 다른 곳도 파악했다. 통계상으로 볼 수 없는 양상을 현장에서 확인하기도 했다. 이 기자는 “현장 취재와 데이터 분석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며 “동별로 세분된 자료는 공공기관이 공식 발표하지 않는 것들이다. 정보공개를 청구하거나 국회의원 등을 통해 찾아냈다”고 했다.


그는 “기자가 발로 현장을 뛰는 전통적인 취재방식과 데이터저널리즘을 접목해 장점을 부각하고 단점은 보완한 것”이라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복지지수를 만들었다. 완성도를 높여 실질적인 정책변화를 이끌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이 기자는 취재과정은 힘겨웠지만 지역민들의 삶에 밀접한 기사를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은 보통 통계청이나 정부기관이 발표한 자료를 기사화하곤 한다. 하루하루 기사 생산에 급급하다 보면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확인하기 쉽지 않다”며 “하지만 결국 저널리즘은 이런 방향을 놓쳐선 안 된다”고 소신을 밝혔다.


모든 기자가 현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현장 취재에 나서는 것은 기자의 기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장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기자의 발목을 잡는다. 마감에 쫓기고, 과도한 업무에 치이고, 출입처·기자단 매너리즘에 빠지면… 기자와 현장은 멀어진다.


디지털 강화 기조에서 온라인 기사를 쓰다 보면 현장은커녕 전화 취재조차 못 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종합일간지 C 기자는 “기사를 빨리 올려야 조회수가 많이 나온다. 온라인 기사 처리하다 오전이 다 간다”며 “점심 이후에야 기획기사를 취재할 수 있다. 4~5시까지 마감하려면 취재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데스크와 현장 기자 간의 시각·입장 차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역일간지 D 기자는 “현장에서 중요한 발언을 했던 인물의 코멘트가 데스크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빠진 적이 있다”며 “지자체를 비판하는 기획기사도 광고 때문에 지면에서 사라졌다. 취재하고 기사쓰기가 싫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종합일간지 D 기자는 “요즘 기자에게 소명의식은 회사나 간부가 급여를 적게 주고 일폭탄 던지면서 뻔뻔하게 강조하는 말로 들린다”고 꼬집었다.


고참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현장에 나갈 기회가 사라진 데스크들은 기자보다 회사원이길 요구받는다. 종합일간지 F 부장은 “현장보다 회사에서, 취재 대신 데스킹을 해야 한다. 내 바이라인이 달리는 기사보다 매출에 신경 써야 하는 회사원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기자에게 현장은 저버려선 안 될 가치다. 뉴욕타임스 출신 기자이자 컬럼비아대학 저널리즘스쿨 종신교수인 새뮤얼 프리드먼은 저서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2006)에서 현장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닳고 닳아 뻥 뚫린 구두,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면서 묻은 신발 위의 진흙이나 먼지. 우리가 기자임을 보여주는 당당한 증거물이다. 믿을 만한 취재는 기자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 오감을 동원해 직접 파악하는 것이다. 두 발로 뛰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기자로 살고 있는 이들이 곱씹어볼 만한 말이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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