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청와대 정무수석실 작성 전달 추적

제316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2부문 / 노형석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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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 한겨레신문 기자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믿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새해 벽두 타계한 영국의 예술지성 존 버거(1926~2017)가 남긴 유명한 명제다. 우리가 세상사를 보는 과정은 알게 모르게 이미지 뒤에 숨은 이데올로기의 압박을 받는다는 뜻이겠다. 존 버거는 이 명제를 남성주의가 지배해온 서양회화사와 자본이 휘감은 대중광고 맥락에서 풀었다. 하지만, 기자는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작성전달 경위를 캐면서 버거의 명제를 섬뜩한 권력장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40여년전 유신 이데올로기로 예술판을 편갈라 통제해야한다는 헛된 믿음과 망상이 한국 문화예술판의 운명을 실제 쥐락펴락했던 것이다.


지난해 10월10일 도종환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있다는 근거를 처음 내보였다. 청와대 등 윗선의 보이지 않는 힘이 문화예술계 지원에 작용한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문화예술위 회의록 원본. 이 사실을 손준현 한겨레 기자가 단독 보도하면서 블랙리스트 공방이 점화됐다. 그러나 누가 공모해 작성, 전달, 실행했는지 구체적 경위는 알 수 없었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10월13일 국정감사장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받았다.”


미묘한 언변. 왜 에둘러서 해명할까? 블랙리스트 작성 전달 경위를 파악해 예술인 탄압의 실체를 드러내야겠다는 발심이 일어났다. 10월 중순부터 오래 출입해온 문체부와 문화예술위, 문화계의 숱한 취재원들을 일일이 탐문했다. 발품 들인 끝에 2014~15년 청와대 김기춘 실장과의 교감 아래 조윤선 정무수석실이 교문수석실을 경유해 문체부, 문화예술위를 부리며 블랙리스트 공작을 진행한 전모를 처음 밝혀낼 수 있었다. 진실이 통하는 세상이 되어야한다며 털어놓은 취재원들 증언과 동료 선후배들의 ‘비선’ 메모가 원기를 주었다. 기자의 기사를 명백한 오보라며 언론중재위에 제소한 조윤선 전 장관은 이 글을 쓰는 지금, 구치소에 갇힌 채 장관직을 사퇴했다.


지난해 한국 전시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참여미술의 거장 윌리엄 켄트리지는 “예술은 명백히 쓸모없는 것에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적확한 말이다. 중심 아닌 주변을 기웃거리고, 불온하고 하찮은 것들을 엮어 새로운 세상의 밑돌을 놓는 이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참견하는 상상력’을 가두면 미래가 없다. 기자는 뒤늦게라도 그 ‘역행’을 막았다는 게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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