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68혁명을 기대하며

[언론 다시보기] 진민정 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이사

▲진민정 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이사

지난 17일,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영장을 기각하자 많은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의 사법부는 정경유착의 질긴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기회를 차버렸고, 법 앞에 만인이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여전히 변치 않는 일부 언론의 ‘삼성 지키기식’ 보도였다. 조·중·동을 비롯, 매일경제나 한국경제, 서울경제와 같은 일부 언론은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부터 마치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이 삼성의 몰락으로 그리고 종국에는 대한민국 경제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처럼 전망하면서 우려를 표명해왔다.


반면, 외신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몇몇 해외 언론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이 삼성의 경영에 미치는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18일자 LA타임즈의 보도(한국 사법부, 삼성 경영자에 대한 체포 영장 기각 http://www.latimes.com/world/asia/la-fg-korea-samsung-chief-20170118-story.html)와 15일자 뉴욕타임스의 보도(삼성 승계자, 한국 대통령에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 위기 https://www.nytimes.com/2017/01/15/world/asia/south-korea-samsung-arrest-jay-lee-park-geun-hye.html?_r=0)는 공통적으로 삼성이 기본적으로 소비재 시장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의 법적 문제가 삼성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이제까지의 재벌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관대한 결정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우려를 낳고 한국 대중들에게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왜 한국의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의 보도는 외신들의 보도와 그리도 달랐을까? 물론 그 속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보도의 배경에 삼성이 언론사에 쏟아붓는 광고의 힘이 존재할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촉발된 촛불시민혁명은 언론과 사법개혁을 동시에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프랑스의 68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68혁명은 권력남용에 전혀 관대하지 않는 저널리즘의 등장과 사법개혁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신뢰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저널리스트의 직업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등장한 ‘공격적 저널리즘’의 확산은 정치 변화와 사법개혁, 사법과 언론의 공조가 이루어지면서 가능해졌다. 정치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신자유주의 추종과 더불어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의 구별이 불분명해지면서 정치인들의 도덕성이 차별적인 무기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아울러 사법개혁은 60년대 말 대대적인 수사판사(경찰을 지휘하고 사건을 수사하며,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기소를 하는 판사)의 채용과 더불어 이루어졌다. 68혁명의 영향으로 윗세대보다 정의와 인권에 민감했던 이들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사법관노조를 결성해 직업적 정체성을 재정의했다.


이들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패를 드러냄으로써 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을 획득하고자 언론을 활용했고, 언론은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보도를 통해 공중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함으로써 언론의 감시기능을 수행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법과 언론의 공조는 결국 사법부의 확실한 독립과 탐사저널리즘의 부흥을 가져왔다.


언론과 검찰이 제 역할을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국정농단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진단이 많다. 시대도 상황도 다르지만 우리사회에서도 권력의 눈치보기를 멈추고자 하는 언론과 사법의 공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를 통해 언론이 ‘기레기’ 혹은 ‘부역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사법기관이 법의 공평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세상의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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