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뛰는 가짜뉴스…편집회의까지 파고들다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1부)기본에 답이 있다 ④가짜뉴스와 팩트체크

‘아니면 말고’식 가짜뉴스
SNS 타고 거짓정보 확산
조기 대선 앞두고 경계령
팩트체크팀 구성 등 모색

속보에 받아쓰기 경쟁 원인
사실 확인 않고 나르기 급급
오보 재생산, 삽시간에 퍼져
언론사 차원 팩트 체킹 절실


“두 회사가 합작한다고 해서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각자 추진하는 걸로 바뀌면서 사실상 오보가 된 경우가 있어요.” 한 경제지 증권부 A 기자는 “해당 회사에 사실 확인을 하고 나서 기사를 내보낸 건데도, 이렇게 상황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당장 투자를 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파장이 클 뻔 했다”며 “내용뿐만 아니라 보도 시점도 중요하단 사실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A 기자는 “증권부에 발령받았을 때 선배들에게 ‘기자는 시장의 관찰자이지, 기사로 인해서 거래가 바뀌거나 깨지게 해선 절대 안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민감한 경제 기사는 오보를 줄이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방송사 abc뉴스(왼쪽)를 모방해 만든 가짜뉴스 사이트(오른쪽).

또 다른 일간지의 B 기자도 지난해 미국 대선과 관련해 기사를 내보내고 낭패를 봤다.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판세를 전망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 외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것이다. B 기자는 “당시 예상 기사를 쓴 기자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막판에 상승세가 있단 걸 알고 있었지만 결과가 다르게 나올 줄은 몰랐다. 오보라면 대형 오보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 전문가 분석뿐만 아니라 CNN이나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이 취재한 내용을 참고했는데, 이들이 잘못 판단하면서 줄줄이 예측이 빗나갔다. 유력한 외신의 보도도 자체적으로 팩트 체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전했다.


디지털 뉴스 소비가 늘고 언론사들이 저마다 속보 경쟁을 하며 오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언론중재(정정·반론·손배 등) 청구 건수는 지난 2011년 2124건에서 지난해 3170건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이 가운데 피해구제가 된 사례 또한 2011년 1473건에서 지난해 2005건으로 늘었다. 특히 지난 2014년에는 세월호 보도 여파로 청구 건수(1만9048)와 피해구제(1만6728) 모두 10배가량 뛰었다. 언중위 홍보팀장인 양재규 변호사는 “하나의 오보를 많은 언론사가 그대로 받아쓰고, 그 많은 오보가 포털과 SNS를 통해 확산되며 파급력이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보도 가운데 ‘전원구조’ 오보는 한국 언론에 큰 상처를 남겼다. 한 일간지의 기자는 “주요 통신사와 보도 전문 채널 등이 일제히 전원 구조라는 타이틀을 달고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팩트 확인을 직접 하지 않고 물 먹지 않기 위해 통신사 내용을 섣불리 받아쓴 결과”라고 지적했다. 대개 일간지는 통신사의 1보 보도를 확인한 후 해당 출입처 기자가 사실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속보 경쟁에 내몰리며 이 같은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퍼나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 방송사 기자도 “당시 디지털뉴스룸에 있는 기자들이 통신사의 속보가 뜨자 곧바로 푸시 알람을 날렸다”며 “해당 보도가 오보인 게 드러나고 항의가 빗발쳤다. 푸시를 쏜 기자의 좌절감도 상당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오보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마구잡이식으로 판치는 ‘가짜뉴스’도 언론 건전성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짜뉴스는 허위 사실을 진짜인 것처럼 정리한 기사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되는 지라시와는 다르다. 문제는 짜깁기 동영상이나 기사체로 쓰여진 가짜뉴스가 SNS을 통해 의혹이 증폭되며 사실로 믿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가짜뉴스가 심각한 사회 문제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 피자가게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했다는 내용의 거짓 뉴스가 퍼졌는데, 실제 이를 진짜로 믿은 남성이 피자가게에 총을 쏘는 일이 발생하며 파문이 일었다. 영국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크리스마스 예배에 이어 신년 예배까지 불참하자 한 트위터 계정에 ‘충격: 버킹엄 궁이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를 발표했다’는 가짜뉴스가 퍼지며 들썩였다.


홍역을 앓은 해외 언론은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다. 언론 공신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경제 전문 방송인 CNN 머니는 가짜뉴스를 추려낼 전문 기자를 뽑기 위해 구인 광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도 가짜뉴스 퇴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인공지능(AI)과 사실 점검 프로그램을 활용해 가짜뉴스의 유통을 막겠다는 전략이다.


국내에서도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 경계령이 퍼졌다. 실제로 최근 한 인터넷 매체가 “반기문, 한국 대통령 출마는 유엔법 위반 ‘유엔 출마 제동 가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유포해 SNS상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기사 내에는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신임 사무총장은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퇴임한 반 전 총장이 한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유엔 결의를 위반하는 것을 그대로 묵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해당 기사는 SNS를 통해 사실인 것처럼 인용되며 수십여 개의 비난 댓글을 낳았다.


오대영 JTBC 팩트체크 팀장은 “유력 정치인이 (반기문 기사) 내용을 인용하는 걸 듣고 처음에는 혹했다. 보도국 아침회의가 가짜뉴스를 가지고 다뤄질 뻔했다”며 “유엔법이라는 게 있는지 궁금증이 들어 여러 루트의 취재망을 동원해서 유엔에 직접 접촉해 취재했더니 그런 게 없었다. 대선에 가까울수록 후보 진영에서 자신이 유리한 홍보기사를 쏟아내는 만큼 보도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언론사들은 대선을 앞두고 자체 검증팀을 모색 중이다. 박민혁 동아일보 경영총괄팀 팀장은 “사회부의 일부 인력을 정치부에 보강해 대선과 관련한 팩트 체크를 꼼꼼하게 해나갈 예정”이라며 “현재 4~5명이 꾸려진 상태다. 더 보완될 계획”이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도 지면과 방송, 온라인이 힘을 모아 팩트체크팀 구성을 위해 논의 중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언론사들이 실시간 팩트체크한 것을 벤치마킹할 계획으로 전해진다. ‘JTBC 뉴스룸’에서 매일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실 확인을 하며 주목을 받아온 팩트체크팀 또한 실시간 대선 보도를 검토 중이다.


한 방송사의 기자는 “가짜뉴스가 대선 캠프의 네거티브 전략과 맞물리면 대선판에 큰 혼란을 몰고 올 수 있다. ‘아니면 말고’란 식의 극단주의식 보도가 양극화와 갈등을 부추기며 표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며 “기자 개인의 책임감뿐만 아니라 언론사 차원의 적극적인 팩트체크 대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간지 기자도 “시민단체, 학계 등도 힘을 모아 SNS 모니터를 습관화하고 추가 확인을 통해 오보와 가짜뉴스를 줄이는데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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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에 의심 더하며 진실 판독

JTBC 팩트체크 제작팀
기자·PD·작가·디자이너 7명
5분 방송 위해 13시간 근무
각자 전문 영역 다루지만
서로 믿지 않고 크로스체킹


“팩트체커들은 ‘의심병 환자’에요. 내 입맛에 딱 맞는 아이템이 나와도 ‘뭔가 이상한데’라는 의심부터 하죠. 본능적으로 사실이 맞는지 확인부터 하는 게 기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4년 9월 ‘팩트체크’가 JTBC뉴스룸의 신규 코너로 등장할 때만해도 시청자들은 “낯설다” “생소하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언론계에서도 팀을 따로 꾸려 팩트체크하는 걸 두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팩트체크팀 팀장인 오대영 기자는 “막상 공개가 되니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시청자들은) 특정 정치인의 발언을 정면으로 끄집어내 5분 동안 팩트 여부를 따지는 걸 파격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JTBC 사옥에서 오대영 팀장(왼쪽 아래)을 포함한 JTBC 팩트체크팀이 보도국 내 휴게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팩트체크는 손석희 사장이 JTBC로 옮겨온 이후 개편 때마다 강하게 추진하자고 제안한 아이템이다. 오 기자는 “(손 사장이) 늘 공정과 균형, 품위, 팩트 등 4가지의 가치를 뉴스에 다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가 고민이었는데, JTBC 뉴스의 라인업을 하는 과정에서 팩트라는 가치를 코너로 구현하게 됐다”고 밝혔다.


“‘팩트는 하나니까 금방 찾을 수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어요. 저 또한 기자생활 10년 넘게 하면서 하나의 근원을 찾기가 어렵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하루 온종일 시간을 쏟아도 모자랄 지경이에요.”


기자와 PD, 작가, 디자이너로 이뤄진 7명의 JTBC 팩트체커는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 10시30분에 열리는 보도국 회의를 거쳐 13시간 이상의 시간을 사실 확인에 할애한다.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 이중, 삼중으로 검증하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퇴근 후에도 SNS를 통해 모니터를 꾸준히 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모색한다. 기자협회보는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JTBC 사옥에서 팩트체크팀 제작진을 만나 사실 검증 과정과 뒷이야기를 들었다.


▲JTBC 팩트체크팀의 회의 모습.


-아이템 선정 기준은.
“정치인 등 뉴스메이커의 발언이 근거가 있는 발언인지, 아니면 선동을 위한 주장인지 가려내는 게 대표적이다. 또한 사회적 현상이나 대중의 궁금증을 (아이템으로) 채택하기도 한다. 하루 평균 10개 정도 들어오는 제보도 참고한다. 매체는 많고 뉴스도 쏟아지는데 그대로 인용해서 담다보면 수용자 입장에서 사실 여부를 따질 수 없게 되지 않나. 그냥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중간에 체크해보자는 취지가 강하다.”


-팩트체크 과정은.
“팩트체커들은 각자 캐릭터가 분명하고 전문 분야가 있다. 어떤 이슈가 터졌을 때 전문 영역에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한다. 개별 취재의 총합에 집단 지성을 발휘해 시너지가 더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건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고 각자가 ‘크로스체킹’을 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오보가 없다.”


-기억에 남는 팩트체크 아이템은.
“올해 초 신년토론회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과 전원책 변호사가 법인세 실효세율을 두고 맞붙었다. 생방송 중에 팩트체크팀은 실시간으로 사실 확인을 했고, 그 결과를 손석희 앵커에 전달했다. 방송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실시간 팩트체크로 의미가 있다.”


-앞으로 ‘팩트체크’에 대해서.
“마크트웨인이라는 소설가가 ‘팩트는 흔들 수 없지만 통계는 구부릴 수 있다’는 명언을 남긴 게 기억에 남는다. 지금처럼 담담하고 한결같이 팩트의 힘을 믿고 이끌겠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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