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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이 움직이면 콘텐츠가 깊어진다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1부)기본에 답이 있다 ③중견기자의 힘

최승영 기자2017.01.18 14:26:03

50대 이상 기자들 점유율 늘어
역할 못찾아 인사 때마다 떠밀려
누구도 꺼내지 못하는 남의 애기
언론사들 고참기자 활용 고심

전문·선임기자 맡아 취재 일반적
디지털 공간으로 취재영역 확장
심층성·노련함 기반 콘텐츠 요구
롱런 위해 전문영역 개발해야


“그게 내 경력의 전부입니다.”
한승동 한겨레신문 문화부 선임기자가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동안의 기자생활을 설명한 끝에 마침표처럼 나온 말이다. 1986년 ‘말’지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 1988년 한겨레 창간과 함께 입사했다. 민족국제부(현 국제부)에서 10년을 일하고 뒤늦게 사회부 경찰기자를 맡았다. 교육청, 교육부, 서울시청 등을 출입하다가 다시 민족국제부, 외교통일부 기자 노릇을 했다. 도쿄 특파원으로 3년(1998~2001), 다시 국제부로 복귀해 차장·부장 등 보직을 맡았다. 잠시 논설위원을 했지만 문화부는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의 자리가 됐다. 안기부의 내외통신, 일본신문을 받아쓰던 시절의 얘기가 나왔다. 사라진 타블로이드판형 ‘18.0도’ 섹션 제작도 그가 했던 일이라고 했다.


현재는 책지성팀에서 ‘책’과 ‘출판계’ 소식을 전담한다. 한겨레 금요섹션 ‘책과 생각’ 7개 면을 막는 게 그를 포함한 5명 팀원이 하는 일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회의에서 200여권 중 쓸 책을 고른다. 화·수요일에는 책을 읽는다. 목요일엔 마감을 한다. 이 가운데 출판계 행사나 소식을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최근엔 ‘단독보도’도 있었다. 인물면 인터뷰도 종종 맡는다. 바쁜 사진기자를 대동하는 게 미안해 카메라도 샀다. 32년차 ‘선임기자’ 아니 ‘기자’의 일상은 이렇다. 그는 내년에 정년퇴임한다.


▲권영철 CBS 정치부 선임기자가 17일 서울 목동 CBS사옥 내 스튜디오에서 ‘김현정의 뉴스쇼’ 고정코너인 ‘권영철의 와이뉴스’를 방송하는 모습.

한 선임기자는 “나이 든다고 잘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 경험이나 연배가 적은 이가 갖지 못한 이점이 분명 있다. 그걸 잘 활용하면 개인, 회사 둘 다 좋은 건데 사장돼버린다”고 했다. 이어 “후배들도 몇 년이면 다 내 나이가 된다. (중견기자 활용은) 남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다. 그런데 누구도 얘길 꺼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중견기자의 활용은 현재 언론계 공통의 고민이다. 선임, 고참, 시니어 기자 등 ‘고연차 무보직’ 기자들에 대한 활용방안의 문제다. 한 선임기자의 말대로 “당사자들이 입에 올리기엔 쉽지 않고, 후배들에겐 남의 얘기”가 되는 사안이다. 2000년대 일부 언론사에서 ‘선임기자제 도입’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업계 전반에 자리 잡지 못했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애초부터 중견기자의 ‘롤’이 유효할 수 있는 ‘형식’을 담보한 것이지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할 수는 없는 한계가 있었던 제도이기도 했다.


이도저도 못하는 새 편집·보도국 고령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역할을 못 찾은 중견기자들은 인사 때마다 여기저기 떠밀려 다닌다. 후배들 사이에선 “선배들이 ‘1인분의 몫’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아우성이 쏟아진다. 무엇보다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들이 손 놓고 있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다. 달리 말하면 이들의 제대로 된 활용은 언론사 콘텐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된다. 어디에도 가용가능한 역량을 갖고 있고, 풍부하기까지 한 인적 자원이 이들이기 때문이다.


▲용태영 KBS 기자가 지난 2009년 경기도 파주 임진강 초평도 인근에서 리포트 준비를 하는 모습.


늙어가는 뉴스룸의 현실
중견기자 문제는 언론사들에게 이미 현실이 됐다. 기자들이 편집·보도국 공간 내 바로 앞이나 옆에서 체감하는 늙은 뉴스룸의 기운은 결코 ‘기분 탓’이 아니란 의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0~2015년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50세 이상’의 신문기자(인터넷 포함) 수는 최근 6년 새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을 띠었다. 기자 상당수 학력이 대졸 이상이란 점을 감안, 취업 시기 등을 고려하면 ‘무보직의 25년차 이상 기자’의 연령이 대략 이쯤이다. 2009년(2010년 조사결과) 8.9%에 머물던 50세 이상 기자 비율은 2013년 23.4%까지 올랐다가 가장 최근 조사(2015년 조사)에서 16.9%로 감소한 상황이다. 2009년과 2014년을 비교하면 6년 새 100명의 기자가 있는 뉴스룸에서 고참기자만 8명이 증가했다.


방송사도 비슷한 상황이다. 방송기자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 ‘방송기자’에서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KBS와 MBC, SBS, YTN 등 4개 방송사 1287명 기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2016년 3월 기준)한 결과 26~30년차, 31년차 이상 기자의 비율이 17.5%(225명)에 달했다. 보직 부장급 연차인 21년차 이상은 전체 기자 중 40%를 차지했다. 특히 KBS는 30년차 이상 기자가 65명(총 569명), SBS는 29명(총 272명, SBS A&T 55명 포함)이었다.


▲최현수 국민일보 군사전문기자가 지난해 10월 용산 미군기지에서 주한 미해군 사령관 브래드 쿠퍼 제독과 인터뷰하는 모습.

언론사들 내부에선 이 같은 수치가 갈등으로 불거지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한 종합 일간지에선 최근 논설위원실에 있던 고참기자들이 대거 편집국으로 발령이 나며 논란이 일었다. 무작정 현장 배치를 할 수도 없고, 출입처를 주기도 애매한 상황은 정치·경제·사회부 등으로 배치를 하되 기사는 ‘온라인용으로 알아서 기여해달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마무리됐다.

고참기자 활용…선임기자? 전문기자?
현재 언론사에서 중견기자들에게 부여하는 역할 형태는 크게 3~4가지 정도다. △전문기자 활용 △선임기자로 일반 취재부서 배치 △디지털 콘텐츠 제작 △고정면이나 코너 할당 등이다. 전문기자와 선임기자는 언론계에서 중견기자를 활용하는 보편적인 ‘모델’이다. 디지털이나 고정면 등은 병행해 맡게 되는 직무에 가깝다.


최현수 국민일보 군사전문기자는 전문기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1988년 입사한 그는 국제부와 사회부, 생활과학부, 정치부, 경제부, 탐사기획팀장 등을 거쳤다. 2002년 여성 최초로 국방부 출입기자직을 맡았고, 현재는 최고령 출입기자다. 국제부 재직 시기 2년 간 휴직하고 시카고대학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학위를 땄다. 국방대학교 안보과정 국내연수를 받기도 했다. ‘전문성’을 가진 기자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 현재도 국방부를 전담하며 ‘데일리’와 ‘심층기획’, ‘고정칼럼’을 함께 챙기고 있다. 고참기자 중 전문 분야를 갖고 자신만의 콘텐츠를 써내는 경우가 여기 속한다.


▲한승동 한겨레신문 문화부 선임기자가 지난 2014년 한겨레 사옥 내에서 책과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사진=각 기자 제공)

권영철 CBS 정치부 선임기자는 일반 취재부서에서 일하며 고정 코너를 맡은 케이스다. 입사(1989년) 이래 사회부 생활을 오래했다. 방통위가 체신부일 때 출입했고, 체육부와 산업부도 맡아봤다. 통일팀장, 법조팀장, 사회부장 역할도 해봤다. 해설주간과 CBS부산 보도국장 등이 그가 거친 길이다. 자사 뉴스프로그램 고정 코너인 ‘권영철의 와이뉴스’를 7년 간 진행 중이다. 정치는 물론 타 영역 전반의 보도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방송통신위원회 소식도 담당한다. 신문사에서라면 인물면이나 토요판 등 고정지면을 담당하는 경우다.


용태영 KBS 기자는 디지털 에디터다. 1989년 입사한 그는 경찰(4년)과 검찰(2년) 출입을 오래했다. 교육부와 복지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등을 담당했으며 사회부 차장·부장을 역임했다. 두바이 특파원 당시 가자지구를 취재하다가 무장단체에 납치당한 경험도 있다(2006년). 2015년 국제주간 당시 ‘이승만 일본 망명 타진’ 보도로 심의실 평기자로 발령이 났다가 이후 현재 역할을 맡았다. 그는 환경전문기자로서 여전히 현장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뛰어다닌다. 온라인을 통해 기사를 생산, 유통한다. 지면·방송을 거들고 무한한 디지털 공간을 채우는 것. 이 역시 중견기자들이 요구받는 지점이다.


문제는 현재 이들의 역할에 대해 전문기자나 선임기자라는 호칭 부여 이외에는 분명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들에 대한 인력운용은 현 뉴스룸 운영의 빈틈을 보강하는 측면에서 소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마저도 저연차 땐 현장, 보직부장 이후에는 논설위원이나 해설위원을 맡는 방식이 한계에 다다르며 취한 미봉책에 가깝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중견기자 인력배치의 여러 문제
중견기자들은 공통적으로 ‘깊이에의 강요’를 받는다. ‘심층성’ ‘노련함’에 기반한 콘텐츠를 요구받는다는 의미다. 고참기자로서 역할에 ‘자율성’을 부여받기 위해서, ‘기자로서의 롱-런’을 위해선 ‘전문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게 약 30년차 기자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다만 전문성 중심의 고참기자 운용 시스템 역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로 2진을 두지 않는 현 전문기자 운용 방식은 조직 안정성에 위험을 끼칠 수 있다. 당장은 고참기자들이 해당 분야를 전담하지만 이들이 이탈할 경우 언론사는 갑자기 보도 명맥에 “대가 끊기는”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 2진 배치는 현안과 심층기획 모두를 챙기며 ‘업무 과부하’가 걸린 고참기자의 부담을 더는 요인도 될 수 있다. 당장 이는 전문기자의 심층성을 보완하는 조치가 될 수도 있다. 최현수 국민일보 군사전문기자는 “출입기자가 있고 거기 전문기자가 같이 있으면 이상적인 구조인데 회사의 인력사정이 항상 문제”라고 했다. 전문성 증진에 대해서는 “회사의 배려로 재직 중 유학, 연수 등을 다녀올 수 있었다. 다만 (제가 갔던 것처럼) 계속적으로 투입됐다면 좀 더 좋았지 않겠나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선임기자들을 취재부서에 배치하는 문제는 조금 더 미묘한 어려움이 있다. 후배 데스크와 선배 기자 간 불편함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이 및 입사 서열과 가진 권한이 일치하지 않을 때 갈등이 발생하는, 우리 사회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의외로 ‘선배가 야근을 서는지’ 같은 작은 부분들이 부서의 화학적 결합의 (불)가능 여부를 가리는 요인이 된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2013년 관훈저널 기고에서 2005~2009년 정당팀 선임기자 시절에 대해 밝히면서 “선임기자로 계속 일할 수 있는지 여부는 정당팀의 다른 후배 기자들이 선임기자들을 얼마나 동료로 대해주었느냐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킨십을 늘렸다. 후배들이 나를 현장의 동료로 받아주기까지 6개월 정도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일부 언론사에선 ‘이슈’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팀에 ‘선임기자’를 배치한 사례도 있었다. 상시적으로 탐사보도팀을 운영하되 베테랑 기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업무부담 속에서 내 부서의 주요 인력은 잘 내주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팽배하고 성과가 미진할 경우 유지되기 쉽지 않다는 점 등이 과제로 남는다.


회사는 현 시스템 안에 고참기자들을 끼워넣는 게 아니라 새로운 틀을 고안하고 어떤 역할을 맡길지 지속 고민할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실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6월부터 위원들이 모여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다. 매일 3~4명의 논설위원이 출연해 대담을 한다. ‘비정상회담’ 출연진과 함께 하는 ‘비정상칼럼쇼’ 등 콘텐츠가 꾸준히 보강되고 있다.


고참기자들은 ‘선임기자’ ‘전문기자’라는 제도 자체는 분명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용태영 KBS 기자는 ‘선임기자’ 혹은 ‘전문기자’라는 이름 자체가 한국적 현실에서 분명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타이틀’의 부재를 ‘능력’의 부재로 생각하는 분위기에 대한 제언이다. 이는 보직을 내려놓은 고참기자들이 ‘나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한 명의 기자’로 편집국으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다.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현재 선임기자냐 전문기자냐 하는 차이 뿐이지 실상은 고참에 대한 일종의 예우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보면 맞다”면서 “1987년 민주화대투쟁 이후 언론사가 생기며 그때 입사한 다수 기자들이 이제 50대 중반을 넘었다. 어찌 보면 고령화 문제가 언론계에서 본격화된 첫 시기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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